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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위기의 세계금융, SRI가 동아줄
[커버스토리] 위기의 세계금융, SRI가 동아줄
  • 특별취재팀 이원재 기자
  • 승인 2002.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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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스탠리 세계주가지수(MSCI World). 전세계 대표적 기업들을 규모를 기준으로 편입해 주가 동향을 보여주는 세계주가지수다.
지난 1993년 12월을 100이라고 놓고 보면, 이 지수는 올해 10월말 123이 된다.
전세계 주가는 꼭 10년간 23%가 상승한 것이다.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DJSI). 전세계 대표적 기업들을 규모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성과 노사관계·인권·남녀평등 등 사회적 가치를 감안해 비중을 조절한 뒤 편입해 주가 동향을 보여주는 세계 사회책임투자 지수다.
모건스탠리 세계주가지수와 마찬가지로 93년 12월을 100이라고 놓고 보면, 이 지수는 올해 10월말 139가 된다.
전세계에서 환경경영·인권경영 등을 통해 사회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책임감을 보여준 기업들의 주가는 10년간 39%가 오른 것이다.



사회책임 다하는 기업이 돈도 잘 번다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인 기업들에 투자했다면 10년간 그렇지 않은 우량 기업들에 투자했을 때보다 16%포인트나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전세계 금융시장에 조용히 불기 시작하는 사회책임투자(SRI) 바람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냉혹한 돈의 세계에서 환경이나 사회, 인권 등을 이야기하는 건 언뜻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왠지 그런 고상한 이슈들을 투자지침으로 삼으면 수익은 포기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는 그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실제 환경이나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SRI펀드는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미국과 영국에서 급속하게 성장중이다.


다국적 SRI운동단체인 사회투자포럼(Social Investment Forum)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펀드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는 펀드투자금 8분의 1, 약 12%가량이 SRI펀드에 투자돼 있다.
미국의 SRI투자펀드 규모는 84년 400억달러에서, 95년 6390억달러로, 99년 1조4900억달러로, 2001년 2조3400억달러로 급성장세를 이어왔다.
다소 정체상태에 들어선 99년부터 2001년까지만 따져도 36%의 성장률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전체 펀드 규모는 16조3천억달러에서 19조9천억달러로 22% 늘어나는 데 그쳤다.
SRI펀드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커지면서, 펀드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SRI펀드 규모는 99년 520억파운드에서 2001년 1200파운드로 빠르게 불어났다.
이 가운데 연기금 투자자산이 850억파운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종교 또는 자선단체 자금이 314억파운드로 뒤를 이었다.
일반투자자 자금은 35억파운드가 SRI로 들어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사회투자포럼이 500대 연기금 펀드를 조사한 결과, 펀드의 59%(자산규모로는 78%)가 투자전략에 SRI를 감안하고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아예 기업의 사회책임성을 일일이 평가해 표준화시켜놓은 지수를 자신의 운용기준(벤치마크)으로 삼는 펀드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스위스의 지속가능자산운용(SAM)에 따르면, DJSI에 맞춰(벤치마크) 투자하는 ‘지속가능’ 성향의 펀드만 해도 40여개에 자산규모 1800여억원이나 됐다.
99년 10월 출범해 3년 남짓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다.



SRI투자기법, 운용성과 뛰어나


특히 영국에서는 이른바 ‘메인스트림’ 투자자들이 아예 SRI에 뛰어들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국지적으로 SRI펀드를 만들어 기존 투자 흐름과는 달리, 기존 금융시장의 ‘큰 손’들이 ‘우리는 이제 SRI를 투자전략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영국보험협회(ABI)다.
영국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보험업계의 대표조직 영국보험협회는, 아예 회원사 전체의 투자자산 모두를 대상으로 ‘SRI 가이드라인’을 부과하고 있다.
피터 몬테뇽 영국보험협회 투자본부장은 “1조1500파운드(2천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자금이 ‘사회책임’이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이면서 금융시장에 SRI 논리를 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거대한 움직임의 뒷심은 역시 수익률이다.
펀드의 운용수익률과 손실위험도는 투자 스타일, 펀드매니저의 역량, 투자대상 선정기준 등에 따라 영향받는다.
SRI투자기법이란 이 가운데 투자대상 선정기준을 정할 때 사회적 기준을 첨가하는 것이다.
다국적 투자기업들의 연구 결과, 투자대상 선정 때 사회적 기준을 첨가해도 그 기준을 첨가하지 않은 펀드보다 운용성과에서 오히려 앞선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SRI펀드의 약진이 가능했던 것이다.


씨티그룹자산운용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규모 1억달러 이상 SRI펀드 가운데 73%가 세계적 펀드평가사 모닝스타 및 리퍼의 1년간 및 3년간 펀드수익률 순위(2001년 9월말 기준)에서 최상위 그룹에 들었다.
또 모닝스타는 같은 기간 동안 전체 SRI펀드 가운데 35%에게 별 네개 또는 다섯개를 수여했다.
전체 뮤추얼펀드 가운데 별 네개 또는 다섯개를 받은 펀드는 32.5%였으니, SRI펀드 전체 펀드보다 근소하게 앞섰다는 얘기다.


