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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여야 대선 후보 경제론
[초점] 여야 대선 후보 경제론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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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후 성장’이냐 ‘성장 후 분배’냐 상반된 비전… 재벌과 조세정책서도 대립

두 주자가 거의 동시에 분기점을 돌았다.
천장과 바닥을 교차하며 오가던 두사람의 지지율은 최근 40%대에서 비슷하게 자리잡았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남은 시간은 남은 200여일. 그때까지 두사람은 당 안팎의 지지와 세력을 끌어모으며 질주를 해나가야 한다.


유권자들은 더이상 정치적 회의주의에 빠져 있을 만한 핑계가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식의 토로는 두 주자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두 주자는 국민경선이라는, 한국 정치사상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선에 나왔다.
각자가 내세우는 철학과 비전도 분명하고 명확하다.
굽이굽이 한이 서린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으로부터도, 역대 대선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은 5월13일과 14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로부터 경제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서면으로 물어보고 답변을 들었다.
두 주자 모두 국민경선 전보다는 한결 융통성 있는 대안을 내놨다.
그러나 밑바닥에 깔린 경제관은 여전히 큰 차이를 보였다.


유권자는 이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분배 후 성장’이냐, ‘성장 후 분배’냐. ‘합의를 통한 효율 증대’냐, ‘효율을 통한 합의 도출’이냐. 은 두 주자의 경제관, 경제정책을 비교분석했다.
충격적 정치스캔들이 다시 터져 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는 한, 유권자가 훌륭한 대통령을 골라찍기 위해 공부한 보람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이들 경제관의 차이는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노 후보는 분배를 개선해야 시장경제가 역동성을 얻어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 아르헨티나처럼, 소득분배가 악화되면 대중소비가 줄어 내수기반이 취약해지고 성장을 지속하기가 어렵다”면서 최저소득과 최저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복지정책을 제시한다.


이 후보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생산방법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양적으로 늘려 성장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왔다”면서 교육과 연구개발에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집중 투자하겠다고 약속한다.


재벌정책과 조세정책과 대한 생각도 크게 다르다.
노 후보는 “시장이 시장다워질 때까지는 규제가 필요하다”며 “대기업 출자총액한도 제한제도를 유지, 강화하겠다”고 밝힌다.
이 후보는 “시장 감시는 강화하되 투자는 막지 말아야 한다”며 “대기업집단 지정제, 출자총액한도 제한제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한다.
조세정책에 대해 노 후보는 법인세 등의 세금 감면대상과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대상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다.
이 후보는 법인세나 소득세를 추가로 인하하겠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노사정위의 필요성이나 노조의 경영 참여에 대해선 두 후보 모두 부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다.
노 후보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노사 갈등을 중재하고 노조의 경영참여도 권장하겠다”고 말한다.


반면 이 후보는 “정부의 역할은 법과 원칙에 따른 심판자”라고 강조한다.
또 “노조의 경영참여가 기업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경영은 경영전문가가 해야 잘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노 후보는 합의를, 이 후보는 효율을 중시하는 것이다.


뉴라운드 시대 농어민 대책에선 두 후보의 경제성장에 대한 지론이 묻어난다.
노 후보의 대책에선 정부지원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는 산업적 측면에선 경쟁력 있는 작물의 재배를 북돋우면서, 동시에 중소 농어민에 대해선 소득 보전, 생활환경 개선 등으로 복지수준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이 후보의 농어민 대책은 자생력 증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국제협상력을 강화해 우리 농어업에 조건을 받아내고 농어민이 충분히 뉴라운드에 대비할 만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밖에 가계부채 급증, 실업 증가, 공기업 민영화 등 경제현안에 대해선 두 후보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안을 내놨다.
다만 청년실업 해소방안에 대한 양쪽 아이디어는 눈여겨볼 만하다.
노 후보는 도서관, 문화관, 보육관 등 ‘생활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하는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놓는다.
이 후보는 의료, 교육, 소방, 경찰 등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대선까지 남은 200여일 동안 이들의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경선 뒤 당내 선거조직 구성에 들어간 노 후보는 분야별 정책을 당과 조율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을 겨냥해 새로운 청사진을 보충해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관은 늘 논리에 앞선다.
이들이 ‘무엇을 우선으로 보는가’ 하는 가치관은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하는 방법론보다 중요하다.
한국 경제 5년의 선택은 거기에 함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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