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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2.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관련기사2.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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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면 플러스…수출·증시 ‘약발’ 별일이다.
원/달러 환율 하락은 수출 채산성 악화를 가져와 우리 수출기업들의 실적을 깎아내릴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증권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은 거꾸로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만사를 장밋빛으로 색칠하자는 것인가? 믿기지 않으면 과거 종합주가지수와 환율의 움직임을 보란다.
지난 20여년 동안 원/달러 환율의 대세하락기는 1986년에서 88년, 94년에서 96년, 98년에서 2000년 세번 왔다.
모두 우리 증시의 대세상승기와 겹친다.
애널리스트들의 말 그대로다.
엔화 반사 강세, 수출경쟁력 향상 공교롭게도 이들 시기는 미국 공화당 집권기와도 겹친다.
98년 닷컴 붐 시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번의 기간에는 로널드 레이건과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
이들은 달러화 가치를 낮춰 국제시장에서 미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했다.
아버지 부시의 전략을 계승해 아들 부시가 실제로 달러화 가치 하락을 묵인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크게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달러화 가치 하락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완만한’ 환율 하락은, 특히 수출전선에서 경쟁 상대방이 되는 일본의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더 빨리 강화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원/달러 환율 하락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주식시장에 호재라고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주장하고 있다.
1년 이상 길게 놓고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환율의 움직임과 종합주가지수의 움직임은 같은 쪽이기보다는 반대쪽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가 상승은 환율 하락에 앞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원자재 수입이 많은 섬유의복, 제지, 비금속광물, 철강금속, 기계업체나 연료 수입이 많은 해운, 항공 등 운수업체들에 환율 하락은 희소식일 수도 있다.
달러가 싸지고 원화가 비싸지면 달러화로 수입해오는 원자재, 물품의 가격이 떨어진다.
건설, 유통 등 내수관련 업종도 그렇다는 말이다.
이는 물가안정으로 내수시장 호황이 길어지는 데 따른 현상이라고 애널리스트들은 설명한다.
특이한 건 은행주가와 환율의 상관관계다.
환율이 떨어지면 은행주가가 올라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투자전략실장은 “물가가 안정돼 금리인상 속도가 느려지면 은행들이 자유롭게 자금 운용을 해 수익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설명한다.
대한항공·현대차 등 수혜주 부각 길게 보면 수출업체도 달러 약세로부터 혜택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달러가 약해지면서 원화 이상으로 엔화가 강해질 경우의 이야기다.
일본은 우리와 수출시장에서 경합을 벌이는 종목이 많다.
일본 상품이 비싸지면 우리 수출품도 수출단가를 높일 수 있어 수출액이 증가한다.
그리고 우리 수출시장으로 미국 시장이 크기는 하나, 미국 외에도 수출시장은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유럽, 아시아 지역의 자산가치가 높아져 소비심리가 좋아진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예다.
올해 들어 현대차의 유럽 시장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중고가 모델인 EF쏘나타, 싼타페, 라비타(유럽에선 매트릭스란 이름으로 출시) 수요가 늘었다.
현대차 박흥국 이사는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3~4% 절상되는 동안 유로화는 6% 이상 절상됐다”며 “유럽 경기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난 여파”라고 설명한다.
현대차는 환차익이 늘어나고 있는 유럽지역에 더욱더 수출을 늘릴 방침이다.
또 환율이 1150원까지 떨어지지 않는 한 손실을 보지 않도록 유로, 파운드, 달러로 분산해 경영전략을 짜놨다.
단기적으로도 환율 하락이 ‘보약’인 곳은 외화차입금이 많은 업체들이다.
적은 원화로 더 많은 달러빚을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대한투자신탁증권 김완규 연구원은 달러 가치 하락기의 추천종목으로 대한항공, 한진해운, 대한해운, 한전, SK, S오일을 꼽는다.
굿모닝증권 김태형 연구원은 포스코, 아시아나항공을 덧붙인다.
서울증권 투자분석팀 박상욱 차장은 삼성중공업, 동국제강, 현대차, 한국가스공사, 한국통신을 주목하라고 한다.
모두 우리돈으로 1조원 안팎, 혹은 그 이상의 해외부채를 보유한 업체들이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업체들한테도 환율 하락은 좋은 소식이다.
특히 한국제지 등 펄프 수입업체에 효과가 크다.
어떤 애널리스트는 옥수수, 사탕수수, 대두, 원당 등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는 음식료 업종도 원가절감 효과를 크게 보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환율 하락기에 실제로 음식료 업종의 주가가 오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는 음식료 업체들이 하락한 원재료 값만큼 제품가격을 낮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일제당은 지난 3월에 설탕값을 인하했다.
제일제당 IR팀 김성래 과장은 “원료값이 싸지면 그만큼 제품값을 내리기 때문에 환차익은 거의 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제일제당의 환차익은 비용보다는 경상손익 부문에서 더 크게 발생한다.
이 회사는 미화 3억7700만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
원화가 10원 오를 때마다 경상이익은 40억~45억원씩 늘어난다.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다.
국내증시 당분간 미증시와 동반 하락 그러나 한국 주가는 일정 기간 미국 달러화 가치와 함께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달러가 약하다는 건 미국 경제가 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가 안 좋으면 주가가 하락하고 미국 주가가 하락하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크게 위축된다.
또 우리 수출업체 대부분에 달러 약세는 악재다.
달러로 물건을 파는 수출기업은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채산성이 악화한다.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와 동반하락 위기에 처한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 기업이 어디에서 실적을 얻는가 하는 것이다.
서울증권 박상욱 차장은 “미국의 주요 기업 대부분이 다국적 기업”이라고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만 해도 매출의 60%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인다.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져 유럽, 일본 등 다른 국가의 자산가치가 높아져 소비수요가 많아지면 미국 기업의 실적도 좋아진다.
그러나 미국 경기의 회복세가 부진한 동안 유럽과 일본의 경기가 되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들의 이야기대로라면 달러 약세기에 오히려 투자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과거 주가 움직임을 보면 원/달러 환율이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직전에 주가는 한두달 정도 하락과 조정을 거친 뒤 상승했다.
86년, 94년, 98년 대세상승기에서 주가는 모두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회생하지 못해 엔화가 계속 허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런 과거의 사례가 또다시 되풀이되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혹시라도 달러화 가치 하락이 급격하게 진행될 경우에는 이중바닥형으로 미국 경기가 다시 고꾸라져 한국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밑도끝도 없이 가라앉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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