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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표산업 대표기업⑥ 석유화학 / LG석유화학
[기획]대표산업 대표기업⑥ 석유화학 / LG석유화학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2.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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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이 산업의 쌀이라면 석유화학은 산업의 소금이다.
”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요한 석유화학산업의 역할을 표현한 말이다.
석유화학산업은 자동차, 건물, 전자제품, 섬유, 생활용품을 비롯해 비료, 농약, 페인트, 화장품, 세제 등 인간의 의식주 생활에 필수적 소재를 공급하는 기초소재산업이다.
합성수지와 합성고무, 합성섬유 등 석유화학 제품은 일일이 관련 산업을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산업과 연계돼 있다.


석유화학은 세계경기, 유가변동에 따라 업황이 크게 변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석유화학단지 하나 건설하는 데 15억달러 이상이 들어갈 정도로 대규모 장치산업이어서 공급의 변화는 경직적인 반면, 수요는 세계경기 변동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으로 세계 4위의 석유화학제품 생산국이자, 생산량 가운데 수출 비중이 40%를 넘는 만큼 해외시장 변화에 민감한 구조다.



2004년까지는 경기 전망 맑아


1995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석유화학 세계경기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회복추세에 진입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상승세를 보였다.
LG석유화학, 호남석유화학, 한화석유화학 등 국내 5대 석유화학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35.7%와 100.6% 증가했다.
매각을 앞두고 있는 현대석유화학도 IMF 사태 이후 최초로 상반기 경상이익 기준으로 600억원 흑자를 달성했다.
LG투자증권 이을수 연구위원은 “석유화학 업종은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하향조정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올해 4분기에 일시적으로 부진하겠지만 내년에는 본격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2004년까지는 석유화학 경기가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대증권의 분석을 보면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증가율은 올해 3.4%에서 2003년 4.1%, 2004년 4.2%로 올라갈 전망이다.
반면 생산설비 증가율은 지난해와 올해 전년 대비 6%대였으나 2003년과 2004년에는 3%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위원은 “석유화학 단지 건설은 계획에서 제품 생산까지 3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2004년까지는 공급 예측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업계도 2004년까지는 대체로 ‘평온한 시기’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당분간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거래소 상장회사 평균을 웃돌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2005년 이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전문가들은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지금의 산업구조를 유지한다면 2005년 이후 경기가 하락 국면에 들어섰을 때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90년대에 생산능력이 내수를 초과하면서 수출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합성수지와 합성고무, 합성섬유 등 3대부문을 기준으로 수출 비중이 46%에 이른다.
내수 대비 2배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상당기간 국제 수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다.


지역별 수출비중을 보면 중국이 총 수출액의 48%,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지역이 26%를 차지해 아시아 시장 의존도가 74%에 이른다.
한국의 강점은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평균 자급률은 40%대로, 내수의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은 단위 제품당 물류비 비중이 커서 지역경제권간 거래 장벽이 있다는 점이 국내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중국은 5대 석유화학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화학 자급률을 높일 계획이다.
현대증권 황형석 수석연구원은 “지속적 설비투자로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률이 2010년까지 75~80%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당분간은 중국의 수입 물량이 줄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매년 7.5% 증가하기 때문에 자급률이 올라가더라도 전체 수입물량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의 설비투자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중동 국가의 부상이다.
중동지역이 세계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지만 생산능력은 10% 수준이다.
생산량의 70~80%를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5년까지 세계 에틸렌 생산능력 증가분에서 중동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른다.
이들의 최대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수요 줄면 경기 냉각 순식간”


황 수석연구원은 “중동 국가들은 원가가 싼 에탄가스를 원료로 사용하는 대규모 설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뛰어나다”며 “물류비를 부담하고도 중국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쪽으로 물량을 공급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특히 2005년 이후 석유화학 경기가 하락하면 최대 수요시장인 아시아지역 수출 물량을 대폭 늘릴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LG경제연구원 홍정기 연구원은 “석유화학산업의 특성상 중동지역에서 급속히 설비 투자를 늘릴 경우 현재 경기상승 국면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고 수요가 줄어들 때 경기가 급속히 꺾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수입시장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은 단위공장 및 업체별 생산능력에 따른 규모의 경제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이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범용제품은 가격경쟁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메이저 석유업체들은 이미 90년대부터 전략적 제휴를 통한 대형화와 전문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에틸렌 설비규모 기준으로 세계 10대 기업 중 7개사는 최근 5년간 합병 또는 사업인수를 통해 탄생했다.
이들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최소 235만톤에서 최대 900여만톤에 이른다.


한편 국내 업체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30만~100만톤에 불과하다.
국내 업체들도 범용제품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데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다.
호남석유화학 한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공급과잉 상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어떤 업체든 국내 설비투자를 늘릴 계획이 없을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올해 6월24일 산업자원부는 신국환 장관 주재로 석유화학 업체 대표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석유화학산업 비전 및 발전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이날 회의에서 자율적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현재 7개인 NCC(나프타 분해설비) 업체를 연간 150만톤 이상 생산능력을 갖춘 3개 정도로 통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키로 했다.


한편 현대석유화학 인수에도 LG화학, 호남석유화학, SK 등 국내 유화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독자적으로 현대유화 인수를 추진해온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은 최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SK도 최종협상에 대비해 컨소시엄을 구성할 업체를 물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유화의 주채권 은행인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1차 입찰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 조만간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해 최종협상에 들어갈 방침이다.



M&A, 총론엔 찬성 각론엔 반대


유화업계의 인수·합병은 이전에도 시도된 바 있다.
이미 대림과 한화가 나프타 분해설비를 통합해 여천NCC를 설립한 바 있다.
2001년 기준으로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 135만톤인 여천NCC는 대림과 한화가 지분을 절반씩 나누면서 매년 경영불신에서 비롯한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2000년 이후로도 여러번 M&A를 시도한 바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대증권 황현석 수석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데 비해 유독 우리나라에서 지지부진한 것은 석유화학 관련 기업들이 재벌의 모회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삼성과 현대를 제외하고 석유화학은 재벌기업의 수익창구(캐시 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석유화학은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만 여전히 돈이 되는 사업이죠. 또 2005년까지는 화학경기가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여기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정보통신 등 성장잠재력이 높은 분야에 투자하고 싶어하죠. 인수·합병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매각협상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자산 실사를 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번 현대유화 매각에서도 채권단과 인수희망 업체 사이의 가격협상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채권단은 현대유화 매각 가격으로 1조~1조5천억원을 바라고 있지만 인수희망 업체들은 이 회사의 부채가 3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인수대금을 1조원 이내로 희망하고 있다.
매각 가격에 대한 이견 때문에 협상이 장기간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현대유화의 매각 협상은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홍정기 연구원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가한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은 현대유화를 인수해 각자의 강점을 키우려 할 것”이라며 “시장 지배력이 강한 업체가 등장하면 나머지도 각자 살 길을 찾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현대유화 매각이 조기에 타결될 경우 유화업계 구조조정을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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