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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세계경제 구원의 메시지를”
[전망] “세계경제 구원의 메시지를”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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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구축’(Building Trust). 23일부터 스위스의 이름난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2003년 연례총회가 내건 올해의 주제어다.
매년 전세계 주요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은 올해 세계경제의 비전을 상징하는 핵심단어로 ‘신뢰’를 선정했다.
지난해 행사가 9·11 테러 현장인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열렸던 것과는 달리, 올해 대회는 여러모로 예년의 모습을 되찾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번 대회에는 전세계에서 1천여명의 경제지도자, 250여명의 정치지도자 이외에도 200여명에 달하는 시민운동가들이 자리를 함께 한다.


이들 가운데는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도 끼어 있다.
이라크 전쟁 가능성이 고조된데다 북한 핵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불안정한 지역정세가 세계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서 그의 행보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또 한사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다.
올해 초 정식으로 취임한 룰라 대통령이 그간 세계경제포럼으로 상징되는 세계화 흐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그의 행사 참가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이번 행사와 나란히 열리는 세계화 반대 집회에도 동시에 참여한다는 단서를 내걸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 등 참가 눈길


스위스 치안당국이 해 전부터 포럼이 열릴 때마다 으레 찾아드는 시위대에 대해 올해에는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마치 금융자유화나 자유무역질서와 밀접하게 관련된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신뢰 구축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한 사실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가 풍긴다.
치안당국은 세계경제포럼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의 집회를 공식적으로 허락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대회를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16일에는, 대회장인 다보스회의센터 건물 근처에서 폭발물이 발견돼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게다가 스위스 정부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경호를 위해 1천만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책정했고, 행사기간 동안에는 비행금지구역 상공을 운항하는 항공기에 대해서 공격도 서슴지 않겠다는 공식발표를 하기도 했다.
모두가 여전히 불안정하고 위험에 사로잡힌 현 세계질서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들임에 틀림없다.


이제 시야를 경제문제로 좁혀보자. 세계경제가 오래도록 전반적 침체상태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가운데, 올해 세계경제포럼이 신뢰 구축이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운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않고는 전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현재의 추세를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바로 모든 영역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그 실마리라는 사실을 세계경제의 ‘메인스트림’ 스스로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기부양을 위한 일시적 ‘대증요법’만으로는 위기에 빠진 세계경제를 구해내는 데 엄연한 한계가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셈이다.


때마침 올해 행사를 앞두고 세계경제포럼 사무국이 갤럽인터내셔날과 함께 세계 46개국 3만6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여론조사는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물론이려니와 개별 국가의 정부조직이나 언론기관, 심지어 노동조합과 NGO에 대한 신뢰가 예전보다 상당히 떨어졌음을 말해준다.
특히 글로벌 기업이나 특정국가의 대기업은 일반인들로부터 의회 다음으로 낮은 신뢰를 얻는 데 그쳤다.
이들 기업에 대해 신뢰를 거두어들인 사람들의 비율은 여전히 신뢰를 보이는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지난 한 해 동안 주요 국가들에서 잇달아 터졌던 회계스캔들의 여파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능히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올해 기업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세부과제로 세계경제포럼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꼽은 것도 신뢰 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더욱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올해 행사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별도의 토론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해결과제 1순위로 꼽아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물론 회계부정으로 상징되는 신뢰의 위기가 세계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일련의 스캔들이 터져나오면서 전세계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하게 가라앉았고, 스캔들에 관련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파산을 맞기도 했다.
“자본주의 정신의 실종”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터져나온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 세계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뿌리는 실상 이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말하자면 신뢰의 위기를 가져온 직접적 계기가 된 회계부정 스캔들이 곧 세계경제 침체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극적 표현일 수도 있는 셈이다.
회계부정 스캔들이 단지 일부 최고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부터 비롯한 일시적 ‘사건’이라기보다는 현 세계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경제가 성장동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이고 여기에 전세계 금융시장이 더욱 밀접하게 얽혀 있는 건, 회계부정과 같은 스캔들이 언제라도 일어날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는 게 사실이다.
예컨대 성장동력을 상실한 기업들은 투자자금 조달을 위해 불법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억지로 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메커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 한해 동안 끊이지 않았던 부정회계 스캔들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세계경제포럼이 세계경제를 구원하기 위한 올해의 화두로 신뢰 구축을 내걸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분명히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주요 산업부문의 수익률이 바닥을 면치 못할 만큼, 세계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유럽과 일본의 침체 속에 세계경제 질서가 심한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크나큰 골칫거리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세계경제가 신뢰를 되찾는 일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테러가 벌어진 비극의 현장에서 “세계경제는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치중했던 지난해 행사와는 달리, 올해 행사는 세계경제의 난제를 이겨낼 좀더 속 시원한 해답을 바라는 이들의 눈길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올해 세계경제포럼은 현단계 세계경제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또 다른 계기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무척 높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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