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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재테크 전문가들이 원하는 경제 대통령
[커버스토리] 재테크 전문가들이 원하는 경제 대통령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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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률 7%, 1인당 GDP 1만5천달러시대….” 대통령 후보들은 경쟁하듯 화려한 미래를 약속한다.
이대로만 이뤄진다면 다른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은 유토피아가 만들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약속들은 유권자한테 피부로 다가오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져도, 1인당 GDP 1만달러 시대가 다시 열려도 서민이 살기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유권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내게 안정적 삶의 기반을 보장해줄 후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내가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는 대통령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Economy21'은 금융, 투자 분야 전문가 6명과 함께 당선 가능성이 높은 두 후보의 경제 관련 정책을 분석해 점수를 매겼다.
평균점수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76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70점이었다.
점수의 기준은 불합격이 50점, 합격이 70점, 우등점이 90점이다.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두 후보 모두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노 후보는 대북 햇볕정책, 집단소송제 도입, 분배 중시 철학, 서민 중심의 부동산대책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교육, 기술에 대한 획기적 투자와 시장친화적 부동산정책, 원칙에 입각한 노사관계 정립 부분에서는 이 후보가 좋은 평가를 얻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서민용 임대주택 공급 확대 방안은 두 후보가 공통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시장의 안정과 자율을 높이는 정책에 높은 지지를 나타냈다.



주가시장에선 노무현 공약 반기는 분위기


주가엔 노 후보의 햇볕정책, 집단소송제 도입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우선 대북 햇볕정책이 우리 시장의 안정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춰준다는 것이다.
반면 이 후보의 상호주의, 검증을 강조하는 대북정책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예컨대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경제가 어려워져 난민이 늘어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정부의 몫이 된다”고 말한다.
햇볕정책은 단순히 수세적 방어책이 아니라 더 큰 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 투자행위라는 것이다.
대신증권 김영익 투자전략실장도 “현재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이라면서 “통일 시기까지 북한 경제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전략가들은 북한 위험을 줄이면 주가상승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난해 9·11 뉴욕테러 직후, 올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선포 이후 미국 주가가 급락한 이유도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진 데에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 주가가 강한 상승세를 탄 것은 구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종결돼 리스크 프리미엄이 낮아진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집단소송제 도입안도 주식시장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단 노 후보 공약에 우호적인 셈이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대표는 “집단소송제는 증시 투명화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강조한다.
현대투신증권 박주식 리서치센터장도 “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통일된 목소리를 내려면 대표소송제만으론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승소 보상금이 해당기업으로 귀속되는 대표소송제는 일반투자자들한테 인센티브가 없어 참여연대 같은 사회단체가 아니고선 제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이 정책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업·경제단체들한테는 반발을 사고 있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불필요한 소송이 늘어 기업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입장은 이 후보에 더 가깝다.
집단소송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는 이 후보는 그 대신 현행 대표소송제를 강화해 기업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경기 이회창, 내집 마련엔 노무현


부동산시장에선 두 후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부동산 경기에는 이 회창 후보의 시장 친화 정책이, 내집 마련을 하고 싶은 서민한테는 노 후보의 투기 억제책이 좋다는 인식 탓이다.


이 후보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 친화적이다.
그는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보유세는 올리는 반면 거래세 부담은 낮춰 주택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이 후보는 고가주택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노 후보의 정책 방향은 투기 억제에 맞춰져 있다.
중대형 주택에 대해선 시장원리에 맡기겠지만 투기세력은 없애고 소형·임대아파트에 대해선 정부 주도로 주택 공급을 늘려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보유세는 과표 현실화를 통해 매년 3~5%씩 상향조정하고 양도세는 과세 기준을 더 강화해 투기수요를 억제한다는 게 노후보의 정책이다.
아울러 투기지역에는 다른 지역보다 중과세를 매기고 주택을 많이 보유한 사람한테는 누진과세를 적용하겠다고 말한다.


