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6:14 (화)
[미국] 5번가 강타한 ‘스웨덴 패션’
[미국] 5번가 강타한 ‘스웨덴 패션’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2.11.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욕은 일반인들에게는 패션의 도시로 먼저 다가온다.
뉴욕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5번 애비뉴에는 티파니, 루이비통,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바나나 리퍼블릭 등 빼곡이 들어선 유명 의류·액세서리점들이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이들의 화려한 자태에 넘어가지 않을 도시인은 많지 않다.
11월에 들어서자 각종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무장하고 쇼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올 뉴욕의 크리스마스는 풍요롭기보다는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주가가 2002년 3월에 비해 평균 30%나 떨어질 정도로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져, 소비 지출이 극도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포천> 11월호는 “과거 15년 동안을 통틀어 최악의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보도할 정도다.
실제로 뉴욕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몇십% 세일이라고 붙여놓은 매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곳은 드물다.
미국 소매의 40%에서 50%가량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불황기에도 유례없는 확장 전략을 펼치는 곳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패션 브랜드 H&M(핸즈앤드모리츠)이다.
H&M의 명성은 유럽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유럽 각지의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H&M 매장이 들어서 있다.
거리에서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광고도 H&M 광고다.
이 H&M이 유럽에 이어 미국에까지 그 확장세를 이어 펼쳐 뉴욕 패션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H&M은 1947년에 처음 선보인 스웨덴 패션 브랜드다.
하지만 H&M이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68년까지만 해도 H&M 매장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 간간이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90년대에 들어 유럽으로 확장의 날개를 활짝 펼친 H&M은 2000년에는 미국에서 매장을 집중적으로 늘렸다.
마침내 올해 11월1일, H&M은 뉴욕에 미국 45호점의 깃발을 꽂았다.



빠른 생산과 빠른 판매로 마진율 53%


H&M의 성장속도는 눈부시다.
현재 14개국에 809개의 매장을 두고 있는데, 올해 말까지 세계적으로 844개의 매장을 낼 계획이다.
이 수치는 지난 6년 동안 75%나 성장한 결과다.
앞으로 미국에 2003년까지 20개의 매장을 더 내고, 2년에 한번씩 새로운 국가에 진출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소매담당 애널리스트인 케이트 윌즈는 “이제까지 어떤 유럽 소매업자도 이렇게 해외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H&M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보다도 싼 가격으로 유럽 패션의 첨단을 맛보게 한다는 데 있다.
미국에서 H&M 상품의 평균가격은 18달러로, 30달러 정도면 마음에 드는 옷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 브랜드로 자리잡은 갭(Gap)이 평범한 캐주얼 클래식 스타일인 데 반해 H&M은 좀더 여성적이고 패셔너블한 유럽풍 스타일에 가깝다.
이런 스타일을 싼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H&M은 미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약간 변형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유럽에서 H&M은 여성, 남성, 아동에 이르기까지 전계층의 의류를 판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좀더 패션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만을 집중 공략했다.
이들을 싼 가격으로 공략하되 싸구려라는 이미지를 남기지 않도록 브랜딩에 세심하게 신경 썼다.
매출의 4%나 되는 금액을 마케팅에 들이고, 올해 광고사진을 패션사진계의 전설로 꼽히는 리처드 아베돈에게 맡겼다.


하지만 다른 의류 브랜드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반해 H&M이 유일하게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도 있다.
유행 경향을 빠르게 상품화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H&M의 모든 상품은 스톡홀롬에 있는 95명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다.
하지만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생산은 방글라데시, 중국, 터키 등 21개국에 아웃소싱을 맡겼다.
이런 업체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덕분에 H&M은 디자인에서부터 완제품으로 나오는 시간을 3주일로 단축했다.
공장시설을 갖추고 직접 생산까지 해내는 자라(Zara) 브랜드가 유일하게 이 기간을 2주일로 줄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갭의 경우 이 기간이 9개월이나 걸린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갭이 만성적 재고에 시달리는 것은 이 기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유행을 재빨리 반영해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재고도 그만큼 덜 쌓인다.
매장마다 제품을 매일매일 바꾸어놓고, 뉴욕의 맨해튼 매장에서는 이것도 모자라 제품을 시간마다 새로 쌓아둔다.
제품 반영시간을 줄여, 한꺼번에 많은 제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빠른 생산, 빠른 판매 덕분에 H&M은 싼 가격으로도 53%의 마진을 올린다.


물론 H&M이 소비자들을 이토록 잡아끈 것은 무엇보다도 H&M의 패션이 소비자들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브랜드의 패션과 견줄 때 그다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돌체 바바라의 트렌치 코트가 좋은 줄은 알지요. 하지만 그건 1천달러도 넘잖아요? H&M에서는 60달러면 비슷한 걸 구입할 수 있어요. 그걸로 한철만 버티면 첨단을 늘 즐기는 거잖아요.” 자기 옷 가운데 절반이 H&M 제품이라는 한 소비자는 H&M의 매력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