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18 (금)
[문화] 나는 비판한다. 고로 존재한다
[문화] 나는 비판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이성욱/ <한겨레21> 기자
  • 승인 2003.01.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마 나기사를 전후 일본 영화 사상 최고의 감독이라고 꼽는다면 반박의 외침이 요란스럽게 울려퍼질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 세계영화사에 한획을 그은 거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거장의 지나치리만큼 차분한 영화어법에 비하면 오시마 나기사의 화법은 격렬하기 그지없다.
일본 영화 사상 최고의 문제감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감각의 제국'. 1976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상영된 이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인 방식으로 그의 이름을 세계에 떨쳤다.
일본에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1936년을 배경으로 섹스에 탐닉해들어가는 한 남녀의 모습을 하드코어 포르노 방식으로 그려냈다.
실화 ‘아베 사다 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는 죽음에 이르는 쾌락에의 충동이 끈적하게 담겨 있다.
오시마 나기사는 이 영화로 일본에서 재판에 회부되지만 그의 ‘혈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2년 뒤에 만든 '열정의 제국'에서 다시 한번 섹스와 범죄를 그린다.
표현의 강도는 누그러들었으나 예술적 원숙미는 한층 무르익었고, 칸영화제는 감독상으로 그를 지지했다.
이번 회고전에선 이들 작품을 무삭제판으로 상영한다.


금기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섹스에 눈을 돌리기 이전, 오시마 나기사는 좀더 직접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도전장을 냈었다.
1959년 쇼치쿠영화사는 전통적 도제방식으로 조감독 생활을 하고 있던 27살의 그를 전격적으로 발탁해 메가폰을 맡겼다.
흥행부진과 침체에 빠진 영화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피를 수혈한 것인데, 오시마 나기사는 이를 발판으로 ‘쇼치쿠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냈다.
기성 도덕에 대해 도발적으로 반기를 든 젊은이들을 그린 '청춘 잔혹 이야기'는 이후 ‘태양족 영화’로 불리는 수많은 청춘영화에 영향을 미쳤고, 60년대 미일 안보투쟁을 다룬 '일본의 밤과 안개'는 개봉 당시 불과 4일 만에 상영이 중지될 정도로 강한 정치성을 드러냈다.


오시마 나기사는 한국인에게 특별한 영화도 만들었다.
전쟁으로 인해 빈곤한 삶에 처했던 한국에 대한 애정을 독특한 형식에 담아 표현한 '윤복이의 일기', 두명의 일본인 소녀를 강간·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63년 사형당한 재일 한국인 고등학생의 실화를 소재로 만든 '교사형' 등이다.
이번 회고전은 그의 대표작이자 문제작 12편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