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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광고업계 ‘부익부 빈익빈’
[비즈니스] 광고업계 ‘부익부 빈익빈’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2.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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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주자 제일기획 독주…1분기 실적 2,3위 업체 취급액 합계보다 많아 국내 제일의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의 배동만 사장은 최근 사원들에게 ‘좋은 때일수록 특별히 겸손하라’고 당부했다.
업계 선두를 유지해온 제일기획의 ‘승승장구’가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탓이다.
그만큼 제일기획의 올해 출발은 좋다.
제일기획은 지난 1분기에 취급액(수주물량) 2470억원, 매출액 714억원, 영업이익 112억원, 경상이익 140억원의 실적을 거둬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 각각 52%, 11%, 60%, 1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취급액 구성을 보면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4대 매체가 전년에 비해 96% 상승해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TV의 경우는 143%나 증가했고, 신규광고주 개발도 500억원대에 이르렀다.
물론 선두그룹의 광고회사가 다 좋은 성과를 누린 건 아니다.
10대 광고회사의 1분기 실적을 보면 오히려 광고회사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일기획의 1분기 실적은 LG애드, 금강기획 등 2, 3위 업체의 취급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LG애드의 1분기 취급액은 1326억원으로 4% 성장하는 데 그쳤고, 금강기획은 6% 증가한 950억원이었다.
삼성그룹사 안정적 수요처가 한 몫 제일기획 성장의 일등공신은 일단 경기호전이다.
1분기 광고시장이 17%나 성장한 것은 전체적으로 광고회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게다가 TV광고 단가가 9.8%나 인상됐다.
또 월드컵을 앞두고 마케팅 활성화에 입힘어 광고계가 전반적으로 호황세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으면 광고 취급액 중에서 4대 매체의 비중이 늘어난다.
특히 TV매체가 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회복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제일기획 취급액의 구체적인 내역을 보면 IT(KT, KTF), 전자(삼성전자), 금융(삼성카드), 건설(삼성물산) 업종 광고주를 중심으로 기존 광고주의 광고활동이 두드러졌다.
또한 100억원 규모의 현대자동차를 포함해 대림건설, 동부건설, 포스코건설, 불스원 등 연간 광고비 500억원 규모의 신규 광고주를 영입했다.
삼성전자의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스포츠마케팅 대행에 따른 약 250억원 규모의 실적도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4월말 제일기획의 주가는 17만원대를 넘어섰으며, 추가상승 여력이 있다고 평가되어 증권가쪽의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20만원을 상회하는 주가상승을 예측하고 있다.
광고시장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한국 시장은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후진상태라고 진단한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광고업계는 다른 무엇보다 경기에 민감하다”며 “광고시장의 크기를 예측하는 것은 통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을 기준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1.5% 정도, 미국의 경우는 2~2.4%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아직 1% 안팎에 불과하다.
심지어 99년에는 외환위기 등으로 인한 광고수요 위축으로 0.78%까지 하락했다.
최고의 반등세를 보였던 2000년조차도 1.12%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제일기획은 꾸준히 성장했다.
제일기획의 영업이익은 99년 외환위기 때에도 317억원이었으며, 광고계 최고의 호황이었던 2000년에는 521억원을 기록했다.
제일기획이 그동안 한번도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데에는 우선 ‘삼성그룹 계열사들’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처가 한몫 한다.
이는 업계 2위인 LG애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계열사들의 도움 없이는 절대 상위그룹에 올라올 수 없었다는 것이 광고시장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 제일기획의 그룹 내부회사 물량 취급액은 전체의 65% 정도에 이른다.
LG애드의 경우는 그보다 더 높아 70%를 상회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외국계 급성장 대비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이러한 ‘인하우스 시스템’ 속에서 특별히 제일기획이 앞서 나갈 수 있는 것은 삼성의 ‘성장’과도 영향이 깊다.
한 업계전문가는 “클라이언트가 똑똑하니, 제일기획도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제일기획은 삼성그룹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는 삼성의 기업운영 방식과 ‘깐깐한’ 요구 등에 맞추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수준 높은 광고기획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질적 경쟁력은 최근의 광고업계의 변화와도 잘 맞물려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증권 한승호 애널리스트는 “계열 광고대행사에 광고 물량을 몰아주던 광고주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쟁 프리젠테이션(PT)을 통해 대행사를 선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테면 삼성계열사라고 해서 다 제일기획에 광고물량을 몰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승호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상황은 시장경쟁 요소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며, 경쟁력 있는 제일기획에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올해 상반기 외국계 광고회사의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는 것과 맞물려 국내 광고사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요소이기도 하다.
10대 광고회사의 1분기 실적을 보면, 특히 외국계 광고회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98년 12월 SK그룹 계열 태광멀티애드를 인수하면서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TBWA코리아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69%나 증가한 750억원의 취급액을 올렸다.
또 미국계 JWT가 지난해 9월 한국의 애드벤처월드와이드를 인수하면서 설립한 WPPMC코리아는, 올 1분기 350억원의 취급액으로 광고업계 7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제일기획은 여기에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외자계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이미 그 대부분이 과거 국내 에이전트 시절의 시장점유율에 그대로 머물고 있고 업체만 바뀐 것뿐”이라며 “외자계 자본의 움직임에 대해 위기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위기요인이라고 하면 외자계 광고회사의 네트워크”라고 덧붙였다.
최근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제일기획 내부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올해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14개인 법인지점도 늘릴 생각이고, 서비스 영역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해외 현지 대행사에 맡기기보다는 직접 제작하고 인력도 현지인 채용을 늘리며, 지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식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일기획에 위기는 없는 것일가? 한 애널리스트는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제일기획은 돈을 잘 버니까 문제가 될 수 있다.
광고사업은 이익도 많고 현금도 많고 그룹의 힘에 의존해 성장해온 것이기 때문에 그룹사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것이 한계”라고 지적한다.
이미 99년 10월말 제일기획은 삼성생명의 주식을 주당 70만원씩 주고, 자본금보다도 많은 300여억원어치나 매입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삼성자동차 부실 문제를 떠안았으며, 지난해 3월말에는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로부터 e삼성 주식 192만주를 주당 8684원씩 모두 167여억원어치를 매수해 차익을 남겨주기도 했다.
이런 여러 차례의 지원 때문에 주주들에게 가야 할 정당한 몫이 왜곡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제일기획이 안정적인 수요처로 그룹사들에 의존하는 한 이런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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