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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온라인게임 사전등급제 ‘태풍’
[디지털] 온라인게임 사전등급제 ‘태풍’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2.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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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국 곳곳이 물에 잠기고 건물이 무너졌으며, 수재민의 마음도 덩달아 무너져내렸다.
그런데 루사 못지 않은 태풍이 온라인에도 불어닥칠 전망이다.
온라인게임 업계 얘기다.
이들이 맞을 태풍은 오는 10월부터 시행될 ‘온라인게임 사전등급제’(이하 사전등급제)다.
그동안 사전등급제 주관기관인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와 온라인·모바일게임 업체는 사전등급제 시행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게임 업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등위는 10월부터 사전등급제를 정식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심의 유예기간인 9월말까지 자사 게임에 대한 사전심의를 영등위로부터 받아야 한다.
영등위는 현재 게임의 사행성과 선정성, 폭력성 등을 기준으로 ‘18살 이용가’와 ‘전체 이용가’로 나눠 등급을 매길 방침이다.
단 “업체의 신청이 있을 경우엔 12살 또는 15살 이용가 판정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게 영등위의 설명이다.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점은, 자사 게임이 ‘18살 이용가’ 판정을 받을 경우 주요 고객층인 청소년층을 한꺼번에 잃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대부분의 온라인게임에 대한 폭력성과 선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형편이어서, 서비스 업체 입장에선 사전등급제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잘못 하다간 이용자 급감으로 업체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업체별로 청소년 고객을 계속 확보하기 위한 다각도의 방안 모색에 들어갔다.
엔씨소프트·한빛소프트, 대책 마련 나서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전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코스닥 황제주 엔씨소프트 www.ncsoft.co.kr의 주가는 지난 4월18일 25만65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그 이후 주가는 계속 떨어져, 8월5일에는 10만8천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사전등급제에 따라 심의를 거쳐 ‘18살 이용가’ 판정이 날 경우 엔씨소프트의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였다.
리니지 이용 고객의 절반 가량이 18살 미만 청소년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가 폭락도 무리가 아니다.
엔씨쪽도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다.
8월30일 엔씨소프트는 온라인게임 ‘샤이닝로어’를 개발한 게임업체 판타그램의 지분 26%를 72억5천만원에, 판타그램의 자회사인 판타그램인터랙티브의 지분 16.7%를 20억원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엔씨소프트는 샤이닝로어의 국내외 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모두 양수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을 판타그램과 맺었다.
그동안 ‘게임 퍼블리셔’를 주창하며 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의 ‘에버퀘스트’나 크립틱스튜디오의 ‘시티 오브 히어로’ 등의 국내 판권을 따낸 엔씨소프트이기에, 이번 판타그램의 샤이닝로어 퍼블리싱도 엔씨소프트의 퍼블리싱 사업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판타그램 인수는 엔씨소프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게임 도중 상대방 캐릭터 죽이기(PK·Player Killing)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리니지의 경우, 이 상태로 사전심의를 받으면 ‘18살 이용가’ 판정이 날 확률이 높다.
이런 시점에서 캐릭터나 줄거리 면에서 동화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샤이닝로어를 확보함으로써 사전등급제로 인한 위험을 피하고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제공해 수익창구를 다각화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이번 계약 체결 이후 엔씨소프트 주가는 계속 올라 9월4일 현재 14만2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엔씨소프트의 행보에 대해 증시 전문가들도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동원경제연구소 구창근 연구원은 “샤이닝로어 오픈 베타 서비스의 성공은 유료화 이후의 흥행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게임의 특징도 리니지와 차별되는 동화풍 캐릭터 및 스토리여서 다양한 취향의 게임 이용자를 흡수할 수 있는 게임 라인업 구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엔씨소프트와 국내 게임 업계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한빛소프트 www.hanbitsoft.co.kr에게도 사전등급제는 골칫거리다.
