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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국민은행, 합병 위력 본격화
[비즈니스] 국민은행, 합병 위력 본격화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2.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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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통합 D-00일’. 여의도에 있는 국민은행 전산정보본부 입구에는 이런 구호가 크게 새겨져 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 통합 국민은행은 양쪽의 전산 통합시스템이 완성되는 9월23일에 그 진정한 위용을 드러낼 예정이다.
2001년 11월 국내 처음으로 우량은행끼리 합병이 성사된 뒤 약 10개월이 흘렀으나, 옛 국민과 주택의 IT 시스템이 서로 달라 지금까지 별도로 운영돼왔다.
예를 들어 옛 주택은행의 통장으로 국민은행에서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거래를 할 수 없다든지, 심지어 인터넷뱅킹도 별도로 접속해야 하는 등의 불편이 있었으나 9월 하순부터는 이런 불편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국민은행쪽은 “이제야 완전한 합병은행이 출범하는 셈”이라며 “금융 빅뱅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IT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맞춰 “10월부터 은행의 로고와 각종 서식을 새롭게 하기 위한 CI(기업이미지통합) 작업도 완료했다”고 밝혔다.
초록색인 옛 국민과 푸른색인 옛 주택의 로고를 합쳐, 회색 바탕에 노란색이 섞인 새로운 은행 로고를 10월1일 선보일 예정이다.


일요일인 9월8일 서울 염창동과 종암동에 각각 따로 자리한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의 IT센터를 비롯해 전국 1228개 지점에서는 모든 직원이 출근해, 전산통합을 앞두고 실전과 똑같은 ‘마지막 리허설’을 펼쳤다.
즉 8월29일자 원장을 기준으로 통합원장을 만든 다음, 이날 전국의 지점들에서 실제로 일어난 거래내역을 총 5203가지의 거래코드에 따라 30일자로 모두 입력해 전 시스템을 가동해보는 작업이었다.
서재인 전산정보본부장은 “이날 연습은 기대한 만큼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고 합격점을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다.
7월21일 몇개 지점을 대상으로 한 첫 테스트에서는 전산망을 가동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해 1시간 이상 전 시스템이 다운되는 바람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다.
서 본부장은 그날의 실수를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장애였다”며 “시스템을 구성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약간의 오류였다”고 말했다.



미래 생존 키워드 ‘IT 경쟁력’ 확보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온 일본 미즈호은행의 사례를 되돌아본다면, 국민은행은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3개 은행이 합병해 총자산 164조엔인 세계 최대 은행이 된 미즈호은행은 전산시스템 통합 문제를 놓고 내부 갈등을 겪던 중 지난 4월 엄청난 사고를 냈다.
옛 다이이치간교은행과 후지은행 사이에 데이터가 전달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해 후지은행쪽 고객들이 전혀 거래를 하지 못했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7천여대가 한꺼번에 다운됐다.
또한 고객계좌에서 3만여건이 이중으로 인출됐고, 신용카드 관련 자금 이체 수백만건이 한달 이상 정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은행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물론 고객들의 신뢰도 상당부분 잃는 상처를 입었다.


국민은행은 마지막으로 통합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 이번 추석연휴 사흘간 모든 대고객 서비스를 중단할 예정이어서, 연휴 직후인 23일에 고객들이 일시에 몰려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현재 국민은행은 고객 수가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 3천만명에 육박하며, 계좌 수는 국민 1인당 1개가 넘는 7천만개에 이른다.
국민·주택 양쪽의 중복된 고객 수를 감안하더라도 올해 4월말 기준으로 2310만명의 고객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시적 고객폭주 우려에 대해 서재인 본부장은 “고객 수가 가장 많을 것으로 보이는 9월23일과 25일 거래량이 1초당 800건 정도로 예상되는 반면, 통합시스템은 1초당 1천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어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실제 초당 1천건 이상의 대량 거래를 취급할 수 있는 시스템은 선진은행에서도 드물며, 국민은행이 처리하게 될 초당 800건가량의 소매금융 거래량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대용량이다.


요즘 은행업계에서는 앞으로 은행의 경쟁력을 좌우할 첫번째 요건으로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투자를 꼽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또 적정액을 꾸준히 IT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총자산 규모가 100조원은 되어야 투자여력이나 규모의 경제면에서 무리가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을 비롯해, 요즘 은행간에 대대적 합병 붐이 일고 있는 주된 이유다.
국민은행쪽은 “올해 IT 분야 투자액이 약 4500억원이며, 매년 적어도 4천억~5천억원을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국민은행은 8월말 현재 총자산액이 국내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서 203조원에 이르는 경사를 누렸다.
7·8월 두달 동안 자산이 5조7천억원이나 증가한 것도 눈길을 끈다.
국민의 절반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통합 국민은행이 IT 시스템 통합을 계기로 다시 한번 국내 은행들의 견제와 시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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