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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칼럼]주식 대가들의 희생론
[투자칼럼]주식 대가들의 희생론
  • 이종우/ 미래에셋 투자분석실
  • 승인 2002.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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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 대가(大家)의 희생을 원한다.


대세가 한번 변할 때마다 그전에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추앙을 받던 분석의 달인 한명이 쓸쓸히 시장에서 퇴장한다는 뜻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말 미국 시장을 풍미했던 대표적 호황론자 톰 갤빈이 최근에 해고를 당한 것이다.


갤빈은 리먼브러더스의 제프리 애플게이트, UBS워버그의 에드 커시너 등과 함께 월가의 대표적 남성 호황론자였다.
여자 선두는 물론 골드만삭스의 에비 조셉 코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가 주가 전망을 하향 조정하자 ‘골드만 삭스는 왜 예전에 코언의 말을 막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이 있었던 것을 보면 코언의 명성도 땅에 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갤빈의 전성시대는 99년까지였다.
10년에 걸친 장기 상승 동안, 시장은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했다.
그러나 상황은 갤빈보다 빨리 변했다.
‘신경제’와 ‘IT 혁명’의 첨병이었던 미국 주가가 2000년 3월에 꺾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는 여전히 시장을 낙관했고, 기술주의 적극 매수를 권했다.
한번 가속도가 붙은 전망이 좀처럼 수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2년 동안 갤빈은 시장과 힘겨운 싸움을 계속했다.
2000년 초 나스닥지수가 6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연말에 2470.52로 마감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나스닥지수가 4000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1987.26까지 떨어졌다.
올초에도 갤빈은 다우지수가 연말까지 11400, S&P500지수는 1375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이미 주가는 예상치를 훨씬 벗어났다.


이전에도 한시대를 풍미하던 대가들이 쓸쓸히 주식시장을 은퇴한 경우는 허다하다.
29년 미국 대공황 전에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꼽힌 어빙 피셔 교수의 경우도 그렇다.
피셔 교수는 주가 대폭락이 발생하기 14일 전인 10월15일 “주가가 수개월 이내에 현재보다 상당히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주가는 피셔 교수의 발언이 있은 후 더 빠르게 하락했고, 급기야 10월29일 대폭락했다.
주가 대폭락과 이후 4년간에 걸친 금세기 최악의 공황으로 피셔 교수는 최고 경제학자라는 명예에 먹칠을 했다.
주식투자로 큰 손해를 본 동료 교수들의 등쌀에 못 이겨 근무하던 예일대를 떠나야 할 정도였다.
다른 예도 있다.
83년 당대 최고의 증권분석가였던 그린빌이 세계 주식시장의 폭락을 예견했다.
세계의 많은 주식시장 관계자들이 그린빌의 예견을 믿고 주식을 매도했다.
주가는 1년여의 조정기간을 거친 후 크게 상승했고, 그린빌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쓸쓸하게 퇴장했다.


우리나라라고 이런 일이 없었을까?

외환위기가 터지고 1년간 우리나라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인물은 스티브 마빈이라는 외국인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부채가 수백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한국 주식시장은 상당기간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했고, 당시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그의 말은 금과옥조같이 여겨졌다.
그러나 98년 10월부터 주가가 갑자기 오르면서 상황이 반전됐고, 그도 결국 일본으로 건너가고 말았다.


지금은 비관론자가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인지 논리도 더욱 비관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경기침체’에서 시작된 하락 논리가 ‘더블딥’을 지나 이제는 ‘디플레이션’까지 발전했다.
계속 비관적으로 치우치는 전망이 낙관론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시장이 뒤바뀌면 현재의 비관론자는 낙관론자만큼 곤란에 빠질 수 있다.


시장은 분석가가 예언자가 되기를 강요한다.
예언이 맞는 동안 그는 모든 이에게 추앙받지만, 틀리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다.
앞으로도 시장은 더 많은 대가들의 희생을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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