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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석유화학 덩치싸움 4파전
[비즈니스] 석유화학 덩치싸움 4파전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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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LG 등 4개 업체 현대 군침… 부채 처리 등 난제, 싼값 인수 고집할 듯 매각 주간사로 선정된 골드만삭스가 본격적 실사작업에 들어가면서 현대석유화학의 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허를 찌르고 KT 최대주주에 오른 SK를 비롯해 주요 재벌기업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어 또 한차례 치열한 인수경쟁이 예상된다.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SK와 LG화학, 호남석유화학, 한화석유화학 등 4개 업체다.
그러나 한화석유화학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대한생명 인수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어, 사실상 SK·LG화학·호남석유화학(롯데)의 3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관련 기업들 사이에서 현대석유화학 인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올해 초부터 석유화학 경기가 크게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21일 현대석유화학은 현장 직원은 7%, 사무직은 1~3%씩 임금을 인상했다.
1998년 이후 4년 만의 일이었다.
또한 지난 1분기에 4600억원 매출에 410억원 영업이익을 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주요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연초부터 큰 폭으로 오른 덕분이다.
석유화학 경기가 지난해 4분기에 바닥을 치고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낙관적인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게다가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한 기업은 규모면에서 아시아 1위의 석유화학 업체로 단숨에 올라설 수 있다.
또한 국내 석유화학 제품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과 가까운 서해안 대산공단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 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장점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임지수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조사분석팀장은 “현대석유화학은 범용 제품으로만 본다면 국내 최대 업체”라며 “석유화학 사업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누구든 욕심을 낼 만한 대상”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전개될 인수전에서 업계 1위인 LG화학과 2위인 SK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허수영 호남석유화학 전략경영 상무는 “호남석유화학의 경우 규모에서는 이들에게 밀리지만 재무구조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며 “제품 포트폴리오도 가장 유사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광훈 굿모닝증권 연구위원은 “호남석유화학과 LG화학이 인수를 통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SK의 경우 스티렌모노머(SM) 부문을 한국바스프에 팔고, 폴리미래와 폴리프로필렌(PP) 부문의 통합을 추진하는 등 석유화학 분야 사업을 줄여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SK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올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화석유화학의 경우 대한생명 인수문제가 결부되어 있어 제스처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화석유화학은 제스처에 불과?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석유화학의 매각이 석유화학 산업의 본격 구조조정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90년대 후반부터 ‘과잉설비 해소’가 석유화학 업계의 현안으로 대두되어 왔으나, 99년 대림산업과 한화석유화학이 NCC부문을 통합해 여천NCC를 설립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진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임지수 팀장은 “석유화학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장치산업으로 덩치 싸움이 중요하다”며 “국내 업체들은 외국 선진기업에 비해 영세한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석유화학 제품은 반도체, 자동차, 컴퓨터, 조선에 이어 우리나라의 6대 수출품목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직까지 석유화학 산업에서는 반도체 분야의 삼성전자나 자동차 분야의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기업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 난립과 과잉설비라는 구조적 문제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동과 중국 지역의 움직임도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압도적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도 자체 설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노력이 그동안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번째 시도는 98년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의 ‘빅딜’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석유화학 산업은 과점체제로 출발해, 86년 ‘석유화학공업 육성법’이 폐지되고 95년 설비투자가 완전 자유화되면서 업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한번 뛰어들면 무조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대기업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장치산업은 재무구조가 쉽게 악화될 수 있는 단점도 갖고 있다.
세계경제 침체로 마진이 줄어들고, IMF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차입금이 많은 후발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현대석유화학의 경우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벌인 시기와도 겹쳤다.
위기에 몰려 있던 두 업체를 통합하자는 안이 제시됐다.
대산공단 안에 있던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을 묶자는 이른바 ‘지역통합론’이었다.
이광훈 연구위원은 “현대와 삼성의 결합은 원론적인 당위론이었다”며 “8개나 되던 나프타분해시설(NCC) 보유 업체를 대산공단 1개, 울산공단 1개, 여천공단 1~2개 등 총 3~4개 업체로 줄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역통합론은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2000년 2월 빅딜이 결렬된 후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은 각자 외자유치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삼성종합화학은 관계사를 중심으로 증자와 자산매각을 통해 가까스로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현대석유화학은 결국 2001년 9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첫번째 적용대상이 되었다.
채권단은 매각을 전제로 2165억원을 출자 전환했으며, 나머지는 2004년 말까지 만기를 연장했다.
경영책임을 물어 과거 경영진도 모두 교체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 석유화학 산업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석유화학 산업은 자동차, 전자공업, 섬유 등 전방 산업에 필요한 기초재료를 공급해주는 핵심산업이다.
여전히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분야이다.
때문에 석유화학 제품은 없으면 어떻게 해서든 구해야 하고, 공급이 부족할 땐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
경기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집중 개발한다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임지수 팀장은 “중국이 완벽한 설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5~6년은 걸린다”며 “중동의 설비 증설이나 메이저 기업의 중국 진출도 우려만큼 빠르지 않다”고 말한다.
2004~05년까지는 꾸준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현대석유화학을 외국 기업에 매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과잉설비를 줄인다는 명분에도 맞지 않고, 강력한 경쟁자를 키우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행될 인수 협상에서 최대 난제는 현대석유화학이 안고 있는 2조989억원에 이르는 부채 처리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어쨌든 골칫덩어리이기 때문에 팔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채권단에서 제값을 다 받을려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우차 매각에서 처럼 외국 업체들에 깎아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서, 국내 기업에 깎아주면 특혜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상반기처럼 제품 가격이 강세를 유지한다면 그대로 인수해도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소폭이나마 석유화학 경기가 꺾일 가능성이 많아 채무 재조정이 필연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광훈 연구위원은 “업체들이 현대석유화학 인수를 놓고 과열경쟁을 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면서 “기업들은 싼값 인수를 고집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각 주간사인 골드만삭스의 실사가 완료되는 7월초에 현대석유화학 인수경쟁의 윤곽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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