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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솥뚜껑’보고 놀란 국내 증권사
[비즈니스]솥뚜껑’보고 놀란 국내 증권사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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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소문과 루머로 워낙 시끄러운 동네이긴 하지만 증권가는 올해 들어 더더욱 시끄러워졌다.
외국계 증권사가 국내 증권사 시장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소문부터, 아무 회사와 아무 회사가 거의 인수합병에 골인했다는 루머까지 갖가지 이야기들이 여의도가 잠들 틈 없이 나돌고 있다.


7월초엔 두가지 뉴스가 중대형 증권사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하나는 외국계 증권사의 주식시장 점유율이 크게 늘어 국내 증권사들의 영업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또하나는 LG투자증권이 삼성증권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실은 두가지 소식 모두 통계수치만 봐서 생긴 ‘착시’ 현상이었다.



월드컵 기간 국내 거래량 주춤


증권업계에 따르면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 16개 외국계 증권사들의 6월 주식시장 점유율은 12.2%를 기록해 5월보다 3%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 6월 시장점유율이 7.1%였던 데 비하면 마치 상당히 빠르게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 LG, 대우, 대신, 현대 등 국내 5대 증권사의 6월 시장점유율은 39.2%로, 5월보다 2.5%포인트가량 감소했다.
국내 다른 증권사의 시장점유율도 0.7%포인트 정도 줄어들었다.
이를 두고 증권가 일각에선 “오프라인 중심의 외국계 증권사들이 국내증권사의 개인 고객, 법인고객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국내 투자자의 주식 약정액(매도·매수액, 위탁액, 상품 포함)이 외국 투자자 약정액보다 더 많이 감소하면서 일어난 착시현상이었다.
5대 증권사의 6월 약정 총액은 45조5천억원으로 5월보다 37조4천억원이나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외국계 증권사의 약정액은 18억3천억원에서 14억1천억원으로 4조2천억원만 감소했다.
그 탓에 점유율로만 봤을 땐 마치 외국계 증권사가 시장을 급격히 늘린 것처럼 보인 것이다.
메릴린치 서울지점 채현종 상무는 “외국계 증권사 점유율이 높아진 건 외국인 거래가 활발해지거나 국내 영업이 늘어서가 아니라 국내 투자자의 거래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국내 투자자들이 월드컵 관람 때문에 주식 매매에 신경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대우증권 기획실 김홍욱 팀장은 “월드컵 기간 동안 일반개인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많이 줄었다”고 전한다.
외국계 증권사의 점유율 급증도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세에 따라 등락하는, 국내 증권사의 ‘뒤웅박’ 팔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거래소 상장 20개 증권사의 수익에서 위탁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한다.
이와 달리 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의 수익구조(2000년 기준)는 위탁수수료 수입이 26%, 상품운용이 22%, 자산관리부문이 21%로 다변화돼 있다.


위탁수수료의 구조도 다르다.
국내 증권사에서 이뤄지는 주식매매는 사이버거래가 사실상 70%를 넘는다.
외국계 증권사 지점은 오프라인 거래만 하고 있다.
사이버거래의 수수료는 오프라인 거래의 20% 수준이다.
국내 증권사가 열심히 대여섯건의 매매를 성사시키는 동안 외국계 증권사는 한건만 성사시켜도 수입은 비슷하다.


그나마 있는 수수료 시장도 사이즈 변화가 심하다.
국내 투자자는 외국인 투자자보다 주식 약정액을 줄이고 늘리는 폭이 크다.
올해만 봐도 국내 투자자의 월 약정액은 102조원에서 238조원까지 60%나 줄었다 늘었다 한 데 반해, 외국인 투자자의 월 약정액은 14조원에서 23조원 사이에서 움직여 변화폭이 40%대에 머물렀다.
증권사 수수료 수입의 원천인 약정액 규모가 이렇게 들쭉날쭉하다는 것은 국내 증권사들한테는 좋은 환경이 아니다.


