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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검은대륙 르네상스 열리나
[아프리카]검은대륙 르네상스 열리나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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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아프리카대륙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가? 빈곤과 기아, 내전과 에이즈로 얼룩진 아프리카대륙에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정치지도자나 테크노크라트 세대가 어느덧 국내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극히 일부지역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징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더 많은 개발원조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부유한 북반구 국가들에게 무작정 손을 벌리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모습은 이제 전세계 투자자본을 ‘정당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정치, 경제 등 국내의 낡아빠진 틀을 과감히 손질하는 쪽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인근 국가의 쿠데타와 부패, 내전에 일부러 눈을 감던 각국은 이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아프리카대륙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서구 언론의 지적처럼 과연 ‘아프리카 르네상스’는 시작되었는가? 최근 공식적으로 탄생한 아프리카연합(AU)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분쟁 종식과 민주화, 빈곤 추방 목표


7월8일부터 10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구도시 더반에는 아프리카대륙에 자리잡은 54개 국가 가운데 40여개국 정상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아프리카 민속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이번 행사는 각국 정상들이 아프리카연합(AU) 출범 의정서에 공식 서명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조직”이 공식적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년 임기의 초대 의장에는 아프리카연합의 탄생을 주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선출됐다.
또한 아프리카연합의 대표부는 일단 현재 아프리카단결기구의 대표부가 있던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두기로 결정했다.
이밖에도 각국 지도자들은 유럽연합(EU) 모델을 본따 정상회의, 집행위원회, 중앙은행, 아프리카의회 등의 공식기구를 두는 계획에 합의했다.


아프리카연합의 출범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결사체였던 ‘아프리카단결기구’(OAU)의 생명이 다했음을 뜻한다.
1963년 창설된 아프리카단결기구는 세계 정치무대에서 아프리카대륙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아프리카단결기구는 아프리카대륙 내부의 복잡한 정치·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었다.
아프리카 각국이 인근 국가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쿠데타와 내전 상황을 서로 묵인할 수 있었던 비밀도 바로 아프리카단결기구가 내세운 ‘불간섭주의’ 원칙에 숨어 있다.
악명 높은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이 이 기구 의장을 맡았던 사실은 아프리카단결기구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번에 출범한 아프리카연합은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단결기구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5명의 대표로 구성된 ‘평화안보이사회’가 아프리카연합의 가장 중요한 공식기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도 아프리카대륙 전체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얼마만큼 절실한 문제인지를 잘 드러내준다.
현재 아프리카대륙에서 벌어지는 각종 내전에는 인근 국가들이 한데 얽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에는 르완다, 우간다, 짐바브웨 세나라가 깊숙이 개입해 있고, 기니는 리베리아의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처럼 내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최종결정 권한이 있는 평화안보이사회는 장차 회원국의 동의를 받아 공동 평화유지군을 구성해 분쟁지역에 개입할 예정이다.


아프리카연합의 목표는 아프리카대륙에서 분쟁을 몰아내고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검은 대륙을 특징짓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경제성장 궤도에 진입하겠다는 꿈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유럽연합을 모델로 태어난 아프리카연합이 아프리카 단일화폐 구상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은 단일화폐를 도입해 역내교역에서 발생하는 거래비용을 없애는 방안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일화폐 구상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다.
유럽대륙조차도 단일화폐를 마련하기까지는 수십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오히려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NEPAD)에 더욱 무게를 두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행사에서 NEPAD는 아프리카연합의 가장 중요한 첫 프로젝트로 공식 승인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음베키 대통령과 나이제리아의 오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 등 NEPAD 계획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NEPAD가 아프리카 경제발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서구국가들의 전폭 지원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G8 “매년 최소 60억달러 지원”


6월27일 캐나다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은 아프리카 경제발전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큰 획을 그은 계기였다.
이 정상회담에는 음베키, 오바산조 등 아프리카대륙의 대표적 지도자들이 특별 초청돼 부유한 서구국가 지도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인권 등 국내 정치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조건으로 서구국가들이 아프리카대륙에 매년 최소 60억달러씩을 투자하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번 NEPAD 계획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간 아프리카 경제발전을 위해 투입된 개발원조자금과는 달리, 시장경제 질서와 민주주의라는 기본토대를 마련한 나라들에 대해서만 ‘투자’한다는 밑그림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서구 언론들은 “아프리카대륙의 마지막 기회”라거나 “부국과 빈국 사이에 이루어진 공식계약”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일부에서 아프리카연합이란 아프리카대륙에서 서구국가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좀더 효과적으로 관철되도록 하는 지렛대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연합의 앞날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보는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지역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 아프리카대륙이 수많은 현안들을 매끄럽게 조율할 수 있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연합이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도 잔뜩 쌓여 있다.
우선 얼마 전 쿠데타로 집권한 마다가스카르의 백만장자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정부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골칫거리다.
이번 행사에서 각국 정부는 일단 라발로마나나의 참여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등 주요국가 정부가 라발로마나나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나선 것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있다.
이들 서구국가들의 압력에 못이겨 쿠데타 정부를 인정할 경우,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한다는 아프리카연합은 출발부터 그 위상이 흔들릴 게 분명하다.



취약한 사회기반·막대한 외채부담 암초


일부에서는 현재 여러 나라 정부의 지도자들 역시 쿠데타나 부정선거로 정권을 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연합이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그칠 뿐이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6월30일 선거를 치른 카메룬이나 기니는 물론이려니와, 지난 3월 로버르 무가베가 재집권에 성공한 짐바브웨, 잠비아, 차드 등 현 정부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연합이 과연 아프리카대륙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내전 등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도 여전히 의문시된다.
실제로 음베키, 오바산조 등 아프리카연합을 이끄는 주요 지도자들 역시 짐바브웨 무가베 대통령의 재집권에 대해 선뜻 개입을 자제하다가 NEPAD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서구국가들의 압력에 못이겨 상징적 제재만을 가한 상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여전히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아프리카 전체의 평균 성장률이 3.5%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사하라사막 이남지역이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몫은 고작 1%에 지나지 않는다.
3억4천만명의 아프리카인,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은 하루 생활비가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절대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게다가 아프리카연합은 아프리카단결기구가 안고 있던 4200만달러의 대외부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서구국가들이 아프리카 경제발전을 돕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역장벽을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귀기울일 만하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은 막대한 금액의 보조금을 국내업계에 제공하고 있어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자국산업을 위해 매년 쏟아붓는 보조금 3500억달러는 아프리카대륙 전체가 개발원조자금으로 받는 금액의 23배에 달한다.
유엔 무역 및 개발회의(UNCTAD)는 이들 국가들의 국내 보조금이 폐지되면 사하라사막 이남지역의 1인당 국민소득이 6달러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제품에 대한 모든 수입관세가 철폐될 경우, 아프리카 국가들은 매년 25억달러만큼 소득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출범한 아프리카연합은 이제 아프리카대륙의 관심이 “식민주의에 대한 투쟁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투쟁”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 계기다.
전문가들은 유엔의 계획대로 오는 2015년까지 절대빈민층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아프리카대륙이 앞으로 매년 7%씩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갓 태어난 아프리카연합이 아프리카대륙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기에는 너무도 큰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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