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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병 앓는 미국, 다시 일어설까
[초점] 중병 앓는 미국, 다시 일어설까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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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분식회계 파문 ‘신뢰 결핍증’ 심각… 주가·환율 맥빠진 채 세계경제 불안 “물이 빠져나간 뒤에는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 워런 버핏의 말이다.
미국 경제가 꼭 이 지경이다.
장기 호황의 드라마가 막을 내리면서 물이 쓸려나갔다.
각종 지표로 나타나는 경영환경이 악화된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에는 경쟁력이 뛰어나지 않은 기업도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건이 나빠지자 ‘한계선’이 위축되면서 기업이 하나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물밑 실체는 눈으로 보아왔던 것과 판이했다.
한때 잘나가던 엔론이 그랬다.
엔론은 다양한 수법으로 부채를 감추고 ‘벌거벗은 몸’을 가렸다.
엔론 사태를 계기로 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뀌었다.
투자자들은 다른 업체도 뜯어보게 됐다.
물에 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발 밑에 부풀린 실적을 괴고 서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이 퍼졌다.
장거리전화회사 월드컴이 그랬다.
소문은 대개 사실로 나타났다.
중남미 경제도 뒤숭숭 분식회계는 IBM과 같이 대표적 기업에까지 만연했다.
1997년부터 최근까지 기간의 회계와 관련해 무려 1천여개 회사가 분식을 인정하고 재무제표를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대우사태와 같은 사건이 쉴 틈도 주지 않고 터진 꼴이다.
신뢰는 증시가 작동하는 기반이다.
신뢰가 무너지면서 증시도 붕괴했다.
7월4일 독립기념일을 D데이로 한 추가 테러 가능성, 뒤숭숭한 중동 정세 등도 악재로 거론된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미국 증시를 물귀신처럼 아래로 잡아끈 가장 큰 요인은 불신이다.
주가 하락은 달러 가치 하락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미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뒤 한동안 잠잠했던 중남미지역도 뒤숭숭하다.
브라질 통화의 가치는 두달새 약 19% 급락했고 주가는 올해 들어 4분의 1 넘게 깨졌다.
국제 투자자금은 표류하는 중남미로부터 ‘하선’할지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 금융회사의 경우 브라질에만 275억달러가 물려 있다.
국제 투자자금은 중남미와 비슷하게 분류되는 러시아에서도 발을 뺄 태세다.
요동치는 금융시장은 미국 경제가 다시 하강하는, 이른바 ‘더블딥’의 전주곡인가? 아니면 미국 경제는 기술주 거품이 꺼지는 도중 덮쳐온 테러사태를 헤쳐나오는 저력을 보여줄까? 미국 금융시장 불안이 중남미 외환위기와 만나 삼각파도로 세계경제를 때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흐름이 뚜렷해질 경우 우리나라 경제도 홀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나가기 어렵게 된다.
경제지표는 엇갈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활발하게 증가하던 소매판매가 5월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콘퍼런스보드의 소비자신뢰지수는 4월 110.3에서 5월 106.4로 낮아졌다.
반면 5월 기존주택매매와 경기선행지수, 그리고 내구재주문은 증가 추세를 이어갔다.
아직은 낙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윌리엄 더들리는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더블딥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재고가 줄어들 만큼 줄어들어 미국 기업은 이제 생산을 늘리고 투자를 벌일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기업실적이 좋아지면 증시는 곧 반등한다는 설명이다.
낙관적 전망이 아직 우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강문성 박사는 “주가 약세는 투자 증가세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경제회복 추세를 꺾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삼성경제연구소 전영재 수석연구원도 같은 의견이다.
전 수석연구원은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2분기 이후에 1분기보다는 낮아지겠지만 3% 이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국 경제는 ‘신뢰 결핍’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미국 기업은 투명하고 효율적이라는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저버렸다.
기업들은 호황 때 형성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또는 불황으로 약해진 몸을 감추려고 장부를 뜯어고쳤다.
최고경영자(CEO)들은 투자할 의욕이 꺾여 회사보다 자기 이익을 더 챙겼다.
종목 추천과 관련한 증권사 스캔들도 실망을 부추겼다.
실제로 고액투자자의 85%가 상장사의 회계장부를 믿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증권사 찰스슈왑의 계열사인 유에스트러스트가 최근 조사한 결과 고액투자자의 66%는 상장사 경영진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73%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내놓은 투자의견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신은 단순히 시장심리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정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관련 기관에서는 회계기준을 정비하고 장부조작을 묵인한 회계법인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지만, 새 제도가 실제로 시행돼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시장은 회계장부를 이전보다 꼼꼼히 들춰본다.
수익성이 낮은데 빚을 많이 진 기업은 이전처럼 실적을 가공하며 시간을 벌 수 없게 된다.
부실 적발은 해당 업체의 파산과 은행 손실, 그리고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신뢰 회복 시간 걸릴 듯 주가와 환율은 오르면 내리고, 내리다가는 다시 오르는 법이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지난해 테러 직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나스닥지수는 6월26일 연초보다 약 27% 낮은 1429.33에서 거래를 마감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주 위주로 구성된 S&P500지수는 같은날 973.53을 기록해 연초 대비 16% 정도 하락했다.
뉴욕 증시가 올해도 하락 마감할 경우 41년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약세를 기록하게 된다.
강한 미국 경제를 상징하던 달러도 맥을 못추고 있다.
같은날 달러는 유로에 대해 28개월 중 최저까지 급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120엔을 깨고 내렸다.
외환시장에서는 달러/유로 환율이 1을 돌파하는 게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자들은 그동안 좋은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시에서 발길을 돌렸다.
한번 깨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 주가와 달러 약세는 당분간 계속 진행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소비와 투자에 제동이 걸리면서 미국 경제의 회복세도 주춤거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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