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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신용카드 쓰라고 할 땐 언제고”
[비즈니스] “신용카드 쓰라고 할 땐 언제고”
  • 김덕헌/ <한국금융신문> 기
  • 승인 2002.05.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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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증가·신용불량자 양산 주범으로 몰려… 당국 정책 부재가 문제의 본질 최근 신용카드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각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4조원의 세수확대 효과를 거뒀을 때, 신용카드는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수호신’으로 추어올려졌다.
그러나 가계부채 규모가 커지고 신용불량자가 늘자, 여론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2인조 살인, 한빛은행 소총강도 사건 용의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신용카드 빚을 갚기 위한 것이었다고 발언하면서 신용카드는 ‘사회악의 축’으로까지 비치고 있다.
여론의 질타에 신용카드 업계는 적잖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삼성카드 고영호 차장은 “신용카드 시장 급성장에 따른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최근 부정적 여론처럼 모든 원인을 신용카드로 돌리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신용카드가 과연 가계부채 증가,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범일까?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볼 때 국내 총 가계신용대출은 2000년 12월보다 28%가 증가한 341조7천만원을 기록했다.
이중 지난 한해 동안 금융기관 가계대출 규모는 60조329억원으로 2000년보다 68.8%가 증가했다.
이를 금융권역별로 세분화해보면 2001년 은행의 가계대출 규모는 45조5910억원으로 지난해 가계자금 대출의 75.5%를 차지했으며 보험사가 5조5220억원, 할부사가 2조1120억원, 상호저축은행이 5020억원을 기록했다.
신용카드 관련 대출은 최근 3년 사이 규모가 크게 증가하긴 했지만 아직은 총 가계대출의 13.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은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가계대출 사용처 분석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금감원이 6개 시중은행 대출자 6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계대출의 52.8%가 주택구입이나 전세자금을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자금은 14.9%, 부채상환자금은 9.5%였다.
소비지출은 12% 정도였으며 주식투자 등 다른 금융자산에 투자한 비중은 3.2%였다.
현금서비스, 카드론, 신용결제 등 신용카드의 주요 사용처가 대개 소비지출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전체 대출에서 신용카드가 차지하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셈이다.
조세정의의 수효신에서 시녀로 최근 사회적 충격을 준 연쇄살인사건 문제도 신용카드 사용의 병폐 부문만 확대 해석된 면이 없지 않다.
700만원의 신용카드 빚을 갚기 위해 5명의 여인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2인조 강도살인 사건의 경우, 여론은 5명을 살해한 범죄자의 생명존중 의식과 정신병력을 의심하기보다 ‘700만원의 카드빚’에 포커스를 맞췄다.
국민카드 이향묵 차장은 “상식적으로 건전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빚이 많아도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현재 1인당 평균 대출이 3420만원인 우리 사회는 가계빚으로 의한 범죄로 사회가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자카드 김영종 사장은 “요즘 신용카드 업계가 마치 동네북처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어 자칫 국가경제적 측면과 투명한 신용사회 정착, IT산업의 발전 등 큰 그릇을 깨버릴까 염려된다”고 말한다.
“여론재판식의 단기적 접근과 직접규제는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자칫 잘 키워놓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허약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승인, 정산이나 결제를 위한 국내 IT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존 마그네틱 카드를 대체할 칩과 무선지불 기술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신용카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신용카드 정책의 부재다.
사실 그동안 신용카드 산업에 대한 정부정책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예금자 보호의 부담이 없는 여신금융기관이란 이유로 정부는 현금서비스 한도 등 있던 규제마저도 마구 풀었으며 사후 관리, 감독도 소홀히 했다.
만약 기존에 제한했던 현금서비스 한도 규정을 그대로 나뒀더라면 아마 지금과 같은 사태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또 세수 확대 도구로 신용카드를 이용하려고만 했지, 신용카드 사용 권장에 따른 신용카드 시장 성장과 그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성년자에 대한 카드 남발, 개인정보 불법 유통, 가두 모집 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이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관리,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신용카드 산업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조세정의의 시녀’로 기형 성장을 해왔다.
신용카드 문화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탓도 있다.
선진국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은행과의 일정기간 금융거래를 통해 확실한 신용을 쌓아야만 가능하다.
카드 발급은 까다로운 대신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사람은 그만큼 시장에서 신뢰를 해주는 것이 선진국의 신용카드 문화다.
또한 연체 등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면 금융거래에 많은 제재가 따라 카드 회원들은 자신의 능력 한도내에서 카드를 사용하는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 카드사들은 과열경쟁으로 카드를 쉽게 발급해주고 소지자들은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쉽게 카드빚을 늘린다.
여신금융협회 황명희 과장은 “얼마 전에는 카드 연체 회원이 고리의 연체이자를 내는데도 왜 신용불량자로 분류하느냐는 항의성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며 “카드 민원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문화가 아직 성숙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그동안 시장의 룰도 없이 자유스럽게 영업을 해온 신용카드 업계가 과당 경쟁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가계부채 증가, 신용불량자 양산, 사회범죄 등 최근의 사회문제를 모두 신용카드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마녀사냥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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