국내 증권사가 장세에 따라 극심한 체중 변화에 시달리는 동안 외국계 증권사는 나날이 살쪄간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4개 국내 증권사가 수백개 온·오프라인 지점을 통해 6878억원의 순익을 낸 반면 21개 외국계 증권사는 서울지점만으로 2914억원의 순이익을 거둬들였다.
국내사 순익의 40%에 달하는 금액이다.
당기순익 상위 10개사 중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 3개사가 외국계였다.


국내 증권사의 젖줄이던 위탁수수료 시장의 성장세도 주춤거리고 있다.
닷컴붐 덕에 약정액이 2600조원에 이르렀던 99년을 제외하고 우리 주식시장의 주식 약정액은 2년 내내 연 평균 2천조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세상승장이 다시 오면 사정이 달라질까? 그러기엔 튼실한 젖먹이가 너무 많다.


최근 5대 대형사와 중소형사, 외국계 증권사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5대 증권사들끼리도 선두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증권의 시장점유율은 4월에 9.55%, 5월에 9.54%을 기록하더니 6월엔 8.8%선으로 떨어졌다.
지난 4~5월 당기순이익 부문에서 삼성증권을 제친 LG투자증권은 8.7%대에서 삼성증권을 바짝 추적하고 있다.


5월엔 3~10위에서 엎치락뒤치락 순위 변동이 많았다.
대신증권은 7.8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4위에서 3위로 한단계 올라섰으며 현대증권과 대우증권은 각각 7.5%, 6.94%의 점유율로 4~5위권을 형성했다.
온라인 기반 할인 증권사들의 약진도 도드라졌다.
미래에셋은 시장점유율 5.03%를 기록하며 6위로 뛰어올랐다.
키움닷컴증권도 4.59%의 점유율로 동원증권을 제치고 8위로 올라섰다.
어느 하나 부실하다고 말할 수 없이 튼실한 회사들이다.



LG투자증권 1위도 잘못된 계산


하반기 들어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7월초엔 한때 언론에서 LG투자증권이 주식약정 시장점유율에서 삼성증권을 앞질렀다는 보도가 나와 증권가가 술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보도에서 인용한 증권거래소 비공식 집계자료에는 LG투자증권 약정액에 이트레이드증권 약정액이 더해져 있었다.
거래소 비회원사가 거래소 상장 주식을 거래하려면 거래소 회원사를 통해 주문을 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거래소 비회원인 이트레이드증권의 약정까지 LG투자증권의 약정으로 잡힌 것이다.


대형사를 따라잡으려는 중소형사의 ‘선전포고’는 이어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합병에 성공적으로 골인한 굿모닝신한증권 도기권 사장은 “3년 안에 빅3 안에 들겠다”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나증권 천진석 사장은 “증권이 하나금융그룹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몸집을 키우는 게 필수적”이라며 “다른 증권사와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신한, 하나 모두 튼튼한 은행을 가지고 있는 금융그룹들이라, 중형 증권사와 합병일지라도 합병 시너지는 상당할 것이라고 증권인들은 내다본다.
5대 증권사의 자리는 언제나 위태롭다.


경쟁이 치열하면 도태되는 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증권업의 문제는 작은 시장에도 불구하고 잘 뛰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 도태되는 자가 없다는 데에 있다.
경쟁의 치열함을 따지는 허쉬만-허핀달 지수는 이미 400에 와 있다.
허쉬만-허핀달 지수는 1만일 때 완전 독점을, 1천 이하일 때는 경쟁 포화를 의미한다.


한 대형증권사 간부는 “수수료 시장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랩어카운트 등 자산관리 시장은 커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증권사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
돈 많은 자산가는 이미 은행의 프라이빗 뱅커들이 꽉 잡고 있다.
최근엔 메릴린치 등 세계의 유명 투자은행들이 진출해 우리나라 자산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아직 자산관리 마인드가 없다.
증권사들이 개척할 시장은 아직 좁고 척박하다.
여의도의 잠 못 드는 밤은 오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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