‘스타크래프트’란 대박 이후 야심차게 내놓은 ‘워크래프트3’가 영등위로부터 ‘15살 이용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빛소프트는 ‘전체 이용가’ 판정을 목표로 원본 게임의 일부 내용을 수정한 청소년용 버전인 ‘워크래프트3 수정판’을 내놓았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예상보다 까다로운 영등위의 심의에 막혀 수정판이 오히려 ‘18살 이용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워크래프트3 수정판의 심의결과가 알려진 8월5일, 국내 게임 업체의 주가는 동반 폭락했다.
한빛소프트에 비상이 걸린 건 당연한 일이다.
한빛소프트는 즉각 영등위 심의결과에 반발, 재심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영등위의 재심의가 시행되기 전인 8월12일에 ‘워크래프트3 재수정판’을 내놓고 다시 심의를 요청했다.
결국 워크래프트3 재수정판은 영등위로부터 ‘12살 이용가’ 판정을 받았고, 한빛소프트가 이에 대해 승복함으로써 영등위와 한빛간의 힘겨루기는 일단락됐다.
기대했던 ‘전체 이용가’ 판정을 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중학생 이상의 이용자를 고객으로 확보하게 돼 PC방 영업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교육과 게임 결합한 서비스도 잇따라 국내 선두격인 두 업체가 사전등급제와 힘겹게 씨름하는 동안, 온라인게임 업계 한쪽에선 태풍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바람막이 작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사행성이나 폭력성 등을 애초 게임 요소에서 제외하기 위해 온라인교육 업체와 손을 잡는 게임 업체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교육용 게임을 공동 개발하거나 교육과 게임이 결합된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 등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눈높이 마케팅’에 한창이다.
‘바람의 나라’로 유명한 온라인게임 업체 넥슨 www.nexon.com은 인터넷 학습지 사이트 와이즈캠프 www.wisecamp.com와 손잡고, 게임과 교육을 결합한 상품인 ‘와이즈캠프 플러스’를 7월말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이용자가 일정 분량의 학습을 완수하면 게임을 통해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것으로, 와이즈캠프의 교육 서비스와 넥슨의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넥슨캐시’가 결합돼 있다.
학습지 전문업체 대교 www.daekyo.co.kr는 온라인게임 개발업체 재미창조 www.jmcj.co.kr와 공동 개발한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디미어즈’를 9월1일부터 정식 서비스하고 있다.
상대방 캐릭터와 전투를 벌이는 일반 롤플레잉게임과 달리, 디미어즈의 특징은 전투력과 지력을 동시에 길러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력을 키우기 위해선 대교쪽에서 제공하는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학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레 교육 효과를 올리는 방식이다.
생명공학을 주제로 한 독특한 온라인게임도 눈길을 끈다.
한국과학문화재단 www.scienceall.com이 학습용 및 지능개발용 게임을 주로 만들어온 인터노리 www.internori.com와 함께 제작, 서비스하고 있는 ‘바이오니아’가 그 주인공이다.
게임의 배경부터가 인체 내부로 독특하며, 게임 방식도 3가지 나노로봇 캐릭터가 인체의 각종 병원체와 맞서 싸우면서 질병의 원인을 분석, 퇴치하는 식이다.
게임 아이템들도 실제 인체에서 합성되는 각종 단백질을 활용해 제작됐기 때문에,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생명공학의 기본 개념들을 익힐 수 있도록 해준다.
온라인게임 업체 입장에서 청소년 고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청소년층은 게임 발표 초기의 붐을 주도하는 세력인 데다, 충성도 높은 게임 이용자이자 유료 아이템 구매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영등위의 사전등급제 강행으로 온라인게임 업계는 단골을 대거 잃을 위기에 처했다.
때로는 정면돌파로, 때로는 연합군을 형성한 우회전략으로 게임 업계는 생존을 위한 청소년 고객잡기에 바쁜 계절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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