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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역경제 현장을 가다(17)서울
[기획] 지역경제 현장을 가다(17)서울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2.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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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위주 정책 탓 과밀화로 ‘몸살’… 녹지공간 확보 등 환경친화적 도시설계 절실

서울 시민들은 지금 무슨 꿈을 꾸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얼마 전 선보인 한 국내 건설업체의 광고가 서울 시민들의 꿈과 희망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푸른 풀밭에 아이들이 뛰놀고, 아파트 베란다에 기댄 채 그 광경을 지켜보는 한 주부의 표정이 말할 수 없이 흐뭇하다.
누군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고 묻는다면 주부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런 아파트, 꿈만 같아요.”

도심에 녹지를 만들자는 주장은 더이상 시민단체나 환경운동가들만의 외침이 아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2002년 서울 시장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시민들은 서울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기오염(68.2%)을 꼽았고, 다음으로 녹지가 부족하다는 점(11.1%)을 들었다.
설문을 진행한 환경운동연합 조사팀 김낙중씨는 “녹지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진 것 같다”며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설문에 응한 시민들은 도심하천을 생태공원으로 바꾸고, 자투리 공간에 녹지를 조성하고,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한 뒤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항목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다.


지난 2000년 서울시는 시정개발연구원에 ‘2021 서울도시계획’을 의뢰했다.
서울시는 20년마다 한번씩 도시계획을 세우고 이를 시민들에게 발표해야 한다.
오는 12월에 윤곽이 드러날 2021 도시계획은 시민들의 보행권 보장과 녹지확보, 주차문제 해결 등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990년에 작성된 도시계획 보고서가 개발 위주로 되어 있어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도 서울시는 ‘개발’을 시정의 화두로 삼았다는 얘기다.



수질오염은 포기상태, 대기오염이라도…

그러나 2002년 서울은 더이상 개발을 바라지 않는다.
서울 시장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외친다.
“살기 좋은 도시,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민주당 김민석 후보의 공약은, 뜯어보면 차이가 있겠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비슷하다.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해결하고, 대기오염을 줄이고, 서민들을 위한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개발위주 시정’의 산물인 청계천 고가를 뜯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무조건 사업을 벌이고 보자는 주장 역시 개발 위주의 마인드에서 나온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서울 시민과 다른 후보들도 ‘청계천 복원’이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북한산에 오를 때마다 희뿌연 서울을 보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우리 애들이 저런 곳에서 살고 있구나…. 올해 부쩍 황사가 심해지면서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 서울 연희동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정훈씨는 서울시가 대기오염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수돗물에 대해서는 이미 기대를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서울 시민들은 수돗물을 믿지 못하지만, 수돗물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내 5개 취수장 모두 원수 수질 자동감시장치를 설치하고, 페놀과 납 등 중금속이 유입되지 않도록 24시간 자동감시 체제를 구축했다.
한강 상수원 주변 40개 지점을 지정해 매월 수질검사를 하고, 특히 올해부터는 검사기준을 WHO 권장기준인 121개 항목으로 확대해 안전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불신의 뿌리는 워낙 깊다.
환경운동연합 김낙중씨는 “각계의 문제제기로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상수도 사업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시민들은 이미 수돗물의 질에 무관심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설문조사에서 수돗물 문제(4.2%)보다 대기오염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꼽힌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수돗물을 끓여먹는 서울 시민은 전체의 45% 정도지만, 먹는 샘물(18%)이나 정수기(26.4%)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개인적인 비용을 들여 해결할 수 있는 수돗물에 무관심해진 대신, 시민들은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오염된 공기’에 공포를 느낀다.



교통난 해결은 요원한 숙제인가

서울시 대기오염은 심각한 교통문제와 쌍생아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서울시 대기오염 원인의 82%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버스가 내뿜는 매연. 최근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는 천연가스 버스에 대해 서울 시민의 54.7%가 ‘적극 확대하라’며 반색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울시 교통기획과 윤준병 과장은 “오는 2007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내에 있는 천연가스 충전소는 6곳밖에 없고, 충전 후 노선을 한바퀴 돌고 나면 연료가 바닥나는 등 문제점이 적지 않다.
서울시는 기존 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대체하는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도입을 권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보이려면 관련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해마다 7만대씩 증가하는 서울의 자동차 수도 ‘녹색 서울’로 가는 길에 놓인 덩치 큰 걸림돌이다.
서울시는 13조원에 달하는 전체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조원 가량을 교통혼잡비로 쓴다.
도로정체는 대기오염을 가속화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물류비용 증가로 서울의 산업경쟁력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다.


특히 서울 북부의 교통상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애초 28만명으로 예상했던 일산신도시 인구는 2001년 말 43만명. 주변인구까지 합하면 116만명이나 된다.
근처에 있는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예정돼 있어 인구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시민단체인 녹색교통의 민만기 사무처장은 “서울시 경계구간의 정체는 이미 한도를 넘어섰다”며 “특히 강변북로와 올림픽도로, 수색로 등의 서울시 경계구간은 이미 지난 2000년부터 도로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교통기획과 윤준병 과장은 “내부순환도로가 완공됨으로써 도심 교통량이 10% 정도 분산됐고, 지하철 2기 공사가 끝나 서울시의 교통 대동맥은 어느 정도 틀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과장은 “도로 등 인프라를 구축해서 폭증하는 자동차 수를 따라잡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지 않으면 도로정체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녹색교통 민만기 사무처장은 “지하철 환승거리가 길고 공기가 탁해 시민들의 기피요인이 되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하철망을 아무리 촘촘하게 깔아도 서울시 빚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환경과 교통, 주거문제의 원인은 물론 ‘과밀화’에 있다.
우리나라 수도권의 과밀화 정도는 일본 도쿄도의 1.5배, 런던권이나 파리권의 2배에 달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인구의 46%, 전국 제조업체의 55%, 대학의 42%, 중앙기관과 정부투자기관의 7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실정이다.


문제의 뿌리를 뽑자면 서울시에 집중된 각종 기능들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서울 시민들은 그동안 너무 오래 기다렸다.
김정훈씨는 “서울시가 맑은 물과 공기,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상황이 점점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환경운동연합 김낙중씨는 “개발과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너나없이 ‘친환경론자’를 자처하는 서울 시장 후보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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