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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인터뷰] 존 블랜손 / HSBC은행 한국대표
[탐방인터뷰] 존 블랜손 / HSBC은행 한국대표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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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은행 존 블랜손 대표는 한국에서 사업을 잘 벌이는 외국인 경영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는데도 한국 직원들과 재미있게 지낸다.
월드컵 땐 축제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전직원한테 한국대표팀 운동복을 지급했다.
직원들은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 옷을 입고 출근해 회의실에서 다같이 맥주를 마시며 떠들썩하게 관전했다.
한 직원은 “이전 대표였으면 그렇게까지는 안 해줬을 것”이라며 슬쩍 현 대표의 리더십을 치켜세운다.


존 블랜손 대표는 직원들 자랑에 침이 마른다.
2000년 4월 주택담보 대출 상품을 처음 내놨을 때 전화 문의가 쏟아져 직원들 모두 새벽 두세 시까지 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딴에는 직원들 불평이 쏟아지겠거니 하고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일했고 사무실 분위기는 점점 더 좋아지기만 했다.
“어떻게 저렇게 일을 열심히 하나, 놀랐어요. ‘모두가 함께한다’는 분위기였어요. 외국에선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죠.” 그는 연신 벙실벙실 웃으며 말한다.
리더나 직원이나 허물 없이 밝다.




2000년 존 블랜손 대표가 취임한 뒤 HSBC은행 한국대표부는 연이어 히트상품을 내놨다.
2000년엔 법률비용과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춘 주택담보 대출을 선보였다.
지난해엔 국내에서 처음으로 차이나 펀드를 도입했다.
올해에 새로 선보인 정기투자적금은 발매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금융가의 화젯거리다.
템플턴그로쓰펀드, 피델리티펀드 등 국내외 우수 펀드를 최저 30만원부터 정기적금식으로 쪼개어 파는 상품인데, 선진적 투자방법인 정액분할식 투자법을 우리 금융시장에 맞게 적용해 투자자들한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은행의 최근 성장세는 가파르다.
만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지점은 3개에서 8개로 늘었다.
2001년 12월 기준으로 총 수신액은 1조6096억원, 여신액은 1조7412억원에 이른다.
특히 소매금융부문의 성장이 눈부시다.
소매금융부문의 여신은 10배 이상, 수신은 3배 이상 늘었다.
임직원 450여명이 일궈낸 실적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은행의 수익이 지금까지처럼 가파르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한국만의 특이한 존재인 거대한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시장 때문이다.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덕에 은행들은 높은 수익증가율을 누렸지만, 그 때문에 부실채권의 위험도 커졌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한국 영업실적을 늘려가겠다는 그의 시장전망과 사업계획을 들어봤다.



영업 확장계획은 어떻습니까? 서울은행 인수 포기 이후 차선책은 마련하셨습니까?

“현재로선 인수합병(M&A) 계획은 없습니다.
기존 사업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앞으로 M&A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좋은 기회가 생기면 하겠다는 것이죠.”

지점이나 자회사 확장계획은 어떻습니까?

“서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지점은 기본적으로 계속 확장하겠다는 정책입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결정된 바 없습니다.
일단은 8개 지점 수준을 지킬 계획입니다.
자회사 설립이나 인수는 계획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작은 회사를 사는 데엔 관심이 있습니다.
아직 특별히 맘에 두고 있는 업체는 없습니다.


대금업, 그러니까 사채시장 진출 계획은 있으십니까? 씨티그룹은 계열사를 통해 이미 진출했는데요.

“전혀 계획이 없습니다.
우리의 전략이나 이미지와 맞는 사업이 아니에요. 게다가 한국엔 이미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시장이 많이 컸습니다.
이것도 상당히 높은 금리의 대출이죠. 사채는 그것조차 빌려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용합니다.
위험이 높죠. 진출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여수신 증가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 소매금융부문의 성장이 눈에 띄는데요. 앞으로도 소매금융에 주력하실 계획이십니까?


“특별히 집중하고 있는 사업분야는 없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소매금융부문이 많이 크긴 했습니다만, 그건 새로 시작해서 그런 겁니다.
소매금융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새 사업입니다.


HSBC은행엔 강남 부유층 고객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타깃 고객은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우리 은행 지점이 강남에 많다 보니 부유층 고객이 많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부자부터 일반 서민까지 고객층은 넓습니다.
예컨대 주택담보 대출은 기본적으로 일반 대중고객을 대상으로 한 상품입니다.
회전대출, 정기투자적금은 샐러리맨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부자 고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중고객을 지향할 겁니다.


