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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街, 봄날은 갔나
[미국] 월街, 봄날은 갔나
  • 박종생/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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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투자자 오도혐의 조사에 초긴장…리서치관행 개혁 등 신뢰성 회복 시급 1980~90년대 장기간의 증시 호황으로 그 명성이 영원할 것 같았던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과 애널리스트들이 요즘 곤욕을 치르고 있다.
뉴욕 검찰이 지난 4월초에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4월말에는 증권감독을 책임지는 연방기구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주요 투자은행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거품 붕괴와 지난해 12월 엔론의 파산 이후 투자은행의 리서치(기업분석) 부문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검찰과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은행들이 자사의 고객 기업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혔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SEC, 10개사에 관련서류 제출 요구 증권거래위원회는 4월30일 메릴린치, 살로먼스미스바니, 모건스탠리딘위터 등 10개 투자은행에 리서치 관행에 대한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요구내용에는 기업분석 보고서와 관련한 경영진의 e메일 메시지 등이 포함됐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서류제출이 미흡할 경우 소환장을 발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 검찰청의 엘리엇 스피처 검찰총장이 10개월의 조사 끝에 메릴린치의 덜미를 잡은 것도 e메일이 단서가 된 바 있다.
스피처 검찰총장은 4월초에 메릴린치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메릴린치에 거액의 벌금과 1억달러 규모의 배상기금 설치, 그리고 철저한 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배상기금은 메릴린치의 잘못된 보고서를 믿고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을 위해 마련하라는 것이다.
또 구조개혁의 초점은 기업분석 기능을 하는 리서치센터와 자금을 운용하는 투자금융 부문을 완전히 분리하라는 데 맞춰져 있다.
이에 대해 메릴린치는 소송을 피하기 위해 뉴욕 검찰청과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메릴린치의 데이비드 코맨스키 회장은 4월26일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사과를 하고 애널리스트 한명을 해고 조처했다.
메릴린치는 또 리서치센터를 감독할 사외이사회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메릴린치는 1억달러 규모의 배상기금에 대해서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리서치센터와 투자금융 부문의 완전 분리에 대해서도 다른 투자은행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하고 있다.
코맨스키 회장은 “리서치 부문에 있는 800여명의 프로페셔널들을 몇몇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말했다.
메릴린치는 최근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로비스트로 전격 고용했다.
검찰과의 전면전은 피하면서도 실리는 챙기겠다는 의도다.
월가의 투자은행과 애널리스트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 개선 움직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국 증권업협회(NASD)와 뉴욕증권거래소는 최근 몇개월 동안 작성해온 자율규제 방안을 놓고 5월8일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이 초안에는 △애널리스트와 투자금융 부문의 접촉을 제한하고 △애널리스트가 보고서를 낸 종목의 주식을 갖고 있을 경우 그 현황을 공개해야 하며 △보고서를 낸 종목을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을 경우 그 내역을 공개해야 하고 △투자금융 부문에서 올린 소득으로 애널리스트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경우에도 이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애널리스트들이 기업공개 후 40일간 그 기업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내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자금융·리서치센터 분리 논란 증권거래위원회는 증권업협회를 중심으로 한 자율규제 방안을 면밀히 검토한 뒤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증권거래위원회의 하비 피트 위원장은 최근 “지금까지 나온 정보로 볼 때 자율규제 방안이 충분한지 의문스럽다”고 밝혀 증권업협회의 안보다 더 엄격한 규제안을 만들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증권업협회와 뉴욕증권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진일보한 방안을 제출할 것으로 안다”면서도 “추가적인 규정을 마련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 검찰도 메릴린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리서치센터와 투자금융 부문의 분리 △리서치 부문을 감독할 사외이사회 설치 △보고서의 대상 기업이 자사의 고객인지 여부를 밝힐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개선안을 공개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 조사와 규제 방안 마련에 뉴욕 검찰이 적극 개입하는 것에 대해 월권이 아니냐는 시각이 일부에서 대두되고 있다.
스피처 검찰총장이 민주당계라는 점에서 공화당쪽이 정치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공화당 소속의 리처드 베이커 하원 자본시장소위원회 위원장은 4월30일 “민주당계의 뉴욕 검찰청장이 월가 애널리스트들을 지나치게 공격하고 있으며 전국의 증권시장에 영향을 미칠 정책변화까지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5월1일 보도했다.
베이커 위원장은 “검찰의 개입은 법정소송으로 이어져 애널리스트 규제방안이 법정에서 결정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뉴욕 검찰이 증권거래위원회에 이번 사건을 이양하고 증권거래위원회가 이번 사건의 최종 국면을 주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권거래위원회의 피트 위원장도 “스피처 검찰총장이 리서치 관행을 전반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증권거래위원회 같은 연방기구의 규제를 받는 회사들을 압박하는 것은 증권거래위원회의 권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일 보도했다.
피트 위원장은 “주 검찰이 사법권한을 갖고 사기 혐의를 조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전국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연방정부만이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스피처 검찰총장은 “뉴욕은 독자적인 주권을 갖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이양할 의사가 추호도 없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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