부동산뱅크 김용진 편집장은 “강력한 투기 근절책을 주장하고 있는 노 후보가 당선되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지나친 정부 간섭은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킬까 걱정스럽단다.
김 편집장은 주택금융제도 개선을 포함한 시장친화적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후보한테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이에 비해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노 후보의 투기 억제 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내집을 마련하려는 서민을 위해선 주택시장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성장 전략에선 우열 가리기 힘들어


경제성장 전략에선 누가 우위에 있을까? 무엇보다 민감한 부문임에도 두 후보의 정책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캐치프레이즈는 다르지만 정작 구체적 실현방안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모토는 ‘활기 찬 경제’다.
그의 전략은 최소 20년 동안 매년 6%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잠재력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노 후보의 모토는 ‘골고루 잘사는 나라’다.
그는 적절한 분배, 국민 통합, 시장 선진화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지금보다 2%가량 더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구체적, 단기적 실현방안을 보면 두 후보의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큰 공통점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려 국내총생산(GDP)을 확대하겠다는 부분이다.
여성정책의 세부 방안은 차이가 있지만 정책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정책 방향은 물론 바람직하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대표는 “여성 인력의 일자리 확충이 GDP 확대와 노동시장 유연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남자만 일하면 1인 소득이 곧 가계소득이라 인건비 인상 요구는 나날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장이라는 부담 때문에 고용조정을 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는 두 후보의 경제관 차이를 보여주는 핵심 모델에 대해 우열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둘 다 실행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모델이거나 실행 수단이 불분명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육, 기술 투자 확대로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이 후보의 모델에 대해선 전문가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김영익 실장은 “교육, 기술투자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물가가 안정된 상태로 국내총생산(GDP)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박주식 센터장은 “국가경쟁력의 원천 마련을 위해 교육과 기술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후보는 교육에 GDP의 7%, 연구개발비에 GDP의 3%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람 농사는 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교육이나 기술투자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노 후보도 교육, 기술 투자 확대 방안을 내놓고 있다.
교육예산은 GDP의 6%로, 국가 연구개발(R&D)예산은 국가예산의 7%로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목표치 높은 경제공약 대체로 “정치적” 평가


분배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노 후보의 전략도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하다.
최공필 위원은 “우리 경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부가 일부 계층에 편중되는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라고는 하나 연 소득 5천만원에 이르는 4인 가구는 많지 않은 사회구조에선 1만5천달러시대가 와도 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 흐름에 빠르게 적응해나가려면 분배구조를 세계적 흐름에 맞게 고쳐야 한다.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가 더욱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 위원은 그럼에도 노 후보가 분배 수단에 대해 뾰족한 현실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자리 250만개 창출, 종업원지주제 도입,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같은 방법으로는 빈부격차의 거대한 간극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경제공약이 대체로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고 평가한다.
목표치를 과도하게 높이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제성장률 목표치에 대해선 “너무 지키려고 애쓰지 않길 바란다”는 평가까지 들린다.
우재룡 대표는 “경제성장률이 6~7%일 땐 물가가 2%만 올라도 균형금리가 8~9%에 달한다”고 경고한다.
지금 같은 저성장, 저물가 시대엔 과도한 목표치라는 것이다.
박주식 센터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인당 GDP 1만달러를 유지하려고 무리수를 뒀던 전례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성장 속도보다는 성장의 질과 안정성이 더 중요한 시대인데도 두 후보가 지나치게 양적 성장에 목 매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아울러 “두 후보 모두 총론에 비해 각론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두 후보는 당내 경선, 정책토론회 등 수많은 검증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좋은 정책은 흡수하고 견해 차는 좁혔다.
그 과정이 올 한해 내내 이어지면서 모토는 달라도 세부 정책은 비슷해졌다.
양당 정책관계자들은 “양당 정책기획자들이 토론회 전에 미리 만나 서로 장단점을 지적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책 조율이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한다.



두 후보 모두 총론보다 각론·실천방안 부족


전문가들은 대통령 후보들의 캐치프레이즈처럼 “활기찬 경제”, “골고루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거시경제학자의 ‘펜’이 아니라 실천가의 ‘땀’이라고 강조한다.
계획경제시대엔 노동력과 투자자본을 늘리는 방법으로 고성장을 이끄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 저금리 시대엔 그것이 쉽지 않다.
일자리 확대 못지않게 주식, 채권 등 자산시장과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더이상 노동을 할 수 없는 인구, 노동기회를 얻지 못하는 인구가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각론, 실천방안이 필요하다.
실전에 강한 일꾼, 신뢰할 만한 일꾼을 발굴하는 능력은 새 대통령한테 필수 자질로 요구된다.
경제실천시민연합과 함께 대선 공약 분석작업을 한 경희대 권영준 교수(국제경영학)는 “경제공약을 그렇게 분석했는데도 아직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결국 지역이기주의, 연고주의, 기존 정치의 구태성을 누가 가장 적게 보이는가 하는 평가기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장에서 원하는 전문가를 등용하려면 가장 피해야할 적이 바로 그것들이기 때문이란다.
우리 정치의 구습을 답습하지 않는 대통령이 바로 국민한테 돈 벌어주는 대통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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