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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칼럼] 이덕봉 / 대덕넷 대표이사
[리드 칼럼] 이덕봉 / 대덕넷 대표이사
  • 이코노미21
  • 승인 2002.10.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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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나락에 빠졌다.
경기불안과 전쟁 등 미국발 악재가 ‘악의 축’이 돼 시장을 뒤흔들었다.
기업들의 실적부진도 한몫 했다.
이러한 때 들려온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일반인은 물론 시장참여자에게 ‘기본’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벨상에 대해 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일반인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음을 느끼고 놀란 적이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노벨상이 실력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고 돈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닌데, 왜 해마다 10월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법석을 떠느냐는 것이다.
노벨상을 못 받는 과학자들에게 은근히 눈치를 주는 것도 싫다는 반응도 보인다.
그러면서도 우리도 과학 실력이 많이 높아져 앞으로 10년에서 20년 뒤에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노벨상에 대해 과학기술에 문외한인 보통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그것의 의미 때문이다.
대외적 선전효과도 있지만 기초가 탄탄한 만큼 장래에도 어지간한 충격에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보증수표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경기가 일본에 비해 낫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노벨상 노메달 소식에 한숨 짓는 것은 기본가치 창출의 원천이 아직 취약하고, 그 때문에 주변 변수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덕밸리는 한국과학기술의 메카로 불린다.
한국 최대, 최고 수준의 이공계 인력들이 모여 있고 내년이면 조성 30주년을 맞이할 정도로 나이도 먹었다.
박사학위자만 약 5천명으로, 이 정도 인력이면 한국 전체를 먹여살리리란 기대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현실에 대한 고민과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좌불안석이다.
처우와 연구조건이 열악한 현실에서 연구가 제대로 될 리 없고, 노벨상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멀어진다는 것이 과학자들이 내린 진단이다.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과학자 몇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A박사:경제규모로 세계 12위이고, 국내총생산(GDP)의 5%를 과학기술 예산으로 쓰는데 우리는 별로 성과가 없다.
과학계를 한단계 끌어올릴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모연구소의 과학자가 일본에서 귀국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 분야를 공부하다가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연구 무엇하러 하느냐고 타박해 연구를 지속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연구 뭉치는 몽땅 일본으로 넘어갔고 일본에서는 이것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노벨상을 탔다.
내부 체제의 반성이 필요하다.
B연구원:점심시간에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데 노벨상 이야기는 없었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과학자들한테 노벨상보다 중요한 것이 생존 문제다.
연구원들의 평균 연령이 40대다.
연구원 체육대회가 몇년 전부터 슬그머니 없어졌다.
5, 6년 전에는 45살 이후는 OB, 이전은 YB로 체육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제는 평균 연령이 40대로 되면서 체육대회가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우리 연구 그룹도 막내가 40살이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이대로 모두가 정년을 맞이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몇년 안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과, 모아놓은 재산조차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생존 문제가 더욱 절박한 것이 과학자들의 현주소다.
우리나라도 과학이 분명히 많이 발전했다.
요즘 나오는 논문들을 보면 수준급도 꽤 된다.
노벨상에 접근한 뛰어난 과학자도 몇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노벨상은 각개 전투가 아니라 시스템 플레이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연구원이 고령화하고, 제대로 된 연구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노벨상을 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과학기술은 사회의 기본이다.
기본이 흔들리면 시장은 물론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오늘날 단군이래 최대의 부를 누리는 것은 개발연대에 투자한 과학기술의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부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중요하다.
노벨상은 일부 과학자들 말처럼 대단한 상이 아 닐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타기 위해서는 사회의 합의와 투자, 인내가 필요하다.
그 시스템이 살아 있을 때 사회의 장래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시장이 무너졌다는 점에만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벨상 노메달이라는 점을 더욱 안타까워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동시에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구축 방안에 너나 없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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