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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케이스 스터디] 영혼을 나누는 창업 파트너
[경영케이스 스터디] 영혼을 나누는 창업 파트너
  • 양우성/ 공공정책 및 경영전
  • 승인 2002.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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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하면 곧 워크맨 신화가 떠오른다.
소니는 세련된 디자인의 새로운 전자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해온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1976년 '소니 비전'의 저자 닉 리용이 소니의 경이적 발전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소니의 ‘이념’이었다고 설파한 이래, 미국 경영학계는 이른바 ‘소니 개척정신’(sony pioneer spirit)을 주목해왔다.


“소니는 개척자다.
소니는 절대 다른 사람의 뒤를 따라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를 통해서 소니는 전세계에 봉사하고자 한다.
…소니는 사람의 능력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소니는 언제나 사람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소니의 생명력이다.


수려하고 격조있는 문장인 이 ‘소니 개척정신’은 소니그룹을 미국으로 진출시켜 다국적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모리타 아키오 전 회장이 가다듬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니 개척정신은 모리타 아키오의 작품일까? 아니다.
원래 소니 정신의 뿌리는 창업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부카는 꿈꾸고 모리타는 실현하고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직후인 45년 가을 도쿄. 폭격으로 군데군데 부서진 시내 중심 한 목조 빌딩의 구석에 도쿄통신연구소라는 이름의 회사 간판이 걸렸다.
회사가 설립된 지 불과 몇달 지나지 않은 46년 정월에 이 회사의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는 자신이 기업을 만들어 사업가의 길에 뛰어든 계기와 미래의 비전을 담은 10여쪽짜리 문서를 만들어 비장한 마음으로 10명도 안 되는 직원들에게 발표한다.


‘설립취지서’라는 이 문서 서두에서 이부카 마사루가 천명한 것은 ‘기술자를 위해, 기술자에 의해’ 회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의 첫째 목적은 기술자들이 기술의 기쁨과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문구에 창업자 이부카의 사업 목적과 비전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이 취지문은 아직도 소니의 열정적 기술개발자들이 경전처럼 암송한다.
이 문서는 소니의 창립자였던 이부카 마사루 본인이 기술자로서 진심으로 평생 꿈꿨던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훗날 모리타 아키오가 완성한 소니의 개척자 정신은 바로 이부카 마사루가 작성한 이 거칠고 투박한, 엔지니어 특유의 문장을 가다듬은 것이다.
기술인의 이상을 간직한 창업자 이부카, 그리고 이부카의 이상을 수십 년 뒤 다국적 기업의 세련된 이데올로기로 승화시킨 모리타. 이 두사람의 우정과 파트너십은 바로 오늘날 소니를 존재하게 한 주인공이다.


이부카 마사루가 기술진보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속에서 꿈을 꾸면서 살아간 몽상가 혹은 이상주의자였다면, 모리타 아키오는 이부카의 그 꿈을 존경하고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던 실천가이자 집행자, 수호자였다.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인연을 맺은 건 44년 늦여름이었다.
두사람은 일본 군국정부의 비밀병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다.
'소니-더 프라이빗 라이프'의 저자인 존 네이던 박사는 이 두사람의 인연을 사뭇 운명적이면서도 우정을 뛰어넘는 형제애 관계로 묘사한다.


모리타 아키오보다 13살이나 연상인 이부카 마사루는 키와 체격이 크고, 손이 삽처럼 튼튼하고 넙적해서 농사꾼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리타 아키오는 귀족적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세련된 인상을 풍겼다.
두사람의 공통점은 기술자로서 기술을 사랑하였다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전쟁보다는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술을 사용하고 싶어했다.


이부카는 창업 초기에 이런 자신의 마음을 모리타 아키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대학의 물리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자의 꿈을 키우던 모리타 아키오는 우연히 '아사히신문'에서 이부카 마사루에 관한 기사를 읽고 반가운 마음에 이부카를 찾아갔다.
그리고 모리타는 대학 강의와 이부카 마사루의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동업자로서 인연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제국군대의 군장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학강사 자리를 잃은 모리타 아키오는 차라리 잘됐다며 이부카 마사루의 회사에 합류한다.
이때만 해도 이부카의 회사는 꿈만 아름다웠지, 제대로 된 사업계획이나 시장에서 환영받는 탄탄한 제품 하나 없는, 그야말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신생 벤처기업에 불과했다.


창업 초기부터 이부카 이하 전직원은 무엇을 개발하면 돈이 될까 고민하면서 회의를 거듭했다.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개발했던 전기밥통 사업이 보기 좋게 실패하면서 이부카 마사루는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돈 되는 일을 찾아서 이리저리 뛰어야 했다.
그후 이부카의 회사는 우연히 고장난 라디오들을 수리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현상 유지를 하는데, 모리타 아키오가 합류한 건 바로 이 즈음이다.
이때 모리타 아키오는 자신의 결정만으로 이부카의 회사에 합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양조업을 오랜 가업으로 이어온 모리타 가문의 장자였던 아키오에게는 가업을 잇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남의 사업에 합류하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리타 아키오의 아버지는 아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꽤나 큰 거금을 투자한다.
이부카 사장으로서는 기술진보와 사업에 대한 비전이 비슷하고 말이 통하는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일인데, 그 아버지로부터 거금의 투자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마음으로 대화하는 둘만의 정신세계


이렇게 해서 이부카와 모리타는 소니를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자, 또 소니를 상징하는 두 기둥이 된다.
그들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트리니트론 컬러 TV를 개발했다.
또 워크맨을 만들어 소니를 전세계에 우뚝 세우고, VTR를 개발했다.
쉴새없이 새로운 가전제품, 영상음향기기를 개발해내는 두사람의 열정과 파트너십이야말로 소니의 신화를 창조하는 큰 동력이었다.


소니의 창업 파트너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의 관계는 연인에 가까울 정도로 그 인연의 끈이 강하였다고 한다.
두사람의 부인과 자식들조차도 두사람이 대화하는 것에 끼어들 엄두를 못 내거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두사람만의 언어와 정신세계를 갖고 있었다.
이부카 마사루의 장남은 존 네이던 박사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두분 모두 병으로 쓰러지신 지금도 모리타씨가 아버지를 만나러 오시거나, 아버지가 모리타씨에게 가시면 두분은 손을 꼭 잡고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잠자코 앉아 계십니다.
말씀 한마디 없어도 두분의 마음은 완벽하게 통하는 겁니다.
” 두사람은 노년에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뒤 노환으로 질병과 싸우면서도 같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서로를 의지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꿈꾸는 일을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고, 그러면서 성취감과 보람을 얻는 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인생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처럼 엄청난 부와 명예도 얻는다면, 세상의 야심 넘치는 사업가들에게 더 부러운 일이 또 있을까?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업 파트너와 함께 사업을 가꿔간다면 비록 세계적인 거대기업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성공한 사업이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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