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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경제 실패학' 백우진 / 지식공작소 펴냄
[서평] '한국경제 실패학' 백우진 / 지식공작소 펴냄
  • 장태민/ <씽크머니> 기자
  • 승인 2002.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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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폐해가 파국 이끈다

예전같으면 눈이 번쩍 뜨이는 통계다.
미국 경제의 1분기 노동생산성이 지난 20년 정도의 기간 중 최대 폭으로 향상된 것. 그러나 이 발표가 나온 지난 5월7일 뉴욕 증시의 투자자들은 별다른 감흥을 나타내지 않았다.


노동생산성은 이른바 ‘신경제’의 증좌였다.
신경제란 미국이 정보기술(IT) 부문 투자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덕분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고성장할 수 있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나스닥지수가 5000을 넘어섰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신경제 기업에는 주가수익률이라는 과거 접근이 유효하지 않다는 얘기가 통용됐다.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을까? 저자는 우선 생산성 향상으로 고성장을 지속하게 됐다는 논리를 깬다.
그는 노동생산성은 국내총생산(GDP)을 단위노동으로 나눠 내는 값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생산성 향상이 지속 성장을 보장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수익을 많이 낸 기업은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얼토당토않다.
” 즉 신경제는 고성장을 나타내는 한가지 지표인 생산성 향상이 고성장의 요인으로 되먹임되는 영구기관이라는 비판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1분기 생산성 향상은 같은 기간 GDP 성장과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얘기다.
그럼 경제성장률 지표가 경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저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경제성장률은 경제의 수익성이나 건전성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1분기에 전분기 대비 연율로 5.8% 급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S&P500 지수 편입종목의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2% 줄었다.



신경제는 백일몽이었다

<한국경제 실패학>이라며 미국의 신경제를 지리하게 논박한 이유를 묻자 그는 화제를 돌린다.
우리 사회는 지적인 풍토가 척박해, 처한 상황에서 이론을 찾기보다는 외국에서 유행하는 사조라면 무조건 들여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상무부의 부풀린 통계를 본떠 경제성장률에 대한 IT 부문의 기여도가 커졌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인터넷과 PC 보급률을 들어 한국이 디지털 경제 시대에 유리하다고 자랑했다.


“무지의 폐해는 부패보다 크다.
” 저자는 벤처를 둘러싼 온갖 ‘게이트’가 꼬리를 물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사업 성과와 무관하게 기업과 주가를 밀어올린 환상과 투기열풍을 지목한다.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수입 유통된 신경제란 환상이 투기를 낳았고, 투기는 막대한 자본이득을 일으키며 사기를 부추겼다고 그는 강조한다.
벤처 게이트는 사기를 뒷수습하는 과정이었다.


무지의 사례는 신경제에 그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세계화’도 비판대에 올힌다.
이 책은 재벌의 주도권을 받아들인 세계화가 환원주의와 결합해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갔다고 정리한다.
환원주의란 부분의 합이 전체라는 인식을 말한다.
재벌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이자, 임금, 지대, 물류비용 등 요소비용을 낮추라는 환원주의적 해결책을 요구했다.
정부는 이에 밀려 이자비용이 저렴한 외국 자본에 문을 열어줬다.
그러나 재벌은 총수가 교체되면서 수익을 내는 의사결정력이 저하된 상태였다.
재벌이 영역 확장에 나서면서 적자가 불어났다.
한국에서 돈을 회수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확산되면서 외환위기가 닥쳤다.



토론과 검증 거쳐 비전 모색

결론은 아이디어다.
이 책은 “세계는 다름 아닌 아이디어에 의해 지배된다”는 케인스의 명제에 도달한다.
아이디어가 조직이나 사회의 지배적인 논리로 받아들여져 작동할 경우 패러다임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런 아이디어는 비전, 청사진, 밑그림 등으로 불린다.
저자는 실패 사례를 훑은 뒤 적절한 비전과 이를 구체화한 전략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경쟁하는 아이디어 사이에서 패러다임의 지위를 부여하는 과정, 토론과 검증의 과정에 더 주목하고 비중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맥락, 즉 콘텍스트에서 유효한 텍스트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저자가 애덤 스미스부터 폴 크루그먼, 앨런 그린스펀 등을 도마에 올린 것도, 어떤 아이디어든 우리가 놓여 있는 시대와 여건에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비롯한 듯하다.
그는 비전 설정에 참여하는 학계, 연구기관, 정부, 언론 등이 활발한 논의를 벌여 적어도 엉터리 아이디어는 솎아내자고 호소한다.


이 책은 아이디어와 함께 조직의 작동논리를 다룬다.
색다른 측면에서 리더십을 탐구한 대목이다.
저자는 모든 조직은 두 단계로 움직인다고 단순화한다.
먼저 아이디어가 비전으로 채택되고, 이어 비전이 실행에 옮겨진다는 것. 기업을 비롯한 개별 조직에서는 이와 관련한 의사결정이 위로 집중된다.
저자는 “따라서 기업 역량의 상한선은 최고경영자(CEO)에 의해 그어진다”고 주장한다.
기업지배구조는 이런 관점에서 분석된다.
반면 여러 조직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움직이는 국가 단위 조직은 다원적으로 작동한다.
비전을 빚어내는 작업에 학계, 정부, 언론,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제 책에서 눈을 떼자. 요즘 발표되는 각종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경기는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업계의 경기전망도 전례없이 밝다.
증시가 조정을 거치고 있지만, 올해 안에 지수 네자리 시대가 온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 경제는 이렇게, 저자가 ‘실패학’ 운운하며 황소처럼 ‘뜸베질’을 해댄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 나가고 있다.
저자는 참으로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책을 냈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었다는 주장도 많이 나온다.
지난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해야 할 마지막 시기’라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오갔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이제 잦아들고 있다.
1년 사이에 한국 경제가 그렇게 많이 바뀌었을까?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저자 역시 금융구조조정 등의 성과는 인정한다.
하지만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사외이사를 의무화하고 소액주주 대표소송과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허용했지만 대기업 지배구조는 과거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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