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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3. 미국경제 진단
관련기사3. 미국경제 진단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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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복병…경기회복 ‘머나먼 길’ “미국 경제가 재고투자 증가에 힘입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최종소비가 얼마나 활발히 늘어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 3월19일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같이 전망했다.
그린스펀 FRB 의장의 관측이 현실화됐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에 5.8% 신장한 것으로 추계됐다.
이같은 1분기 경제성장률은 1999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경제의 1분기 고속 성장은 재고투자와 정부지출 증가에 힘입었다.
1분기 높은 성장률, 일시적 반등일뿐 반면 다른 지표들은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소비 관련 지표가 둔화하거나 감소로 돌아선 것이다.
3월 내구재 주문과 신축주택 판매, 기존주택 매매, 그리고 건축투자가 모두 줄었다.
콘퍼런스보드의 소비자신뢰지수도 하락했고, 공급관리기구(ISM)의 4월 제조업지수 또한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소비가 주춤거리는 양상은 1분기 경제성장률 통계 안에서도 보인다.
소비지출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6.1%에서 1분기엔 3.5%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1분기 성장은 최종 소비가 받쳐주지 않은, 재고투자 증가에만 의존한 ‘속빈 강정’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 기업분석 회사인 톰슨파이낸셜/퍼스트콜의 조사에 따르면 S&P 500 편입 기업의 1분기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2% 감소했다.
엔론 파산 신청 이후 주요 기업이 회계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실망스러운 실적이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S&P 500 기업의 수익은, 테러사태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1분기에 증가세로 돌아선다고 예상했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미국 경제가 짧은 회복 뒤 긴 정체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기가 단기간 반등했다가 곧 하강한다는 ‘더블 딥’ 예상은 올해 초에 나왔다.
모건스탠리딘위터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1957년 이후 미국이 경험한 6차례 경기침체기는 모두 일시적인 회복을 거친 바 있다”며 ‘W자 회복론’을 주장했다.
실업 증가, 재정 적자, 투자 부진 악재 로치의 예측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동조세력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4월말 글렌 허바드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은 “1분기 성장률의 절반 가량은 재고조정 덕분이었다”며 “재고조정 효과는 2분기에 사라질 수 있다” 말한다.
허바드는 “경제가 실질적으로 회복되는 데 필요한 기업투자 증가는 하반기부터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미국 경기가 어디로 가느냐는 전망은 신경제 논란과 맞물려 있다.
신경제란 미국이 정보기술(IT) 투자를 통해 체질을 개선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장기 고도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다.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생산성 향상을 근거 삼아 줄기차게 신경제를 주창해왔다.
그는 인터넷과 정보통신 주식이 급등한 것도 “신경제니까 당연하다”는 식으로 옹호했다.
지난해 미국 경제가 3분기에 1.3% 위축됐다가 4분기에 반등하자 신경제론자들은 “그것 보라”며 기세를 올렸다.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아예 불황은 없었다며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진단을 반박하고 나섰다.
미국 경제가 지난해 3월 이후 침체에 빠졌다는 NBER의 분석이 틀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침체가 없었다면 FRB의 공격적인 금리인하는 벌써 경기과열을 불러오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신경제론자들은 논리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고도성장의 ‘결과’를 고도성장의 ‘요인’으로 투입하는 순환론의 오류를 범한 것으로 분석된다.
순환론은 이를테면 과거에 장사를 잘한 기업은 앞으로도 많은 수익을 낸다는 주장이다.
들떴던 분위기는 이내 가라앉는 모습이다.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기대에 못미치리라는 예상이 늘고 있다.
메릴린치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루스 스타인버그는 4월1일 올해 미국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3.2%로 높여 잡았다.
그는 “미국 경제가 통화 및 재정적 부양책 덕분으로 가장 낙관적인 전망치를 웃도는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월25일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 3.5%에 1%포인트 미달한다는 얘기다.
잠재성장률은 실업도 인플레이션도 유발하지 않는 적정한 성장속도를 일컫는다.
GDP 증가율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기간이 길어지면 실업이 늘고 물가는 떨어진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 1% 성장하는 데 그쳐, 올해까지 2년 연속 저성장에 머물 전망이다.
실업 증가는 미국 경제에 하강압력을 촉발할 뇌관이다.
실업이 늘면 그동안 미국 경기를 지탱해온 소비가 무너진다.
주식시장도 비실 “구원투수 없다” 갈 길은 먼데 노잣돈이 떨어진 형국이다.
그린스펀은 지난해 기습적인 세차례를 포함해 모두 11차례 금리를 인하했다.
단기금리인 연방기금금리는 지난해 6.50%에서 1.75%로 무려 4.75%포인트 떨어졌다.
FRB 사상 가장 공격적인 금리인하였고, 단기금리는 40여년 중 최저를 기록했다.
이제 금리인상 행진이 마감됐다.
그린스펀은 1월말에 이어 3월에도 단기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선 통화정책 중립을 선언했다.
물가안정과 성장 어느 쪽에도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더이상의 금리인하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지난해 금리인하는 소비지출을 유지하고 주택경기를 부추기며 미국 경제를 하강압력으로부터 막아냈다.
낮은 금리가 가계 지출에 충분히 반영됐다고 볼 때, 이미 나타난 것처럼, 소비와 부동산시장의 활력은 예전같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가계는 지난해 테러사태 이후 자동차 무이자 할부판매 등에 호응하며 지출을 늘렸다.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서 구매를 한 탓에 일정 기간 뒤에는 소비가 줄어들게 된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 지출은 더 감소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금리상승이 지출에 끼치는 타격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금리는 FRB가 단기금리를 조정하기 전에 오를 공산이 크다.
미국 연방정부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 국채를 발행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올해 연방 재정이 아프가니스탄 전비 지출 증액과 감세로 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낼 것으로 본다.
재정적자 가운데 감세 부분은 가계 지출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실업과 부채가 부담스러운 탓에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할 전망이다.
투자는 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호조를 보였지만, 투자를 늘리겠다는 최고경영자(CEO)는 많지 않다.
이런 변수가 어우러져, 미국 경제성장은 기대에 비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시장이 활기를 잃은 점도 불안하다.
4월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4.4%, 나스닥지수는 8.5% 하락했다.
나스닥지수는 올해 들어 4월말까지 13.4% 빠졌다.
여기에 지난해 경상수지 적자가 4170억달러로 GDP의 4%를 넘었다는 점을 추가로 고려하자.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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