HSBC은행의 모기지론은 국내 어느 은행보다 싼 금리와 좋은 상환조건으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모기지 시장 전체로 보면 우리 은행이 가진 시장은 땅콩같이 작은 존재입니다.
(웃음) 우리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이 인기를 끈 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인지대, 근저당 설정비 등 법률비용을 면제해줬고 금리도 1%포인트 이상 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은행이 그런 상품을 내놓아서 우리의 시장점유율이 전만큼 늘어나고 있진 않아요.”

모기지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으십니까?

“한국은 성장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물론 제가 있던 뉴질랜드만 봐도 한국보다 훨씬 더 다양한 금리, 다양한 상환기간의 상품들이 발달해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적어도 5년 뒤면 한국 고객들도 그런 상품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주택담보 대출, 정기투자적금 같은 인기상품의 비결은 뭡니까?

“HSBC그룹은 전세계 81개국에 7천여개 지점과 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요. 어떤 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반응이 좋다는 결과가 나오면 다른 나라 다른 시장에 이 아이디어를 끌어다 적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계속 좋은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 은행들은 올해 상반기에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은행 인수합병, 지점수 확대,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한 확장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런 호시절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높습니다.


“한국 은행들의 수익이 높아진 건 기본적으로 정부가 구조조정(리스트럭처링)과 체질개선(리엔지니어링)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 사업부문의 수익이 높아진 것도 시중은행 수익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죠. 그러나 부실채무가 많아지는 건 은행으로선 큰 부담입니다.
실업률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홍콩에선 신용카드가 현금 서비스를 받는 것보다 물건을 사는 데 많이 쓰이는데도 실업률이 7.8%까지 높아지자 금융권에 부실채무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한국에선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시장이 더 크지 않습니까. 부실채무가 늘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높은 거죠. 크게 위험한 수준은 아직 아니지만 앞으로는 한국 은행들의 수익증가율은 떨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에서 활동하시는 기업인으로서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한국엔 규정이나 규제가 많은데 그 내용이 모호해서 외국 기업들이 잘 모르고 실수로 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이 명확하면 사업을 하기도 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한국은 많이 변하고 있어요. 방향도 매우 좋습니다.
2년 반 전엔 외국 회사들이 내놓는 불평불만 리스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길었습니다.
그동안 정부 당국이 노력해 많이 개선됐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늘어 적대적 관계를 느낄 법도 했는데 외국인한테 상당히 친근한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요.”

한국 정부는 한국을 아시아 금융, 비즈니스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까?


“정부가 ‘하겠다’고 하니 ‘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 30~40년 동안 한국에선 정부가 ‘한다’고 하면 실제로 했습니다.
(웃음) 한국이 좋은 점은 아시아 금융의 중심이 동남아에서 동북아로 옮겨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홍콩 등 다른 경쟁지보다 세금이 여전히 높고 언어장벽이 높다는 점은 현재로선 문제거리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이건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봐요. 또 하나 좋지 않은 점은 기업을 차별하는 문화입니다.
런던이 금융중심지로 성공한 건 기업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런던엔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들어가 있지요. 런던 사람들은 이 기업이 어느 국가 소유인지, 영국에 좋은지 아닌지, 이런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뉴질랜드도 거의 모든 기업이 외국 소유입니다.
한국 은행들도 외국인 지분율이 높습니다.
국적을 따지지 않고 기업들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기회를 보장하는 개방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올해로 HSBC에서만 31년째 근무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한 직장에서 그렇게 오래 근무하시게 됐습니까?


“내가 봐도 미친 짓이에요.(웃음) 영국 기준으로 봐도 특이하죠. 우리 은행은 해외근무가 많아요. 현재 500여명의 임직원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근무하고 있지요(그 역시 미국, 프랑스, 사우디, 요르단, 홍콩, 뉴질랜드를 두루 돌아다닌 국제금융통이다). 해외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동창처럼 서로 챙기고 도와주죠. 저도 일본 등 다른 나라에 수시로 전화해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하고 이런저런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습니다.
해가 가든지, 달이 가든지 평생 가족 같죠. 분위기가 그래선가 우리 은행엔 오래 근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HSBC그룹 회장인 존 본드 경은 36년, CEO 케이스 위트슨은 3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인 데이비드 엘든은 34년 동안 근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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