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45 (토)
[특집②] 부산AG, ‘변방’에서 ‘중심’으로
[특집②] 부산AG, ‘변방’에서 ‘중심’으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9.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의 참가로 부산아시안게임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지방 개최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북한이 318명의 선수단과 355명의 응원단을 보내기로 전격적으로 결정하면서 국내외의 이목이 쏠리는 ‘엄청난’ 이벤트로 격상됐다.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북한팀의 참가로 수백억원의 홍보비를 뿌린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아시안게임은 월드컵의 인기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 해온 게 사실이다.
부산시가 2002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결정된 것은 1995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부산아시안게임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지금까지 아시안게임 준비과정은 무관심이라는 악조건과의 힘겨운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IMF 사태 이후 찾아온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조직위 관계자들은 부산아시안게임을 ‘불운한 대회’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참가 소식과 함께 최근 아시안게임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물론 월드컵 경기가 끝난 영향도 있다.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아시안게임 공식후원사들이 북한의 참가 결정 이후 광고 물량을 대폭 늘리는 등 북한특수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국내외 언론의 반응은 더 뜨겁다.
대회 미디어센터(MMC)에는 입주신청이 쇄도해 그 시설을 애초 6천명 수용 규모에서 7천명 규모로 크게 늘렸다.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홍재균 공보팀장은 “북한 참가를 계기로 중앙 언론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월드컵 이전에는 아시안게임 관련 기사를 단 한건도 제대로 다뤄주지 않았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입장권 판매율 높이기에 안간힘


조직위 입장에서는 북한팀 참가가 결코 ‘놀라운 뉴스’는 아니다.
조직위는 부산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에 북한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어려운 여건에도 2~3년 전부터 꾸준하게 물밑 작업을 해왔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중앙정부를 통해 북한 체육관계자와 접촉을 벌여왔고, 부산시장과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의 방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막판에 북한팀의 참여가 결정됐지만, 북한의 참가를 전제로 대회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다.


북한 선수단은 다른 나라 선수단들과 마찬가지로 선수촌에 들어간다.
만경봉호를 타고 내려오는 응원단은 다대포항에 배를 정박시키고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부산시와 조직위는 응원단의 이동에 필요한 버스와 승용차 등 수송차량을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시찰이나 관광을 요청할 경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대비도 해놓았다.
소모적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인공기 게양 문제는 북한쪽의 양해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OCA 헌장과 국제대회 관례에 따라 경기장과 본부호텔, 조직위에만 인공기를 게양한다.
또 북한 응원단은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하기로 했다.
조직위 관계자는 “실무협의에서 북한은 남측의 질서와 안내에 적극 따르기로 했다”며 “조직위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먼저 나서는 등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태풍 피해를 입은 일부 경기장의 정비작업이 완료되는 등 대회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9월7일 임진각을 출발한 성화가 전국을 순회하고 있으며, 부산 시내에는 각양각색의 환영 장식물들이 내걸리고 있다.
16일 미디어센터가 개관하고 23일 선수촌이 개촌하면 곧 대회 개막일(29일)이다.
부산아시안게임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의 참가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개·폐회식, 축구 결승전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가 여전히 4~5%의 낮은 입장권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역대 대회에서도 현장구매가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지방 개최라는 근본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별다른 묘책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다.
변상중 2002부산아시아드지원협의회 사무국장은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잔치는 썰렁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 참가로 조성된 관심을 어떻게 경기 관람으로 유도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2한일월드컵 때는 부산에서 3경기가 열려 모두 15만명이 경기를 봤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은 예선까지 포함하면 모두 260만~270만석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부산 인구가 총 380만명이고, 이중 관람이 불가능한 어린이와 노약자를 빼면 부산시민 한사람이 적어도 한경기 이상 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산시와 조직위가 ‘1인 1경기 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회식과 폐회식을 제외한 일반경기 입장권이 3천~3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알리고 있다.



