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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건강 파시즘’이 무섭다
[기자수첩] ‘건강 파시즘’이 무섭다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2.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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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금연 열풍’이 유독 세게 불었다.
대통령이 앞장 서서 금연을 권하고, 폐암으로 투병중인 유명 연예인이 “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담배를 끊으라”고 간곡하게 설득하기도 했다.
평소 비흡연가들이 “간접 흡연의 폐해”를 들어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데다 날이 갈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자각도 있어 ‘빨리 끊어야지’ 하고 결심하는 애연가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거, 건강 파시즘 아냐?” 담배를 즐겨 피고, 결코 끊을 생각이 없는 한 선배가 연초에 불어닥친 국민적 금연열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담배가 몸에 해롭고,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임산부의 흡연이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건강 캠페인을 하는 건 좋지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어 ‘원흉’으로 몰고 단죄하려는 작금의 현실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는 거였다.
그 선배는 흡연가를 ‘공공의 적’으로 돌리고, 금연을 ‘절대 선’으로 규정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파시즘을 연상케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렇게라도 경각심을 갖고 담배를 끊으면 무엇보다 본인이 좋은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개인이 자신의 몸을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불신하고, 엘리트들(이 경우엔 사회적 합의)이 주장하는 ‘옳은 것’을 전체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파시즘의 본질”이라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삼성그룹이 사내 흡연실을 폐쇄하고 건물 안에서 흡연을 하는 임직원에 대해 경고조처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그 ‘건강 파시즘론’이 떠올랐다.
삼성그룹은 상습흡연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의 금연을 ‘권장’하는 수준을 넘어 ‘강제’하겠다는 얘기다.
개인에게 소속 기업의 방침은 국가 차원의 캠페인보다 훨씬 더 강제력이 있다.
더구나 인사상의 불이익이라니…. 흡연가는 범죄자가 아니지 않은가? 사원들의 건강을 염려해, 또 흡연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라는 점을 고려해 ‘특단의 조처’를 취한 삼성그룹의 생각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건강이 아무리 ‘절대 선’이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자유와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있다.
초일류를 지향하는 삼성그룹 임직원들이 회사의 지시나 방침 없이는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볼 능력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삼성그룹의 이번 조처는 다른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니 삼성그룹은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신중한 태도를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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