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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송재일 / 열기구 조종사
[나는프로] 송재일 / 열기구 조종사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2.08.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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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비행기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기구로 하늘을 날았다.
인류 최초로 기구비행에 성공한 사람은 1783년 프랑스의 피라드레 디 로제. 이때부터 사람들은 기구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실제로 비행기가 발명되기까지 100년 이상 기구는 유일한 비행수단으로 이용됐다.
비행기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기구에 대한 관심은 계속됐다.
비행기처럼 빨리 날지는 못하지만, 자연을 즐기며 직접 하늘을 떠다닐 수 있는 매력 탓이다.
이제 현대에 와서 열기구는 항공레포츠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땅보다는 하늘 위에 있는 게 더 편한 남자가 있다.
항공교육단의 송재일(41) 실장. 그의 직업은 열기구 조종사다.
열기구학교를 열어 수강생들을 지도하는 교관으로, 각종 행사에서 열기구를 통해 멋진 이벤트를 연출해주는 조종사로서의 역할이 그가 맡은 일이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집 부근 군부대에서 매일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설레였다.
인간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믿던 시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군사관학교에 응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늘이 더 편한 남자


“사관학교에 떨어지고 나서도 포기할 수가 없더라구요. 결국 공수부대 특전사를 지원했어요. 낙하산 훈련을 받으면서 하늘을 나는 꿈을 계속 키워왔죠. 제대 이후에도 항공스포츠쪽에 계속 빠져들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게 됐어요. 당시는 마땅한 열기구나 경비행기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이라 패러글라이딩부터 시작했습니다.
” 열기구 경력 15년째인 그는 국내에서 50명 남짓한 열기구 조종사 중 한 사람이다.
널따란 평지가 드문 국내 지형에서 열기구로 밥을 먹고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취미생활로 즐기는 사람들은 있어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은 많지 않다.


비행기나 패러글라이딩 등은 조종사가 마음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열기구는 순전히 ‘바람’에 의존해야 한다.
바람과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머리카락 하나 날리지 않는다.
고도마다 바람방향이 달라서 높낮이를 조정해 방향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바람과 한몸이 돼야 하기 때문에 자연에 순응하려는 자세는 필수적이라고 한다.


아무 때나 열기구를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 추수가 끝나야 한다.
행여 비상시 착륙이 있을 경우 농작물에 피해를 줄까 싶어서다.
또 바람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열기구를 띄울 수 없다.
비행시간도 주로 새벽녘부터 해뜨고나서 2-3시간 후로 제한된다.
이 때가 비교적 기류가 안정적인 시간이다.
해뜰 무렵에 낮게 비행을 하다보면 마을 주민들이 잠에서 깨어나 하늘 위에 떠 있는 기구를 보고 깜짝 놀라는 일도 있다.
그러면 “안녕히 주무셨어요”하고 먼저 인사한다.
땅주인들한테 인심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 또 비행기와 달리 저고도 비행을 하면서 땅 위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열기구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다.


무엇이든 빠른 것이 인기를 얻고 있는 시대에 열기구는 좀 답답하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열기구 자랑이 이어진다.
“하늘 위에서 산책하는 기분과 같은 건데,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요. 구름속에 정지해 있으면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태양만 보이죠. 마치 커다란 우유통에 풍덩 빠진 느낌이랄까요?”

2000년 중국-한국 황해 횡단비행에 나섰던 황영조씨(마라톤 선수), 2001년 한국-일본간 횡단비행에 성공한 김기훈씨(숏트랙 선수) 등을 열기구 조종사로 훈련시킨 것도 송재일 실장의 몫이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하기 힘든 열기구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체험해 봤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항공레포츠 종목 중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는 열기구는 누구나 체험비행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어린이날 잔치가 열리거나 각종 지역축제가 있으면 열기구를 들고 가서 시범비행을 선보인다.
전국의 해수욕장을 순회하면서 열기구 비행 및 교육을 하기도 했다.
유치원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열기구를 탔다.
백혈병 어린이 돕기 열기구 무료체험, 꽃동네 주민들을 위한 열기구 체험행사 등 좀더 의미있는 이벤트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열기구 타고 히말라야 넘고파


국제대회 참가경력도 화려한 편이다.
1992년 중국 북경 국제 열기구 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 자격으로 만리장성을 횡단한 것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말로만 듣던 만리장성을 넘은 것도 대단했지만, 한중수교에 때맞춰 열린 대회라 의미는 각별했다.
하지만 처음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는 룰도 제대로 몰랐다고 한다.
열기구 대회는 15가지의 다양한 종목으로 실시된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다가 타깃 표시가 된 곳에 도착하면 모래주머니를 던져 가장 근접한 사람이 우승하게 됩니다.
조종사가 미리 목표를 지정하기도 하고 심판이 정하기도 하죠. 열기구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등에서 베테랑들이 모두 참여해 열기가 후끈합니다.
한번은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서 태극기를 바구니에 달고 출전했다가 기류를 잘못 타는 바람에 금새 태극기를 내리게 됐어요. 하늘 위에 높이 오른 열기구로 나라망신을 시킬 순 없잖아요.(웃음)” 오는 10월에는 미국 뉴멕시코주 알바쿠키에서 열리는 열기구 축제에 처음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이 축제에는 매년 열기구 600~700대가 참가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열기구 축제로 꼽힌다.


송재일 실장은 사실 하늘에서 하는 것이면 웬만한 것은 다 할 줄 아는 항공레포츠 전문가다.
열기구 하나만으로는 성이 안 차는 모양이다.
경비행기, 패러글라이딩, 행글라이딩 등 자격증만해도 4가지 종류를 갖고 있다.
지난 95년에는 3천미터 상공으로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 1천미터를 번지점프하고 나머지 2천미터는 스카이 다이빙으로 내려와 번지점프 세계신기록을 세워 유명해지기도 했다.
“언젠간 가족들을 열기구에 태우고 히말라야를 넘고 싶습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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