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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1. 끊임없는 거품의 역사
관련기사1. 끊임없는 거품의 역사
  • 이코노미21
  • 승인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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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의 인터넷주 거품 후유증을 두고 아직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인터넷 거품이 그다지 특이한 현상은 아니었다.
어느 시대에나 거품은 있었고, 거품은 그 세대를 지탱하는 새로운 버팀목이 되곤 했다.
미국의 투자지 '머니'는 최근호에서 줄기차게 이어져온 거품의 역사를 소개했다.
1634~37년 튤립 역사적으로 가장 처음 투자 거품을 일으킨 것은 튤립이었다.
튤립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독일에서는 전재산을 저당잡히고 튤립을 사들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1860~73년 철도 남북전쟁이 일어날 무렵 뉴욕 증시에서 매매되는 주식 가운데 40%가 철도주였다.
1873년 공황에 이르러 철도 건설이 중단될 때까지 투자자들은 쉼없이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1890년대 자전거 1890년대에는 무려 300개가 넘는 자전거회사들이 난립했다.
하지만 1905년 자동차가 등장하자 이 가운데 겨우 12개가 살아남았다.
1929년 대폭락 8월까지 일반적 주식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익에 견줘 주가수준이 얼마나 되는지를 설명하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주가가 비싼 수준)은 33배나 됐다.
미국내 주식들의 시가총액이 GDP의 81%에 육박했던 것이다.
1959년 전자 회사 이름에 ‘트론’이나 ‘일렉트로’만 붙어 있으면 투자가 몰릴 정도로 묻지마 투자가 횡행했다.
1978~81년 멕시코 20세기 후반 이머징 마켓의 선발주자는 단연 멕시코였다.
단 30개월 동안 멕시코 주식들의 주가는 785%나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 18개월 동안 주가는 73%나 떨어졌다.
1984년 PC 거품은 늘 스캔들 속에서 끝나 우울함으로 막을 내린다.
1984년 PC 주식들의 가격이 50% 이상 떨어졌을 때, 한 컴퓨터 회사의 창립자는 기업공개를 하기 바로 전날 밤에 자살했다.
투자자들로부터 조사가 들어오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1988년 캘리포니아 부동산 주택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 마치 주식처럼 집을 샀다가 바로 다시 파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1년 안에 캘리포니아 주택의 가치는 25%나 떨어졌다.
1991년 일본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rising sun)가 아니라 떠오르는 돈(rising sum)의 나라였다.
일본에 있는 부동산들의 가치가 전세계 투자시장에 있는 전체 자산의 두배나 될 정도로 가격이 치솟아 올랐다.
그해 초반에 한 일본인은 고흐가 그린 '가세 박사'의 초상화를 8250만달러나 주고 사들였다.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
1998~2000년 인터넷주 1999년까지 기업공개를 한 456개 회사 가운데 77%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회사로 드러났다.
2000년 3월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GDP의 183%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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