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6:44 (수)
[CEO] 한국오라클 강병제의 '아름다운 퇴장'
[CEO] 한국오라클 강병제의 '아름다운 퇴장'
  • 유춘희
  • 승인 2000.05.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 IT기업의 한국지사장을 보통 파리 목숨에 비유한다.
본사와 마찰을 빚거나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리를 오래 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기를 보장받는 지사장은 거의 없다.
한국오라클 강병제 사장의 퇴장은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남다른 구석이 있다.
강 사장은 지난 89년 지사 설립 후 11년 동안이나 지켜온 한국오라클을 스스로 떠났다.
그러면서 신임 대표이사를 직접 지명했다.
겉으로는 6월1일자로 공동대표 체제가 되는 것이지만, 사실상 손을 떼고 자문역에 머물기로 했다.
매정하게 당장 그만두기보다는 1년 동안 윤문석 신임 사장을 돕겠다는 것이다.
보통 지사장 선임은 본사의 소관이지만 이번 건은 강 사장이 단독으로 진행하고 본사에 통보하는 형태였다고 한다.
강 사장의 카리스마가 새삼 드러나는 대목이다.
강 사장의 발언권 확대는 한국오라클이 이룩해낸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국내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고, ERP(전사적자원관리)나 SCM(공급망관리), CRM(고객관계관리) 같은 신종 정보기술을 한국 시장에 가장 먼저 전파하고 시장도 이끌었다.
최장수 지사장의 비결도 거기 있다.
한국오라클은 2000회계연도에 12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초대형 기업이 됐다.
강병제 사장은 2년 전부터 윤문석 신임사장을 후계자로 점찍고 사장수업을 시켜왔다고 한다.
각종 공식행사에 회사 대표자격으로 참가해 얼굴을 알리도록 했고, 회사의 중요한 결정도 윤 사장에게 대부분 맡겼다.
윤 사장은 충남 아산 출생으로 서울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주)대우에서 16년을 근무하고 93년에 한국오라클에 영업담당 이사로 합류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국오라클 안에서는 시인 이형기의 ‘낙화’ 싯구절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