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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SK 깜짝쇼’ 그 속내는?
[초점] ‘SK 깜짝쇼’ 그 속내는?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2.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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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삼성 견제위한 연막작전… 정부 앉아서 명분·실리 두토끼 잡아 지난 5월22일, 1987년부터 추진해온 ‘KT 민영화’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KT는 남은 정부지분 28.37%(8857만4천주, 4조7830억원)를 4일 만에 완전 매각했다.
‘쇼’는 아주 성공적이었고, 월드컵 이전에 민영화를 끝내겠다던 정부 의지는 그대로 관철됐다.
민영화 결과 SK텔레콤은 교환사채를 포함 11.34%의 지분을 확보해 KT의 최대주주가 됐다.
주식 청약일 이전에 SK텔레콤은 “KT 민영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을 계속 흘려 ‘긴장완화’ 분위기를 조성해오다 18일 청약 마감 5분 전에 기습적으로 5%를 모두 신청했다.
이 결과 3.78% 지분을 배정받은 SK텔레콤은 이어 20일 5.77%의 지분을 추가로 청약했고, 21일에는 “애초 KT가 갖고 있는 SK텔레콤 지분만큼만 확보할 계획”이라던 약속을 뒤집고 교환사채 잔여분 1.79%까지 모두 긁어갔다.
마감 5분전에 기습 신청 이로써 삼성은 단 한주도 확보하지 못한 채 탈락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매각과정을 둘러싸고 SK가 보여준 ‘깜짝쇼’는 업계에 갖가지 해석과 이해관계의 지형을 보여주며 적잖은 파장을 남기고 있다.
삼성은 애초 KT에 뜻이 있었나? 그리고 SK텔레콤은 왜 ‘그렇게까지’ 해서, 다시 말해 업계와 시장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막판 따돌리기 작전을 감행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 둘은 물론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먼저 SK가 치밀한 전략하에 삼성을 따돌린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삼성 견제가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KT 자체에 대한 견제’라는 해석이다.
KT가 갖고 있는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미 유무선 통신의 기본 인프라는 물론이요, 모든 통신 서비스를 다 제공하는 무소불위의 종합 통신업체다.
게다가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이미 KT의 위력을 시장에서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이상철 사장의 공격적 경영은 “SK텔레콤에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사실 이동통신업체는 제 아무리 1등 사업자라 하더라도 유선망 없이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선전화 접속료, 망 사용료 등에서 SK가 원천적으로 이미 KT를 피해갈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SK텔레콤의 1600만명이라는 가입자도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미래가치 부분에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KT가 민영화되든 안 되든 KT는 위험한 적수라는 것이 SK텔레콤의 위기의식이다.
사실 이런 위협에 대한 대책은 이미 오래 전부터 SK의 최대 관심사였다.
SK텔레콤은 이미 올해 초부터 경영전략실과 정책협력실이 주축이 돼 내부에 KT 민영화 대책반을 구성했다.
그동안 제출된 내부 보고서만도 1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중 한 자료에 따르면 “일단 1차적인 목표는 KT 민영화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고, 민영화가 불가피할 땐 최소한 삼성의 진입을 무산시키는 것이 차선의 목표”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매각과정에서 SK텔레콤은 삼성의 주식매입을 단 한주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삼성의 진입 자체를 봉쇄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SK텔레콤은 삼성이 KT를 인수할 경우의 시나리오를 짜보고 그 가능성을 점치며 삼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 6월 KT의 제2차 해외DR(주식예탁증서) 매각시 이상철 사장이 이를 전량 매각한 것에 대해 모종의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전문가는 “당시는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고, 특히 정보통신 관련주들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을 때였는데, 이상철 사장은 KT의 해외DR을 전량 다 팔았다”며 “매입자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GE캐피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삼성의 ‘우호 주주’라는 것이 SK텔레콤측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해외DR 부분의 삼성 우호 세력과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분 3%에 이번 매각에서 삼성투신 0.6% 등을 비롯한 주식 매입이 더 이루어지면 삼성의 ‘KT 장악’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SK텔레콤의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SK텔레콤이 할 수 있는 건 모든 전술을 총동원해 가능한 한 삼성의 진입 자체를 막는 것으로 모아졌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SK의 연막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됐고, 삼성의 수직계열화 논리에 대응해 SK텔레콤의 수평계열화 논리로 여론을 움직였으며, 정부를 대상으로 로비전에도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머리 두개달린 공룡 탄생 우려 SK의 연막작전에 ‘감초’ 역할을 한 것이 LG전자다.
LG전자는 애초 자금여력도 문제였지만, 그들의 의도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 정부 요청에 따른 ‘바람잡이’ 역할을 충실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애초 정부가 구상한 시나리오대로 LG전자는 청약 이틀 전 3% 매수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이는 투자자들에게, 특히 삼성에 의미심장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삼성 역시 구조조정본부에서 “전략적 지분참여는 하지 않고 대신 금융계열사들을 통해 투자목적의 지분참여만 고려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뿐만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입을 통해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터였다.
그러면 당시 삼성은 SK텔레콤의 행보를 몰랐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은 이미 SK텔레콤이 지분확보를 위해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지만 그 물량을 최대 10%로 추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허위정보가 들어간 탓인지, 아니면 판단착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삼성쪽에서는 SK텔레콤이 3% 이상 확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이미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런 가운데 SK는 5%를 모두 청약했다.
삼성의 진입을 완전히 배제함과 동시에 KT가 가진 SK텔레콤 지분율만큼의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그것은 KT를 견제하고 동시에 삼성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었던 셈이다.
SK텔레콤은 마지막 남은 잔여 전환사채 1.79%마저도 말을 번복해가며 결국 다 끌어안았다.
이미 욕을 먹은 마당에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단 지분을 팔더라도 ‘배분’ 선택권은 SK가 갖게 되는 것이고, 그럴 경우 끝까지 삼성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는 사실상 손해보지 않는 게임을 치렀다.
SK텔레콤의 깜짝쇼에 공식적으로는 ‘놀랐다’는 반응이지만, 정통부가 몰랐을 리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되지 못할 바에야 삼성이 독점을 하는 것보다는 SK가 독점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SK의 경우는 현행 법상으로는 KT에 대한 경영권 행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정 기업에 경영권을 넘기지 않겠다’던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리적인 측면만을 본다면 정부는 KT 지분을 4일 만에 깨끗하게 팔아치웠다.
물론 SK 덕분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한편의 드라마가 끝이 났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시나리오는 다음부터다.
민영화는 완료됐지만 시장 독점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았다.
현재 정부는 정관 변경을 포함한 몇가지 방안을 강구하며 독점 방지대책을 준비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 정책들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정관이나 정책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SK가 제1주주라는 것이 당장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독점’의 간판이 2선으로 물러나는 대신, 독점체제에 버금가는 과점체계가 구축된다고 하는 점이다.
KTF와 SK가 시장을 양분하고,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한 담합 가능성이 도처에 널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KT 민영화는 거대 공룡보다 더 위험한 머리 두개 달린 공룡을 탄생시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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