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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공평 과세, 어떻게 실현할까
[초점] 공평 과세, 어떻게 실현할까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2.10.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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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가에는 “대선공약의 50%만 실현해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선거 전에 후보들이 했던 약속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
선거공약 중에도 조세정책은 가장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도 1990년대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세금부담을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공수표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조세정책은 국민들의 표심을 흔드는 데 효과적 도구이면서 동시에 후보자의 정책비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는 조세정책이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역감정 때문에 후보자들의 조세정책이 가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후보들이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줄이겠다고 한목소리를 낸 것도 쟁점을 가리는 데 한몫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모든 후보들이 ‘공평하고 투명한 과세’, ‘간소한 조세행정’을 외치고 있지만, 세제개편, GDP 대비 세금부담률에서는 다른 인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법인세, 소득세, 간이과세제도 폐지 여부 등 세부항목에서는 차이가 명확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금부담률이 22% 수준이고 각종 사회부담을 합하면 28%에 달해 너무 높다며 법인세, 소득세 인하 등 감세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국회의원은 “우리 당의 조세정책은 공평과세와 조세경쟁력을 중시하고 있다”며 “소득세 인하는 부담이 많은 것부터 줄이기 위해서고, 법인세 인하는 기업활동 여건을 개선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소득세와 법인세 수입은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18조7천억원, 17조원으로 국세 수입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다.
이 후보측은 세수감소분에 대해서는 과세감면 혜택을 축소하는 한편 세원 확대와 경제활성화를 통해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한구 의원은 “과세의 기본원칙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며 “무질서한 과세혜택을 정리할 경우 연간 13조원의 추가 세원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쪽은 우리의 세금부담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일본, 멕시코보다는 높지만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노무현 후보는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에도 반대한다.
오히려 법인세에 대한 각종 조세감면을 너무 남발하고 있어 이를 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국의 법인세율은 OECD 국가들 중 낮은 수준이며 외국인 투자가 활발한 중국보다 낮다”며 “법인세 부담이 기업의 투자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소득세부문에서는 근로소득세는 현행 최고 세율 36%를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고,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후보는 “비과세 및 감면 축소를 통한 세원 확충, 상속·증여세 강화에 초점을 둔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조세 형평성을 높이는 획기적 내용이 없다”며 “세제개혁의 기본방향은 과세 투명성을 높여 고소득층이 정당하게 세금을 내도록 하고, 과세기반을 확대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범위내에서 중산층과 서민이 내는 세금을 인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후보는 10월8일 경실련 주최 경제정책토론회에서 “재벌의 편법적인 상속, 증여를 막기 위해 현재 유형별 포괄주의를 완전포괄주의로 바꿔 과세범위를 넓혀나가겠다”고 말했다.
유형별 포괄주의로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변칙증여를 막기 힘들기 때문에 유형에 관계없이 상속증여된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완전포괄주의는 조세법률주의에 원칙에 위배되며 위헌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한구 의원은 “완전포괄주의는 조세법률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 세법에 각종 유형을 열거한 뒤 이와 유사한 편법, 변칙 상속·증여에 과세하는 유형별 포괄주의를 정교하게 다듬으면 변칙적 상속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조세정책을 통해 소득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대표적 공약이 부유세 신설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후보는 “집권하면 과세표준 기준으로 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부유층으로부터 11조원의 부유세를 걷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제도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과세대상 재산은 예금, 주식 등 금융자산과 토지, 건물 등의 부동산, 자동차, 선박 등 고가의 동산, 골프회원권 등이다.
세율은 종합토지세와 비슷한 수준이며 10억원을 초과하는 재산분에만 과세한다.
부유세에 대해 노무현 후보는 “나름대로 일리는 있지만 반대의견이 많아 넓은 지지를 얻기 어렵다”며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권 후보는 또한 공평과세 차원에서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한도를 하향 조정하고, 주식양도소득세를 도입하는 한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선후보들은 공통적으로 ‘과세 형평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올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양도소득세와 부동산 보유세(종합토지세, 재산세)의 과세표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10억원이 넘는 강남 아파트와 2억원이 안되는 강북 아파트와 재산세가 비슷한 것은 과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 후보는 모두 과세표준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과세 형평성과 관련한 해묵은 문제는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봉급생활자는 소득이 투명하게 잡히는 반면 자영업자는 전체 사업자 가운데 간이과세 사업자가 50%에 달해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세원 탈루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간이과세 사업자는 월매출액 4800만원 이하의 사업자로 영수증을 발행할 필요가 없는데, 변호사, 회계사, 의사, 한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간이과세자인 경우가 많아 봉급생활자들은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권영길 후보는 “간이과세제도는 사업자에게 세금계산서 발행의무를 면제해 매출액 파악을 불가능하게 한다”며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해 사업자들이 모두 장부를 쓰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후보는 “이에 따른 부작용은 영세사업자에 대한 행정적, 경제적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후보는 “간이과세 대상자 수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이미 상당히 성과를 거둔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이회창 후보측은 간이과세제도 폐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신용카드와 전자상거래를 많이 이용해 소득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사업자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자들의 조세정책이 과거보다 중요한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적자금 상황 부담으로 5년 전에 비해 국가재정 운영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감세정책을 통한 경제활성화와 조세강화를 통한 사회복지 예산 확대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다.
이회창 후보는 전자에, 권영길 후자에 속한다.
노무현 후보도 후자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몽준 후보측은 조세정책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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