부산시, 나라별로 서포터스 구성키로


부산만의 대회가 아닌 만큼 86서울아시안게임이나 88서울올림픽 때 이상으로 중앙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부산아시안게임은 지방화 시대의 첫작품”이라며 “이번 대회가 잘 끝나야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나 평창동계올림픽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각급 학교의 가을 수학여행과 각종 산업연수 코스를 부산으로 집중하도록 유도해줄 것을 건의해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아시안게임을 관람할 수 있도록 관련 기업들의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부산시는 44개 참가국(동티모르 포함)을 대상으로 각 나라별로 200~2천명 규모의 서포터스를 만들어 아시안게임의 응원 열기를 주도해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포터스는 본청 과장급들이 책임자를 맡고 공공기관, 기업, 사회·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이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경기장 응원은 물론 해당 국가선수들의 입국에서부터 출국까지 전과정을 돕는다.
부산뿐만 아니라 울산, 창원, 마산, 양산 등 아시안게임 일부 종목 경기가 열리는 도시들도 자체적으로 서포터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대회기간 동안 총 4만명의 서포터스가 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는 별도로 아시안게임 유치위원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2002부산아시아드지원협의회가 3천~5천명 규모의 ‘갈매기 응원단’을 조직해 북한과 아프가니스탄 응원에 나선다.
변상중 사무국장은 “월드컵 기간에 선풍적 인기를 누린 길거리응원도 다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응원종목을 축구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전종목을 응원할 것인지를 놓고 후원업체와 최종 협의중이다.


부산아시안게임은 흑자 대회가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돈을 남긴 대회로 기록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기현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기획재정부장은 “전체 예산의 많은 부분을 보조금으로 충당하고 있어 흑자냐 적자냐는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며 “대회운영에 들어가는 필요경비를 조달해 쓸 수 있는 균형수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위원회의 예산 규모는 총 2588억원이다.
이중 보조금이 1130억원을 차지한다.
세부적으로는 국비 444억원, 시비 410억원, 체육진흥기금 276억원 등이다.
나머지 1458억원은 자체 수익사업으로 충당한다.
자체 수익사업은 휘장사업과 방송 중계권 판매, 입장권 판매, 기타 수익사업으로 이루어진다.
휘장사업 수익과 중계권료 수익은 마케팅 대행사인 SM코리아가 먼저 수수료를 챙기고 나머지를 OCA와 대회조직위원회가 1 대 2의 비율로 나눈다.
입장권 판매로 예상되는 172억원의 수익은 전액 조직위원회 몫이다.


휘장사업을 통해 선정하는 대회 공식후원사는 후원금 규모에 따라 파트너, 스폰서, 서플라이어, 라이센서 등 4등급으로 분류된다.
파트너는 600만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내야 하며, 경기장내 A보드 설치권과 휘장사용권 등 다양한 마케팅 권한을 갖는다.
이번 대회에는 삼성전자, KT, SK텔레콤, 우리은행, 스위스 타이밍, 오츠카, 후지제록스 등 7개 업체가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쌍용정보통신·미래넷·제일모직은 스폰서로, 대한항공·대한통운·삼성화재는 서플라이어로 각각 참여한다.



대규모 투자로 도시 인프라 개선


그러나 후원사 선정과정이 결코 순조롭지는 않았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비해 아시안게임 휘장사업의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후원사로 참여하길 꺼렸던 것이다.
자동차부문 후원사는 끝내 선정하지 못했다.
북한의 참가를 계기로 기업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이 짧아 후원사의 추가 확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역 기업이 한곳도 후원사로 참여하지 않은 것도 아쉬움을 남긴다.
이일재 부산상공회의소 조사홍보팀 과장은 “부산 기업의 후원사 참여를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며 “부산지역 기업의 99.6%가 중소기업이고, 부품·납품 업체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애초부터 무리한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에 이은 제2도시라고 하지만 부산지역의 경제 사정은 아주 열악한 실정이다.
신발, 섬유 등 전통적 주력 기업들이 싼 임금을 찾아 동남아시아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80년 18.2%였던 부산의 수출 기여도가 지난해에는 3.2%까지 추락했다.


