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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경제 월드컵 중간결산
[커버] 경제 월드컵 중간결산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2.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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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호텔·운영수지 예상보다 부진… 브랜드 인지도 상승 등 무형적 효과는 상당할 듯

6월4일 한국이 폴란드를 물리치고 월드컵 첫승을 거둔 날 전국은 기쁨에 휩싸였다.
80만명이 응원전을 벌인 거리 곳곳에서는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고, 전국 술집은 승리를 자축하는 사람들로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MBC 차범근 해설위원은 “온 국민들을 이렇게 기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겠냐”며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축구가 해냈다”고 감격에 젖었다.


이렇게 국민들의 감정지수가 무한대로 올라가는 순간에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4일 월드컵 1승의 경제효과라는 보고서를 통해 월드컵 1승은 국민 1인당 소비 증가와 국가 이미지 개선 등을 통해 최소 2조164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현대경제연구원 리서치센터 박태일 실장은 “한국 대표기업의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까지 감안하면 약 12조3천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추정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날그날의 경기 결과에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집중되고 있다.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 계산에서도 대회진행 상황과 경기 결과는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어떤 나라들이 16강, 8강에 진출하느냐에 따라 경제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국, 미국 등 경제대국이 오래 살아남으면 기업의 광고효과는 그만큼 커진다.
축구열기가 뜨거운 유럽과 남미팀이 얼마나 선전하느냐도 경제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온 국민이 염원하는 한국팀의 16강, 아니 8강 진출은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 수, 지난해와 비슷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월드컵 경기장과 주변도로 건설에 2조4천억원을 투자했다.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대회 운영비로 4천억원을 책정했다.
월드컵 대회에 이처럼 적지않은 돈을 투자한 만큼 경제 월드컵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는 대회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출에서 유발되는 ‘직접효과’와, 국가와 기업 브랜드 가치 상승에 따른 ‘간접효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분석에서 월드컵 대회와 관련한 총 지출규모는 3조5천억원에 이르며 이를 통해 발생하는 직접적 경제효과는 5조3천억원에 이른다고 전망했다.
신규 고용창출 규모도 3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경기장이나 부대시설 건설은 집행이 완료된 상태기 때문에 이미 실현된 경제효과로 볼 수 있다.
KDI는 월드컵 건설특수가 건설경기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분석한다.
월드컵 대회기간 중 실현되는 효과로 가장 큰 것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지출이다.
KDI는 관광특수를 6천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특히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예선전을 치름에 따라 관광업계에서는 중국 관광객이 대거 몰려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월드컵 관광특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에 54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예년보다 10만명 늘려잡은 수치다.
하지만 5월에서 6월초까지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 오용수 차장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일본인이 절반을 차지한다”며 “일본에서도 월드컵 경기가 열리면서 일본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오 차장은 “중국인 관광객이 예상보다 적은 것은 비자발급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예상보다 적게 들어오면서 여행사들은 울상이다.
중국 전문 여행사 창스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을 1만명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로는 1600명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며 “바이롬에서 해외분 입장권 판매를 독점하는 바람에 티켓이 한장도 없어 영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그마나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호텔에 예약을 걸어놨던 여행사는 큰 손실을 봤다”고 덧붙였다.


호텔 업계도 월드컵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롯데호텔 박상영 과장은 “예년보다 투숙객이 10% 정도 줄었고, 객실 예약률도 지난해보다 5% 감소했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호텔 업계도 바이롬의 티켓 판매 부진으로 큰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이롬에서 객실의 70%를 걸어놓고 있었는데 이중 35%를 팔고 65%를 내놓았다”며 “월드컵 개막 전에 예약을 풀어주긴 했지만 남은 물량을 판매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바이롬의 해외분 티켓 판매 부진은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수지에도 큰 타격을 줬다.
조직위는 대회기간 지출되는 4천억원의 비용을 입장권 수입과 현지 후원업체 수입(500억원), 국제축구연맹(FIFA) 지원금(1200억원) 등으로 충당할 예정이었다.
애초 한국에서 열리는 32경기 입장권이 매진될 경우 조직위 전체 수익의 40%인 2100억원의 수입을 예상했으나, 지금과 같은 공석사태가 계속된다면 경기당 평균 10억원 이상씩 수백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현대차·KT·SK 광고 일단 성공적

