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3:01 (목)
[초점] 부시, 경제팀 교체 꿍꿍이는?
[초점] 부시, 경제팀 교체 꿍꿍이는?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12.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13일 오전 미국발 뉴스를 들여다보던 한국은행 미주팀 박상일 과장은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프리드먼은 재정적자 반대론, 균형예산론의 대표적 인물이 아닌가. 부시 대통령이 왜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와 견해도 다른 사람을 백악관 경제수석에 앉힌 거지?’ 이 시각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사람은 박 과장만이 아니었다.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팀 박해식 팀장은 반문한다.
“스노 신임 장관도 균형예산론자라면서요? 내년에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쓴다면서 그런 인물을 뽑았다니, 모를 일이네요.”

12월 둘쨋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행정부 경제팀을 갈아치웠다.
부시 대통령은 12월6일(현지시각) 폴 오닐 재무장관과 로렌스 린지 경제수석을 전격적으로 경질했다.
9일엔 세간의 예상을 깨고 철도운영회사 CSX의 회장 존 W. 스노를 신임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또 12일 저녁엔 공화당 보수파와 공급중시론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스티븐 프리드먼 골드만삭스 전 회장을 백악관 경제수석 겸 국가경제자문회의(NEC) 리더 자리에 앉혔다.



스노·프리드먼 균형예산론자


묘하게도 두사람 모두 평소에 정부의 재정 균형을 강조하던 균형예산론자다.
공화당원이기도 한 스노 장관은 1995년말 민주당 지지 기업인과 함께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한테 균형예산을 요구한 바 있다.
프리드먼 경제수석은 재정적자를 반대하고 균형재정을 추구하는 경제단체인 조화연합(Concord Coalition)의 이사로 활동했다.
두사람은 내년에 대규모 세금감면안을 실행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부시 대통령으로선 오히려 경계해야 할 인물들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해석은 분분하게 엇갈릴 수밖에 없다.
공화당 의원들은 프리드먼의 취임 연설내용을 귀담아듣는다.
이들은 프리드먼이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견고한 성장과 고용창출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신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한 것은 감세방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의사표명이라고 해석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반대 의미로 환영하고 있다.
부시가 재정적자 반대파로 경제팀을 구성한 것은 올바른 정책으로 전환하는 첫걸음일 것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이들은 감세를 과거에 실패했던 경제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와중에 ‘부시의 새 경제팀은 폭탄제거반’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감세 등 자신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하는 중에 나타날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의회와 월가에 영향력이 큰 두사람을 등용했다는 것이다.


스노는 대인관계, 특히 워싱턴 정가와 관계가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기업, 정부, 학계를 두루 거쳤다.
실용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내 온건파와도 관계가 좋아 부시 대통령이 다음달 제안할 추가적 대규모 세금감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프리드먼은 ‘제2의 로버트 루빈’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월가에서 신망이 두텁다.
루빈 전 재무장관은 클린턴 행정부 때 백악관 경제수석, 재무장관으로서 역량을 발휘해 역대 재무장관 중 가장 뛰어난 장관으로 꼽히고 있으며 여전히 월가와 워싱턴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프리드먼은 루빈 전 재무장관과 함께 90년대 초 미국의 유명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이끈 적이 있다.



새 경제팀 폭탄제거반?


또하나의 변수는 이라크 전쟁과 대선이다.
한국은행 미주팀 박상일 과장은 “이번 경제팀 교체에선 2003년 이라크 전쟁과 2004년 대선을 겨냥한 사전준비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말한다.
전임 경제팀 경질의 원인이 미국 경제 부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과 대선을 위해 의회와 관계도 개선해야 하고 정부 돈을 풀어 국민의 인기도 얻어야 하고 금융시장도 안정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경제팀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어차피 지금 미국 정부한테 남은 카드는 많지 않다.
금융연구원 박해식 팀장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인하로 통화정책은 더이상 신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경기회복을 위해선 감세, 재정지출 등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방안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시는 과연 새 경제팀과 감세정책으로 “아버지와 같은 경제 무능력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전망하긴 쉽지 않다.
실업률, 주가 같은 지표들은 여전히 좋지 않지만 소매매출,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 같은 일부 지표는 꾸준히 회복되고 있다.


이를 두고 메리츠증권 고유선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에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해석하고, 금융연구원 박해식 팀장은 내년엔 경기가 바닥을 찍고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감세정책에도 고 연구원은 이미 약발이 떨어졌다고 보고, 박 팀장은 소비자극 효과가 있다고 본다.


난다긴다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의 분석이 이처럼 엇갈리는 것은 그만큼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세련되게 제거하는가가 부시와 새 경제팀의 성공을 가늠하는 첫과제인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