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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시장경제 힘받고 ‘고고’
[동유럽] 시장경제 힘받고 ‘고고’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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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전환이후 GDP 꾸준히 성장… 올 외자 직접투자액 330억달러 넘을듯 동유럽과 옛 소비에트연방 지역경제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10여년 넘게 지속된 체제전환의 첫열매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지난 1~2년 사이 두드러진 국제정세 불안과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침체 등 외부여건에서 한발 비켜서 있었다는 점도 이들 지역경제에는 큰 보탬이 됐다.
이에 따라 어느덧 27개 국가로 늘어난 이 지역경제의 가치를 다시금 평가하는 서구자본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분주해진 모습이다.
지난 10여년간 사회주의의 잔재를 털어내고 시장경제로 이행을 진척시킨 이들 지역경제는 최근 4년 동안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꾸준히 늘어날 만큼 성장에 탄력을 받고 있다.
89년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체제전환 과정이 시작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이 지역 대부분의 나라들은 지난 89년에 비해 실질 GDP가 60~110% 늘어난 상태다.
그간 체제전환 과정에서 갈등을 드러냈던 국내정세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나가고 있다는 점도 유리한 조건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장경제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국내 경제정책에 일관성이 보태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서구자본이 이 지역을 매력적인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최근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이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액은 33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수치는 90년대 중반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10년새 GDP 60∼110% 증가 물론 이 지역경제 전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얘기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는 게 사실이다.
짧게는 40여년에서 길게는 70여년 동안 사회주의 경제 실험이라는 공통의 과거를 간직했다고는 하지만,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지리적 여건에 따라 이들 지역내에서도 많은 편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여년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지역 나라들은 대략 세군데 축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유럽대륙의 중앙에서 발틱해 연안에 이르는 지역을 꼽을 수 있다.
옛 서방 진영에 속한 나라들과 직접 맞닿아 있어 시장경제와 접촉면이 훨씬 넓은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은 물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발틱해 연안 나라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 국가들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민영화를 진행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89년에 비해 실질 GDP 성장률이 평균 110%에 이를 만큼, 이들 국가들은 옛 전체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편이다.
이들 국가들은 오는 2004년 유럽연합 가입을 핵심 발전전략으로 삼고, 국내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종갈등과 정치 불안정 등으로 오랜 기간 시달리던 남동부유럽의 발칸 국가들도 지난해 5% 남짓한 성장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 움직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중도좌파 정부가 국내 최대기업인 국영 제철소를 매각한 루마니아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유고슬라비아 등 이들 지역의 대표적 국가들의 경우, 올해 성장률이 5% 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은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이 지역의 중심에는 단연 러시아가 놓여 있다.
러시아 경제의 파장이 인근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유가상승을 배경으로 러시아 국내경제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자, 러시아 내수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우크라이나 등이 덩달아 재미를 보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한다.
5월17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금과 외환 보유액이 400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98년 금융위기의 상처가 상당 부분 치유되었음을 짐작케해주었다.
또한 5월28일 경제부는 올해 4월까지 러시아 경제가 3.7%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에너지 부문은 러시아는 물론,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가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영국의 정유회사 BP가 러시아 정유회사 시단코에 투자를 확대해 보유지분을 25%로 늘리기로 결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BP에 이어 다국적기업 셸 역시 러시아의 에너지(가스) 기업인 가스프롬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98년 8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서방 자본은 큰 피해를 입은 채 러시아 시장에서 대부분 철수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러시아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이처럼 급속하게 늘어나는 것은 러시아 경제에 대한 국제무대의 평가가 달라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지난해 에너지 전문기업 엑슨모빌은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에 120억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서방투자자 “매력적인 시장” 발길 북적 동유럽과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의 경제가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 지역 가운데서도 세계경제와 접촉면이 넓은 지역이 최근 몇년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세계경제의 전반적 침체가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조금씩 달랐음을 짐작케해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중부유럽 국가들은 여타 지역에 비해 민영화를 앞서 단행했고 전체적으로는 지난 10여년 동안 높은 성장을 보였지만, 최근 2~3년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둔화된 게 눈에 띈다.
서방 자본이 많이 진출해 있을 뿐 아니라, 세계시장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이들 국가들의 경우, 그만큼 외부여건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98년 이래 이들 중부유럽 국가들의 평균 성장률은 2.3%에 지나지 않아 20% 이상 성장한 러시아 등 여타 지역 국가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90년대 내내 앞서 나가던 폴란드는 지난해 20%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며 1.1% 성장하는 데 그쳐 체제 전환과정 이후 혹독한 시련기를 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룸에 따라 이들 지역이 서방의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시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특히 취약한 금융부문은 경제성장의 걸림돌이자 동시에 큰 위험요소로 꼽힌다.
이는 이들 국가들의 금융자산 규모를 살펴보더라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다.
유럽연합 가맹국들의 GDP 대비 금융자산 규모가 평균 200%인 데 반해, 이들 지역의 경우에는 겨우 74%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실물부문에서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루마니아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현재 27%에 지나지 않는다.
루마니아 정부가 최근 국내 최대은행인 Banca Commerciale Romania의 민영화 계획을 서둘러 발표하는 등, 은행부문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과 맥이 닿아 있다.
지난해 12억유로의 금액을 받고 국내 3위 규모의 Komercni Banka를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네랄에 넘긴 체코의 사례가 이 지역의 은행부문 개혁 가운데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경제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지하경제의 존재다.
지난 5월22일 <모스크바 타임스>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의 지하경제에 관한 실증연구 실례를 들어, 여전히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지하경제의 존재가 회복세에 접어든 러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난 3월 러시아의 국가통계위원회가 러시아 지하경제의 규모를 GDP의 22~25%로 추정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 규모가 여전히 43%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동유럽과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 지역경제에 대한 최근의 높은 관심은 이들 지역이 체제전환 과정의 한고비를 넘어서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탄력을 잃은 세계경제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애쓰고 있는 투자자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음을 반증해준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경제에 대한 개방정도가 더할수록 가능성과 위험이 동시에 커진다는 점에서, 이들 지역경제에는 예전보다 더욱 많은 눈길이 쏠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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