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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밥그릇 싸움, 증시통합 논란
[초점]밥그릇 싸움, 증시통합 논란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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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개편 논란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이번 라운드는 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을 끼고 전개되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증시 발전을 위해서는 현물과 선물은 물론 코스닥시장도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스닥시장과 선물거래소는 반대하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경쟁체제 유지가 시장을 키워나가는 데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선물거래소는 이미 오래 전에 제도적으로 확정한 현·선물 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재경부·증권거래소 찬성


주식시장 개편 논의는 5월 재정경제부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금발심)에서 위원들이 구두로 제기하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금발심은 이에 따라 증권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6월15일 보고를 받은 뒤 7월10일부터는 관계기관 의견을 듣고 있다.
금발심은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증권업협회, 선물협회 등의 의견을 청취했다.
코스닥위원회, 코스닥증권시장, 증권예탁원 등은 16일에 입장을 발표한다.


재경부는 “주식시장 운영체제 효율화 추진 논의는 우리 자본시장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주식 및 선물시장의 경쟁력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통합쪽으로 몰고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련 기관을 완전 통합하든 지주회사로 편입하든, 논의는 ‘통합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재경부는 관련 기관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10일 “증권거래소, 코스닥시장, 선물거래소 등 3개 시장간 연계 강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재경부와 증권거래소가 한쪽에 서고, 코스닥시장과 선물거래소가 이에 맞선 셈이다.
선물거래소측에는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 및 시민단체가 가세했다.
각 기관은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논리를 다듬는 등 분주히 대응에 들어갔다.
거래소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으로부터, 코스닥시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 각각 논리적인 뒷받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CG 보고서는 한국 주식시장이 1990년대 이후 외형적으로는 고속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알차지 않고, 시장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국내 현물주식의 시가총액은 2000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2%에 불과하다.
시가총액 비율은 홍콩의 382%와 영국의 183% 등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증권거래소와 BCG는 국내 증시가 내실 측면에서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상황을 해외 여건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는 데 대비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풍부한 국제투자자금이 투자처를 찾아 국경을 오가고 있다.
네트워크가 깔리고 정보기술이 발달해 원격지에서도 간단히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이전처럼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기업과 투자자가 들어오지 않는다.
각국은 이에 대응해 선진적 자본시장 구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BCG는 한국 증시가 선진 자본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조건으로 단일 ‘국가대표 거래소’를 설립하라고 권했다.
시장기능과 조직의 분산 및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걷어내자는 것이다.
동시에 시장 운영주체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감시와 감독 기능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코스닥·선물거래소 반대


코스닥시장은 이에 대해 “주식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는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며, 시장통합은 오히려 독점에 따른 폐해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반박한다.
전산시스템과 청산과 결제 및 예탁 업무를 통합해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비용이 절감된다는 데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은 모두 증권전산과 예탁원을 이용하고 있어, 이 부분에서는 사실상 통합된 상태라는 설명이다.
통합하면 투자자에게 더 낮은 거래수수료로 서비스할 수 있게 된다는 계산에는 “현재 거래소와 코스닥의 거래수수료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이라고 답한다.


코스닥시장은 시장간 경쟁을 촉진하고, 각 시장을 주식회사로 바꿔 상장함으로써 기업과 투자자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정부에 상품개발과 관련한 규제를 풀어 각 시장이 상업적인 기반에서 영업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장의 역량이 강화되면 국제경쟁력은 자연히 갖춰지는 것”이라고 코스닥시장 관계자는 말했다.


논란을 들여다보면 각 기관이 비용을 과장하고 사례를 유리하게 ‘편집’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BCG는 코스피200지수 선물과 옵션의 선물거래소 이관으로 증권거래소 회원 53개 증권사는 전산시스템에 50억원씩 모두 2650억원을 부담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한 증권사 관게자는 “비용을 산정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많이 들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코스닥시장은 홍콩거래소가 통합 후 2000년 선물거래량이 14% 감소했다는 점을 부각한다.
BCG는 2000년에서 2001년까지 2년간 월평균 거래량이 40% 증가했다고 되받는다.


시장 재편을 둘러싼 논리 싸움의 이면에는 코스피200지수 선물 옵션이 가져다주는 수입이 있다.
코스피200지수 선물 옵션은 지난해 360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증권거래소에 안겨줬다.
증권거래소 전체 수입에 약 24%를 기여한 것. 그런데 증권거래소는 선물거래법 시행령 개정으로 2004년에 코스피200지수 선물 옵션을 선물거래소로 넘겨야 한다.
증권거래소는 올해 초에도 “코스피200지수 선물과 옵션 이관은 국가경쟁력에도 자본시장 발전에도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주식시장 통합 등 체제개편 문제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지주회사 방식도 코스닥시장과 선물거래소의 반대를 받기는 마찬가지지만 거부감은 덜한 편이다.
지주회사는 그러나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의 인사 배출구 역할을 하는 외에는 순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시장 개편 논의는 이해당사자 사이에서는 영역싸움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어, 올해 안에 접점을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도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의도 매듭을 짓지 못한 채 다음 정부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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