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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표산업, 대표기업④ 반도체 / 삼성전자
[기획] 대표산업, 대표기업④ 반도체 / 삼성전자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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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반도체학회가 지난 2월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 회의 ‘ISSCC 2002’에서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사장이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황 사장은 이때 2005년부터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메모리 반도체 신성장론’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PC시장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어 메모리 산업의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비관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었다.
그는 게임기와 이동전화, 디지털가전을 메모리 반도체의 새로운 대규모 수요처들로 지목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상 초유의 호황기였던 1995년의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95년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우95라는 혁신적 운영체제를 탄생시킨 해로 기록된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이 새로운 운용체제는 메모리를 대폭 늘려야만 제대로 돌릴 수 있었다.
기존 윈도우3.1은 4메가 정도의 메모리만으로 충분했지만 윈도우95는 기본적으로 16메가의 메모리를 갖춰야 했다.
한마디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순식간에 4배로 커진 것이다.



이동전화·디지털가전이 새 수요처


PC 제조업체들이 연초부터 D램을 대량으로 구매해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D램 가격이 치솟기 시작해, 16메가짜리가 58달러까지 올라갔다.
당시 PC 가격이 평균 1200달러였고, 16메가바이트의 메모리를 갖추려면 464달러(58달러*8개)가 들어갔다.
D램 업체가 전체 PC 판매가의 39%를 챙겨간 셈이다.
지금은 이 비율이 6%대로 떨어졌다.
D램 업체들의 입지가 형편없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95년의 대호황 분위기에 취해 너도나도 설비증설에 나서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업계를 뒤흔든 격렬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소 회복되는 듯하던 반도체 경기는 2001년에 다시 한번 주저앉았다.
전세계 D램 업체들 가운데서 독보적 실적을 이어가던 삼성전자도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반도체부문에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장성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메모리 사업에서 과거와 같은 성장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경기를 덜 타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PC 이후’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하고, 경기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적 사업구조를 구축하는 것은 D램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당면 과제다.


이동전화와 디지털가전이 침체된 반도체 업계의 탈출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문제는 기대만큼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PC 이후 반도체를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는 제품들이 언제 등장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설사 가전의 홈네트워크가 실현되어 반도체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도 복합칩(Soc·시스템 온 칩)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의 ‘진화’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으로 쓰이는 표준 메모리 단계에서 벗어나, 특정 시스템에 최적화된 시스템 솔루션 메모리로 발전하고, 결국은 반도체의 모든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는 ‘퓨전 메모리’ 단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여러 곳에서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D램 중에서도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신제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 LSI 분야 세계 5위 목표


삼성전자에서 생산하고 있는 D램만 해도 SD램, EDO D램, 램버스 D램, DDR(더블데이터레이트) D램 등 4가지다.
이중 SD램(싱크로너스 D램)은 처리속도가 100~133MHz로 현재 D램 중 주력제품이다.
EDO D램은 SD램보다 먼저 나온 제품으로, 일반 D램의 속도를 약간 향상시킨 것이다.
DDR D램과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인 램버스에서 개발한 램버스 D램은 처리속도가 각각 266MHz, 800MHz로 고속이다.
삼성전자는 빠른 처리속도를 필요로 하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 등 게임기에 DDR D램과 램버스 D램을 공급해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최석포 우리증권 연구위원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DDR D램의 시장비중이 가장 커질 것”이라며 “경쟁업체 중 삼성전자처럼 제품 포트폴리오를 잘 갖춘 곳은 없다”고 말했다.
범용 제품인 SD램의 가격이 떨어져도 삼성전자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지 않는 저력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삼성전자는 고부가가치 제품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지난 2분기에 반도체부문에서만 1조69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의 ‘진화’가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제품은 크게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뉘며, 이 둘 사이에는 결코 간단하게 뛰어넘을 수 없는 기술적 간격이 존재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로 대량생산에 적합하다.
메모리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설비투자가 필수적이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시스템 LSI’(대형 집적회로)로 불린다.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LSI는 대표적 고부가가치의 지식집약형 제품으로, 설계기술이 그 핵심에 놓인다.


시장규모로 본다면 시스템 LSI가 메모리 반도체를 압도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83%를 시스템 LSI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 LSI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매출의 78%를 차지하는 불안정한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각종 전자제품의 구동과 운영에 필수적인 시스템 LSI의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 2분기 메모리에서는 1조869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반면, 시스템 LSI에서는 4320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뿐이다.


삼성전자는 8월27일 2007년까지 4조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시스템 LSI 시장에서 세계 5위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시스템 LSI 분야에서 세계 20위에 머물렀을 뿐이다.
계획대로라면 현재 메모리 75%, 시스템 LSI 25%인 사업비중도 60 대 40 정도로 바뀌게 된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연구인력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국내외 인재를 대거 영입해 현재 1600여명인 연구개발 인력을 5천명 선까지 늘릴 계획이다.



홈·모바일 시스템 LSI에 집중투자


시스템 LSI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관련 업체들과의 제휴협력 관계도 필수적이다.
특히 시스템 업체들과 제휴가 중요하다.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앞으로 인텔, 시스코, 노키아 같은 시스템 업체들과 협력해, 이들이 요구하는 솔루션을 함께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하는 단품 업체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내놓은 시스템 LSI 육성전략의 특징은 삼성전자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는 것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LSI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그만큼 품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모두 잘하겠다는 것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홈·모바일 시스템 LSI’를 집중투자 대상으로 정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D램 업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있다.
지난 2분기 매출비율만 보더라도 반도체가 32.6%, 통신이 27.9%, 디지털가전이 24.6%, 생활가전이 10.7%, 기타가 4.2%를 차지하고 있다.


88년 반도체 사업이 처음 흑자를 실현하기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때문에 삼성그룹이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투자로 D램 사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반도체 산업 20주년을 맞은 올해 삼성전자는 D램의 성공을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주도하는 주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간단하지 않은 과제와 씨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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