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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더블딥 공포’ 확산
[미국] ‘더블딥 공포’ 확산
  • 박종생/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2.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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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에 대해 이른바 ‘더블딥’(double dip·침체한 경기가 회복되다 재차 침체하는 현상)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수석경제학자만이 이런 현상의 도래를 예측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다른 적지않은 경제학자들도 더블딥의 현실화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내에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8월2일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더블딥의 도래 가능성을 20% 정도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주 전 조사 때의 13%에 비해 7%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더블딥론이 급부상한 계기는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이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훨씬 밑돈 것으로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우선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1%에 그친데다 △6월 공장주문이 7개월 만의 최대폭인 2.4%나 감소하는 등 기업구매가 격감하고 △7월 신규고용이 전달보다 10분의 1이나 적은 6천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최근 발표한 7월 제조업지수와 비제조업지수도 각각 50.5와 53.1로 악화했다.


이런 경제지표들은 5월 중순부터 시작된 증시폭락 사태의 여파로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돼 결과적으로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더블딥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지난해 경기침체기를 극복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소비지출이 앞으로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의 예상을 뒷받침하듯 지난달 소비자신뢰지수는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치(97.1)로 떨어졌다.
소매판매는 6월에 1.1% 상승에 그쳐 상반기의 월평균 증가율인 4.7%를 훨씬 밑돌았다.
가계부채는 2001년 말의 11조1천억달러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11조2천억달러로 늘어나며 사상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 3월 이후 증시폭락으로 3조달러 이상의 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는 점도 거론된다.
신규고용이 소폭으로밖에 늘지 않고 수익목표 달성 압박으로 기업들의 대규모 해고가 임박했다는 점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게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업 경영자들도 향후 경기의 선행지표 구실을 하는 주가가 속락하자 투자를 꺼리고 있다.
6월 내구재 주문이 전문가들의 예상치(0.5% 증가)를 크게 밑돈 3.8% 감소를 나타내고, 공급관리협회가 발표한 지수도 이를 방증해준다.
여기에다 기업들의 매출이 좀체 늘지 않는 점도 투자의욕을 감소시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5일 S&P500 편입종목 중 429개 기업의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 1%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업들은 수익목표 달성을 위해 과감한 비용삭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모건스탠리의 로치는 “경제성장률이 2분기에 1.1% 증가에 그친 점은 소비자, 기업, 그리고 시장이 동요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더블딥의 현실화 가능성이 60~65%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45년간 미국이 경험한 6번의 경기침체기 중 다섯차례나 더블딥 현상이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 없는 상태다.
저명한 경제학자 6명으로 구성돼, 미국 경기변동에 대한 공식 ‘재판관’으로 받아들여지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경기변동평가위원회는 8월6일 “지난 5~7월의 고용 통계를 볼 때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가 소폭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 11월부터 개인소득도 확대가 계속되고 있다”며 “경제활동이 계속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위원회는 경제통계의 수정 가능성과 경기위축의 재발 가능성 등을 고려해 아직은 경기침체의 종료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지는 않다.
이 위원회는 월별로 발표되는 고용, 개인소득, 산업생산, 도소매판매 등 4개 통계를 경기변동을 판단하는 핵심지표로 삼고 있다.
반면 분기별 GDP는 잦은 수정 때문에 핵심적 판단지표로 삼지 않는다.



금리 추가 인하설 ‘솔솔’


미국 경제가 앞으로 침체에 빠져들지 여부는 아무래도 소비자들의 향후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지출은 미국 경제활동의 3분의 2나 차지하며 미국 경제가 지난해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데 핵심 구실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소비지출 행태가 어떻게 변할지는 유동적이다.
자동차 판매는 계속 늘어나 지난 7월에는 5월과 6월의 월평균 1610만대보다 200만대나 많은 1810만대가 팔렸다.
같은달 기존주택 판매는 11.7% 감소했으나 신규주택 판매는 증가해 올해 신기록을 세울 기세다.
반면 소매점이나 백화점의 판매는 부진해 대조적 양상을 보였다.
세계 최대 소매업체인 월마트조차도 기대만큼 실적이 나오지 않았다.
낙관론자들 사이에서는 집값 상승이 주가하락에 따른 자산손실을 일부 만회해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시각도 있다.


물론 최근 경제지표들은 미국 경제가 더블딥으로 빠져들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애초 강력한 회복이 예상됐던 하반기 경제전망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 때문에 주요 투자은행들과 증권사들은 FRB가 경기가 다시 침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올해 연말까지 추가로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연말 금리를 지금보다 0.75%포인트 낮은 1%로 예상한 것을 비롯해, 도이체방크증권, 리먼브러더스 등도 금리인하를 예측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8월7일 최근 전세계 경기의 회복둔화와 증시약세로 인해 FRB가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라는 예측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근 발표된 각종 경제지표들이 부정적 결과를 나타내면서 이른바 더블딥 현상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선물시장에서도 금리인하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투자운용사인 인베스텍 데이비드 페이지 경제학자는 “경제지표들이 비관적으로 나타나면서 금리정책의 방향을 바꿔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애초 기대와는 달리 연준은 금리인상이 아니라 인하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11차례의 금리인하로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연방기금 금리(현재 연 1.75%)는 추가 금리인하가 단행될 경우 1930년대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모건스탠리증권 아미 폴스 이머징마켓 고정소득 담당 연구소장은 “FRB의 금리인하 조처는 미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진입 여부에 달려 있다”고 전제한 뒤 “금리인하를 예상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달보다 0.1%포인트 상승해 전년 동기보다 1.1%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물가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거의 희박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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