월드컵 관광특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월드컵 조직위도 적자운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관광특수와 대회 운영수지는 경제 월드컵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KDI보고서’를 작성한 이진면 박사는 “세계 각국에서 월드컵 개최에 열을 올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이 박사는 “월드컵 개최에 들어가는 비용과 직접적 경제효과를 비교할 때 아직 적자를 본 나라는 없다”며 나아가 “국가나 기업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강조했다.
현대투자신탁증권 김승현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한일월드컵은 사상최다인 연인원 600억명이 경기를 관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들이 얻는 광고효과도 클 것”이라며 “무형의 경제효과는 활용방법에 따라 거의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는 대회기간에 자유롭게 광고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다른 업체보다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KT 등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는 지금까지 월드컵 마케팅에 1천억원가량의 비용을 쏟아부었다.
공식 스폰서 비용으로만 현대차가 700억원, KT가 400억원을 FIFA에 지불했다.
두 회사는 이번 월드컵 대회를 통해 자사 브랜드 가치를 한단계 끌어올린다는 각오다.
현대차는 유럽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 회사는 대형 축구공을 32개 참가국에 전하는 ‘굿윌볼(Good Will Ball) 로드쇼’와, 전세계 4만명이 참가한 세계 미니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글로벌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KT는 자사의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아시아 통신시장 진출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KT는 코엑스 전시장을 비롯해 서울, 부산, 대전, 광주, 서귀포 등 5개 도시 월드컵 경기장 앞에 ‘KT플라자’를 설치해 자사의 미래 통신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10만에 달하는 ‘코팀파’ 대표팀 응원단을 후원하고 있다.
현대차가 해외 마케팅에 많은 투자를 한 반면 KT는 국내 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SK는 ‘붉은 악마’를 후원해 적은 비용으로 공식후원사 못지않은 마케팅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한국 대 폴란드전이 열린 6월4일 대학로 거리응원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이밖에 현지 후원업체인 현대해상, 롯데호텔을 비롯해 현대홈쇼핑, LG텔레콤, 푸마 등은 많은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월드컵 마케팅 활동에 나섰다.


월드컵 마케팅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가전업체인 JVC는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 업체는 월드컵 후원을 통해 유럽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86년 이후 월드컵을 후원했던 JVC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전후해 국내 매출이 부진했지만, 해외 매출이 증가해 매출이 안정적으로 증가했다.
JVC말고도 코닥을 추월한 후지필름, 축구 마케팅에서 나이키의 도전을 뿌리친 아디다스도 월드컵 마케팅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KDI 이진면 박사는 “공식 후원업체와 현지 후원업체를 통틀어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보다 3배나 많았다”며 “대기업들이 이번 월드컵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었다”고 아쉬워한다.



대표팀 성적 따라 파급효과 달라져

브랜드 인지도 상승 등 간접적 경제효과는 보이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
다만 KT와 현대차는 월드컵 기간 동안 자사의 브랜드 노출 정도를 광고·마케팅 비용으로 환산해 경제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현대차 스포츠 마케팅팀 조래수 차장은 “월드컵 한경기당 현대차 광고판(A보드)이 약 12분 정도 비친다”며 “이를 TV광고 비용으로 계산하고, 여기에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를 더하면 6조원가량의 광고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KT도 비슷한 방식으로 2조원 정도의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계산법에 따라 기업들은 월드컵 마케팅이 비용에 비해 수십배의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광고와 스폰서 광고는 주목도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계산법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또한 대회 진행상황에 따라 기업의 마케팅 효과도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월드컵 열기가 뜨거워지고, 기업의 마케팅 효과는 그만큼 커진다.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주요 외신들은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실력에 연일 감탄사를 보내고 있다.
이퓨전 강재호 사장은 “한국 대표팀이 폴란드전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일본인들 사이에 한국은 얕잡아볼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한다.
일본 언론은 “한국이 일본과 달리 부실채권을 착실히 정리해 경제 구조조정에 성공한 것처럼, 한국 대표팀도 세밀하고 깔끔한 축구로 한단계 성숙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경제 월드컵에서도 ‘오~필승 코리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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