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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장철훈 / 전 조흥은행장
[사람들] 장철훈 / 전 조흥은행장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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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의 한국경제 역할 되새김”

“100년 은행의 소중함을 간직해줬으면….”

35년 동안 몸담았던 조흥은행이 매각과 함께 하루아침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현실 앞에서 장철훈(68) 전 조흥은행장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1897년 최초의 민족은행으로 출발해, 불과 몇년 전만해도 최고의 리딩뱅크로 손꼽히던 곳이 바로 조흥은행이다.
‘조선을 일으킨다’는 큰 뜻을 담고 있지 않았던가.

IMF 외환위기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당시 행장으로 무너져가는 금융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장 전 행장은 예금보험공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걸려 있고, 외국에서 그 가치를 더 알아주던 ‘100년 은행’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을 맞고 있다.
“정부에서 하루라도 빨리 공적자금을 회수하겠다는데 이론은 없어요. 하지만 IMF 사태의 책임을 일개 은행이나, 일개 은행장에게만 묻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요. 100년이라는 역사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장철훈 전 행장이 서둘러 '금융위기 어떻게 오는가-한 은행장이 겪은 IMF 리포트'를 엮어낸 것도 100년 은행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현재 조흥은행 인수를 앞두고 있는 신한은행은 바로 장 전 행장이 98년 먼저 합병을 제의했던 곳이다.
이제는 뒤바뀐 처지로 만났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조흥은행 매각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을 텐데도 장 전 행장은 조심스럽기만하다.
“자칫 집단이기주의로 비칠까 걱정스러워요.”

그의 책에는 그러나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IMF 사태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은행장으로 그때의 체험을 책으로 펴낸 것은 장 전 행장이 처음이다.
“금융인으로서 있었던 사실만을 썼어요. 이걸 토대로 IMF 사태의 원인을 밝혀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다른 누군가가 해줬으면 해요.”

그가 행장으로 있던 97년 3월부터 98년 7월까지는 정말 “대단한 파노라마”의 연속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부도를 처리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국제통으로 불렸던 그는 10년 이상 뉴욕, 도쿄, 런던에서 근무해 선진 금융시장에 비교적 밝았다.
취임 후 은행장이 대출 전권을 행사하던 관행을 깨고 여신심의위원회를 만들어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선진 시스템 접목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은행 경영에 묘수는 없어요. 정도가 있을 뿐이에요.” 그는 은행산업을 물에 떠 있는 고무통에 비유한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IMF 사태 이후 은행에 돈은 있는데, 기업엔 대출을 해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신용카드가 인기를 얻자 너도나도 뛰어들어 문제가 생겼다.
카드 대출에 문제가 생기니 개인 대출을 늘려줬고, 개인 대출을 늘리자 주택담보 대출이 늘어 아파트값이 뛰었다.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정도를 걷지 않으면 끝없이 이런 문제가 이어지게 된다.


“기업금융과 개인금융이 균형을 이뤄야 해요. 이걸 무시하면 안 되죠.” 장 전 행장의 변함 없는 신념이다.
최근 주식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은 국민은행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기업에 대출해주어야 할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겠다니, 그게 신문에 낼 일인가요.”

그는 우리 은행들의 정체성 문제도 짚고 넘어간다.
“기업 대출을 통해 국민경제의 발전을 이끌었던 조흥, 산업, 한일, 제일, 서울, 외환 등 6대 시중은행 대부분이 IMF 사태로 부실은행 신세가 됐어요.” 반면 기업 대출이 적어 그만큼 부실 위험이 없던 국민은행, 신한은행은 우량은행이 됐다.
그가 보기에 이건 “페어”한 결과가 아니다.
“물론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6대 시중은행이 한국 경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정해줘야 해요.”

그는 대성산업 고문 이외에는 별다른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인터뷰를 끝내고 커피숍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은 평생 한길만 걸어온 뱅커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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