노동자들의 권익에 신경쓰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주가 흐름이 좋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98년 미국 경제잡지 '포천'이 발표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미국 기업’ 가운데 상장된 기업의 5년간 연간 주가상승률은 27.5%였는데, 이는 러셀3000(중소형기업 중심의 미국 주가지수)의 17.3%를 크게 웃돈 수치다.
씨티그룹자산운용은 저공해 기업의 주가상승률이 공해 기업의 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경우도 일반적이라는 조사 결과도 내놓았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 부여로 이어져


홍콩의 투신운용사 킹스웨이그룹 유언 마셜 수석 펀드매니저는 이렇게 말한다.
“SRI는 자선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에 투자해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이다.
친환경적이고 친인권적 기업은 평균적으로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장기적으로 더 좋은 기업실적을 거두고 따라서 주가도 더 오르는 게 보통이다.
결국 펀드는 돈을 벌고, 투자자들은 만족한다.
동시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강제할 수 있다.


신뢰 위기와 사회 책임 기업들의 안정된 주가 흐름이 SRI 바람의 진원지라면, 증권시장의 장기투자 흐름은 SRI 바람의 초석이다.
한때 인터넷주 열풍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초단기 투자자들이 시장을 장악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는 했지만, 열풍이 가라앉은 지금 세계 증권시장, 특히 금융선진국 시장들은 이제 단기매매를 노리는 조무래기 투기꾼들의 난장이 아니다.
증권시장은 이제 저금리에 지친 은행 예금자들이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빼내 옮겨가고 있는, 평생이 보장돼야 하는 초장기 투자시장이다.


초장기 투자를 한다면 투자의 위험도 초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한사람의 평생 동안 무너지지 않을 기업에 투자해야 평생 모은 돈을 노후에 회수해 여생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회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이라면 장기적으로는 신뢰 위기에 봉착해 자금회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SRI에서 제기하는 ‘사회적 위험’의 본질이다.


SRI는 기업의 사회책임 부분을 평가해, 사회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기업의 투자비중을 줄이거나 없애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의 투자비중을 높이는 활동이다.
적극적으로는 더 나은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투자기법이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면, 투자자로서 기업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하거나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에 직접 투자하는 활동으로까지 이어진다.



SRI 가설, 세계 곳곳서 서서히 입증


사회투자포럼은 이런 의미에서 SRI의 전략에 펀드 포트폴리오 구성전략 이외에 ‘주주운동’과 ‘공동체투자’의 두가지를 덧붙인다.
주주운동이란 주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각종 권리를 이용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면서 투자의 사회적 위험을 줄이는 활동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주총회에서 SRI에 뜻을 같이하는 주주들이 함께 특정인에게 의결권을 위임한다든지, 기업이 사회를 해치는 특정 활동을 벌일 때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공동체투자란 아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선사업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형태다.


결국 SRI는 ‘선한 자가 오래 살아남는다’는 가설을 실전투자로 검증해 보여주는 투자방법이다.
곳곳에서 펀드 투자 수익률로, 사회 적대적 기업의 신뢰 위기로, 그 가설은 조금씩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재편되지 않으면 지구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는 게 SRI의 기본 전제다.
환경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서구 선진국 시민 정도의 환경파괴적 생활을 전체 지구인이 하게 된다면 세개의 지구가 있어야 그들을 먹여살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전체 지구인은 서구 선진국 시민의 생활상을 향해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선한 돈’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게 SRI 진영의 외침이다.
그리고 이 외침은 무엇보다도 ‘돈도 벌 수 있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다.


“SRI는 돈과 지속가능한 사회 사이를 잇는 통역사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당면한 자본시장 신뢰 위기, 즉 금융과 기업 사이의 균열 상황을 떠받치는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 유엔환경계획 금융부문(UNEPFI) 사무국장 폴 클레멘츠-헌트의 말이다.








사회책임투자(SRI)란?


사회책임투자(SRI)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처음에 순수한 윤리운동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처음에는 ‘돈에도 윤리가 있다’는 관점에서 운동으로 시작됐으나, 그뒤 정교한 투자위험 분석이 결합되면서 투자전략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SRI 애널리스트들은 초기 윤리운동 단계와는 달리 지금은 거시적, 미시적 수준에서 숫자를 동원해 다양한 양적 평가를 하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SRI의 기원을 퀘이커교도가 18세기에 노예 거래상으로부터 자금을 철수했던 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미국 학생운동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자금이 베트남전쟁 관련 기업으로 흘러들어간다며 문제제기하는 형태로 SRI의 초기 형태가 드러났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최초의 SRI펀드는 역시 1971년에 미국 감리교 신자들이 설립한 ‘팍스 월드 펀드’에서 찾아야 한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팍스 월드 펀드는 군수산업, 담배산업, 도박산업 등 감리교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를 거부했다.
SRI가 결정적으로 급부상한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펀드가 생기면서부터로 알려졌다.
70년대부터 미국이나 유럽의 수많은 노동조합과 종교계 펀드가 남아공 기업이나 남아공과 거래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결국 80년대 미국 뉴욕,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등 주정부들이 각각 수백억달러(수십조원) 규모의 연기금을 남아공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환경문제가 대두하면서 SRI의 관심이 일반적 윤리문제에서 급속히 환경으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환경 관련 기술을 갖춘 기업에 투자하는 흐름을 보였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에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업의 환경보고서 등이 의무화되면서 기업의 환경영향 평가를 통해 사회적 위험을 가늠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SRI의 일반적 방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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