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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구로공단 IT요람으로 변신중
[비즈니스] 구로공단 IT요람으로 변신중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3.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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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풍경을 먼저 떠올릴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종일 하얀 연기를 내뿜던 키 큰 굴뚝과 전봇대를 가득 메운 구인 전단지들,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 는 낡은 판잣집과 푸른 옷의 여공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의 구로공단은 더이상 굴뚝산업의 심장부가 아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과 금천구 가산동 일대 산업단지를 일컫는 ‘구로공단’이 묵은 때를 벗고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로 변신중이다.
1970~80년대 수출역군으로 경제성장에 톡톡히 한몫 했던 신발·봉제·섬유업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첨단 생산설비를 갖춘 IT업체들이 속속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구로공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다.
2000년 12월, 구로공단은 36년 동안 간직해온 이름을 버리고 ‘서울디지털산업단지’ www.seouldic.net란 산뜻한 간판을 내걸었다.
쇠락한 제조업 단지의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첨단산업의 심장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낡은 굴뚝부대를 앞세워선 치열한 정보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도 한몫 했다.
생존을 위한 대수술이 시작된 것이다.



신축건물 입주 절반이 IT업체


최근 2년 동안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첨단 IT 인프라를 갖춘 10~15층 규모의 아파트형 공장이 13개나 들어섰다.
해가 바뀐 지금도 서너 개의 아파트형 공장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내 입주업체 수는 1280여개다.
이중 약 절반을 차지하는 660여 업체가 최근 지은 아파트형 신축건물에 입주해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신축건물에 입주한 기업의 절반 이상이 IT업체들이란 것이다.


지난 97년부터 구로동에 둥지를 튼 PC 제조업체 현주컴퓨터는 2001년 첨단 생산설비를 갖춘 공장과 사옥을 마련하며 구로공단의 식구가 됐다.
이로 인해 현주컴퓨터쪽은 생산과 서비스, 자재지원과 콜센터, 고객만족센터 등이 한꺼번에 이뤄지게 돼 업무 일원화가 가능해졌다며 만족해하고 있다.
LG전자와 롯데전자 등 대기업 공장과,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도 이미 입주해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최근 2년간 소프트웨어(SW) 업체들이 대거 늘어났다는 것이다.
현재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는 업체는 660여개. 이들 중 19%에 이르는 126개 기업이 SW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0여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전기·전자업종과 170여개인 기계업종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숫자다.


단지내 대표적인 첨단 벤처 빌딩으로 꼽히는, 한국산업관리공단이 조성한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의 ‘키콕스벤처센터’를 살펴보자. 이곳에는 기업자원관리(ERP) 업체인 넥시스·씨컴테크·한결소프트와 원격교육 솔루션 업체 태영정보기술, 쇼핑몰 구축업체인 오케이홈쇼핑 등의 SW 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키콕스벤처센터는 초고속 전용선과 광케이블 랜(LAN), 케이블TV망과 영상회의 시스템 등 최신 정보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법률·세무·특허 등 전문지원기관도 들어서 있다.
입주업체는 웹메일과 메일서버도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2월께부턴 건물안에서뿐 아니라 단지내 거리에서도 노트북PC나 PDA 등으로 무선인터넷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단지내 입주업체인 무선레이저 전송장비 개발업체 에어로컴 www.aerocom.co.kr이 지난해 말 한국산업단지공단과 업무협약 조인식을 맺고 단지내에서 무료로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키로 했기 때문이다.
단지 전체가 거대한 ‘초고속 네트워크 신도시’로 거듭나는 셈이다.


93년부터 구로동에서 사업을 시작한 확장형 ERP 업체 KAT시스템 국오선 사장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꾼 뒤 정부의 세금감면 등 지원정책과 정보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입주 배경을 분석했다.



첨단 벤처빌딩 잇따라 들어서


IT업체들이 늘어나는 것 못지않게 첨단 건물들도 속속 올라서고 있다.
최근 2년새 테크노타운, 에이스테크노타워, 디지털밸리, IT타워 등 이름부터 첨단 분위기를 풍기는 아파트형 공장이 잇달아 들어서 제조형 벤처기업을 손짓하고 있다.
특히 우림건설이 내년 11월께 완공할 예정인 ‘우림라이온스밸리’의 경우 연면적이 5만7천평으로 63빌딩보다 넓다.
‘벤처 빌딩’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이들 공장은 분양가가 평당 300만원대로, 강남 테헤란로의 임대료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컴퓨터부품이나 전기·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제조형 벤처기업들에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가 아파트형 공장 입주업체에 취득세와 등록세를 100% 감면해주는 것도 매력이다.


단지의 입지조건도 제조업 기반 벤처기업들의 구미를 당긴다.
서해안고속도로, 도시외곽순환도로, 남부순환로 등 주요 도로로 진입하는 데 10분이면 충분해, 인천의 남동공단이나 안산 반월공단, 시화공단 등으로 접근하기 편리하다.
따라서 수도권이나 중부지역 공단내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중소·벤처기업엔 최적의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벤처=테헤란밸리’란 공식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강남 벤처거리 끝자락에 매달려 있느니, 3분의 1에 불과한 임대료와 관리비로 첨단시설과 편리한 교통망을 갖춘 ‘제2의 IT 메카’를 찾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신형 벤처타운들도 또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땅값 상승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경우 2년여 전부터 IT업체들의 집단 이주가 시작되면서, 당시 200만~300만원 정도였던 땅값이 현재 600만원 가까이 치솟았다.
따라서 ‘값싸고 시설 좋은 첨단 공업단지’란 초창기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짧은 시간에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교통난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입지조건이 좋음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교통량은 감당키 어렵다는 얘기다.


구로공단은 사라졌고, 거리를 가득 메운 여공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이곳은 국내 IT산업의 중심부로 다시 떠올랐다.
앞길에 남은 몇몇 걸림돌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21세기 핵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IT산업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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