지역 경제의 위축과 함께 수출의 메카로 불리던 옛 명성도 허물어져버렸다.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50대 기업에 드는 업체가 한진중공업 단 한곳밖에 없다.
신재빈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부산무역관 차장은 “부산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신발·섬유산업 이후 마땅한 대체산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시에서 항만·물류, 금융, 소프트웨어, 관광(컨벤션 산업), 영상, 자동차부품, 조선기자재, 신발, 섬유·패션, 수산가공 등을 10대 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유치 추진과정에서 무리한 계획이라는 비판이 많았던 것도 이처럼 취약한 부산지역의 경제상황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아시안게임 자체로는 그다지 남는 장사가 아니지만, 시야를 더 넓혀 아시안게임의 개최로 발생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따져보면 평가는 긍정적으로 바뀐다.
부산발전연구원(PDI)은 경기장 건설, 도로 정비, 대회 운영 등 아시안게임 개최에 총 5조126억원을 지출해 11조3399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5조126억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 50만5천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지하철 3호선(아시아드선)과 간접전설투자를 제외하는 등 다소 보수적으로 계산한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6조2347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2조8638억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 18만5천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월드컵을 통해서 확인한 것처럼 이러한 낙관적 경제효과 전망이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막연한 기대에 매달리기보다 차분하게 내실을 채우는 접근방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상주 부산시 아시안게임지원과장은 “아시안게임 개최를 계기로 부산의 도시 인프라 수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말한다.
그동안 부산은 전국 최악의 교통난에 시달려왔다.
도로율이 9%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끌어들여 대규모 투자를 한 결과 도로사정이 크게 개선됐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시안게임이 열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시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도시발전이 10년 정도 앞당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설명회·전시행사 등도 준비중


아시안게임의 경제효과를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전개되고 있다.
부산시는 9월30일부터 10월14일까지 15일간 해운대 씨네파크에서 ‘부산시 우수상품 전시판매전’을 연다.
이 행사에는 부산시내 70개 중소기업이 참가한다.
김득현 부산시 산업진흥과 주사는 “아시안게임을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달라는 중소기업의 요청으로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며 “실제적 제품 판매보다는 홍보 측면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동안 각 구별로 ‘자치구 지역상품 전시판매전’도 열린다.
또 부산시는 아시안게임 개막에 맞춰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20명을 초청, 투자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부산상공회의소는 9월5일 북한선수단 지원을 위해 부산시에 5억원을 기부했다.
이일재 부산상공회의소 조사홍보팀 과장은 “부산지역 기업은 인건비 비중이 큰 섬유, 신발 업체가 여전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모두 북한 진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북한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돈만 쓰고 망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이번 아시안게임이 북한과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전체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거액을 선뜻 내놓았다.
북한에서 고위층 인사가 내려올 경우 ‘북한과 부산의 협력관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부산아시안게임에 오는 각국 경기단체장이 주로 경제인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투어도 준비중이다.


코트라(KOTRA) 부산무역관도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에서 일류상품전시회(9월30일~10월3일)와 2002부산국제선물용품 및 전통상품전(10월2~6일)을 열고, 아시안게임 참가국을 중심으로 150~200명의 해외 바이어를 초청한다.
지난 월드컵 때는 경기 자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각종 전시행사와 바이어 초청행사는 오히려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번 행사에 관련 업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적지않은 어려움이 겪었다.
특히 일류상품전은 업체들이 지방행사라는 이유로 참가를 꺼렸다.
신재빈 KOTRA 부산무역관 차장은 “아시아인에게 제품 이미지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북한 응원단의 관람이 이루어질 경우 홍보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