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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가위 ‘시네마 천국’ 나들이
[영화] 한가위 ‘시네마 천국’ 나들이
  • 임범/ <씨네21> 기자
  • 승인 2002.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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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밤으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지만, 세상은 번잡하다.
대선을 앞두고 병풍이네, 뭔풍이네 하는 바람이 공기를 흐리고, 미국에선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한다고 난리다.
태풍피해는 복구되지 않고, 수재민들은 힘들다.
그래도 추석은 찾아온다.
어김없이 1년마다 돌아오는 절기는, 아무리 세상사가 힘과 잇속에 찌들어도 우리네 삶을 송두리째 정복할 수는 없다고 말해준다.
매일 보아오던 자연 앞에 낯설게 절대 개체로 마주 서서 숨 한번 돌릴 수 있게 해주는 추석 연휴는 반갑지만, 아, 또 가족이네, 친지네, 은사네, 회사 상사네, 인간들이 모여야 하고 그러면 또….

혼자 훌쩍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 극장은 그래도 좀 나은 곳일 수 있다.
올 추석 극장가 메뉴가 지난 여름시즌보다 화려하진 못하지만, 혼자 가든 누굴 데리고 가든 영화 보는 동안은 사람과 말 안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영화가 사람보다 더 짜증스러운 경우도 많다.
할 수 없다.
사람을 피해 도망갈 수는 있어도, 모든 선택에서 리스크를 지움으로써 굴러가는 자본주의의 법칙으로부터 도망가는 건 불가능하다.




로드 투 퍼디션

리스크를 우선으로 추석 개봉작을 살펴보면, 가장 안전한 선택은 '로드 투 퍼디션'으로 보인다.
연출, 촬영 모두 정갈하고 누아르의 장르적 재미도 있다.
여기에 부자간의 정이라는 모티브를 억지스럽지 않게 집어넣어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지난 2000년 '아메리칸 뷰티'로 오스카상을 석권한 샘 멘더스 감독의 두번째 영화인 만큼, 영화광들도 군침이 돌 수밖에 없다.
단, '아메리칸 뷰티'만큼 새롭거나 도발적인 기운은 없다.
이것도 할 수 없다.
리스크가 적다는 건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다는 말일 수도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리스크가 제일 큰 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다.
제작비부터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100억원이 넘어간 이 영화 자체가 리스크가 큰 모험이다.
'성냥팔이…'는 게임하는 젊은이가 게임에 빠져 게임과 현실이 도치되고 전복되는, 적지 않게 보아온 이야기다.
게임의 규칙은, 성냥팔이 소녀(영화 속에선 라이터를 판다)가 동화 속 줄거리대로 성냥도 못 팔고 얼어죽게 만들되, 소녀가 죽기 전에 게이머의 환상을 떠올리게 하라, 즉 그녀의 사랑을 얻으라는 것이다.
사랑을 얻고 죽여라. 어딘가 모순된다.
여기에는 구원을 약속으로만 남긴 채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라고 하는, 서구식 구원관에 대한 장선우 감독의 불심과 혐오감이 배어 있다.
당연히 주인공 게이머 ‘주’는 성냥팔이 소녀를 죽도록 놔두지 않고 살린다.
거기서부터 게임을 지배하는 시스템에 맞선 주와 성냥팔이 소녀의 전투가 시작된다.
이걸 그냥 게임액션 영화로 볼 수 있지만, 같은 장르의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드라마와 액션이 그다지 정교하지가 않다.
아무래도, “모든 상은 상이 아니다” 또는 “구하지 않으면 얻을 것이다”라는 동양사상의 깨달음으로 세상보는 눈을 바꾸라는 장 감독의 전언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그 전언이 밉지 않으면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성공이고, 갑갑하거나 무성의하게 들린다면 완전 실패다.


가문의 영광, 보스상륙작전

그 다음은 자기 취향에 따라 득실이 예상가능한 영화들이다.
지난해의 '조폭 마누라'가 재밌었다면, '가문의 영광'과 '보스상륙작전'을 선택해볼 수 있다.
'가문의 영광'은 여수지역의 유지인, 뼈대 있는 조폭 집안이 학력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서울대 법대 출신 남자를 사위로 맞아들이려고 벌이는 결혼작전 대소동이다.
설정부터가 리얼리티와는 무관한 이 코미디에서 뜻밖에 한국 전통의 가부장적 집안에 대한 묘사가 사실감이 있다.
그러나 그 가부장제에 멋을 부여해 옹호하는 시대착오적 면도 함께 지닌다.
산만한 이야기 속에서 로맨틱 코미디적 요소가 돋보이는 건, 김정은의 귀여운 연기에 힘입은 바 크다.
'보스상륙작전'에서는 조폭과 정치인들이 유착한 단서를 잡기 위해 검찰이 룸살롱을 연다.
그리고는 룸살롱 문화를 재현해 눈요기로 삼고, 액션을 곁들인다.


레인 오브 파이어 등

할리우드 재난액션 영화가 입에 맞는다면 '레인 오브 파이어'가 대체재가 될 만하다.
지하에 잠자고 있던 용처럼 생긴 괴물들이 나타나 지구를 지배하고 인간들은 땅밑에 숨어사는 디스토피아를 설정해놓고 인간과 괴물의 싸움을 연출한다.
중세를 연상케 하는 이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독특하고 CG로 살려낸 괴물들도 실감난다.
가을에 맞게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차태현, 이은주, 손예진 주연의 '연애소설'도 마련돼 있고, 베니스영화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을 받은 '오아시스'도 추석까지 내달린다.
홍콩액션 팬들을 위해, 한국배우 송승헌이 출연한 '버추얼 웨폰'과, 케이블TV 인기 만화영화 '파워퍼프 걸'도 추석 직전인 9월2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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