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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중국 경제 ‘부실채권 시한폭탄’ 초침은 돌아간다
[특집]중국 경제 ‘부실채권 시한폭탄’ 초침은 돌아간다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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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에서 가장 희망이 넘치는 나라는 어디일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경기불황에 허덕인 지난해에도 중국은 8%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또 지난해 국제 무역 증가량 중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해외 투자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투자대상국이 되었다.
올해 외국인 직접투자가 세계적으로 3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으로 향하는 투자 행렬은 오히려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희망에 가득 찬 수치들이 부러움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모든 것이 정말 잘돼 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 현상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지나친 낙관과 긍정은 동시에 고통스러운 추락의 서막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최근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10년 장기 불황을 앞둔 1980년대 말 일본 경제가 그랬고, IMF 구제금융기를 맞기 직전의 한국 경제가 그랬다.
위기는 소리 없이 다가와 한순간에 화려한 성과들을 결딴낸다.


공교롭게도 금융 부실을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국과 일본이 낙후된 금융 시스템의 덫에 걸렸던 것처럼, 중국도 비효율적 금융부문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경고다.
실제로 중국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이미 천문학적 수준을 넘어섰다.
중국공상은행, 농업은행, 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4대 국유 상업은행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이 2001년 말 현재 1조7656억위안(213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국내총생산(9조 5800억위안)의 18.4%에 해당하며, 중국 정부의 한해 예산(1조8844억위안)과 맞먹는 액수다.
총대출 중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도 25.4%까지 치솟았다.
부실채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의 부실 비율이 6.8%, 우리나라의 경우는 현재 2.4% 수준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중국의 금융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주요 국제 금융기관들은 중국 정부의 발표보다 부실채권 규모가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4대 국유 상업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47%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스탠더스앤드푸어스(S&P)와 맥킨지도 부실채권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50%, 44∼55% 수준일 것이라는 예상을 각각 내놓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 최의현 전문연구원은 “중국과 비슷한 상황이던 동구권 국가에서도 막상 실사를 해보면 정부의 발표보다 부실채권 규모가 2배 정도 많았다”고 말한다.



국제 금융기관 “부실채권 비율 50%에 달한다”


중국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더라도, 부실채권 비율이 25.4%라는 것은 4대 국유 상업은행이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 있다는 걸 뜻한다.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인출을 요구한다면 속수무책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의 예금자들이 동요하지 않는 것은 은행 뒤에 중국 정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남대 중국/경제학부 이준엽 교수는 “중국 정부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은행에 맡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가계저축률은 40%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주식, 채권, 보험 등 다른 금융상품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중국 국민들은 경제성장에서 얻은 수익을 무조건 은행예금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대 국유 상업은행이 전체 예금의 67%를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부실채권 문제의 해결을 계속 미룰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약속한 개방일정에 따라, 중국은 2007년부터 금융시장을 완전 개방해야 한다.
외국 은행에 대한 인민폐 영업이나 지역 제한, 고객 제한이 사라지면 중국 은행들은 고객확보를 놓고 이들과 전면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서비스에서 앞서는 외국 은행으로 예금이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국제금융센터 남수중 연구원은 “중국 은행의 유동성은 대부분 가계저축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며 “외국 은행으로 예금이 옮겨갈 경우, 대규모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상당수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은행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가뜩이나 앞으로 쓸 곳이 많은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서부 대개발사업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쏟아부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출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2.2%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하려면 내수 활성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막대한 재정지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금융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경기 악순환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한 확대할 수 있는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3%로 본다”며 “중국은 지난해 이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개혁개방 이후 지난 20년간 평균 10%의 고성장을 계속해온 중국 경제에 성장추세의 감속이나 후퇴는 재앙을 의미한다.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이규인 차장은 “매년 1천만명씩 쏟아지는 신규 노동인력을 흡수해 고용안정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매년 7%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중국 정부는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전에 부실채권을 털어버려야 하는 절박한 입장에 서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 재정 압박… 고도성장 걸림돌로


부실채권은 으레 효율적 자금 흐름을 가로막는다.
실물경제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금융부문이 제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최근 경험이 준 뼈아픈 교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 최의현 전문연구원은 “부실채권을 많이 안고 있는 은행들은 신규 대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4대 국유 상업은행이 크게 “물려” 있는 곳은 과거 사회주의 경제의 중추였던 국유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에서는 추가대출을 중단하면 곧바로 쓰러져버릴 ‘좀비 기업’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정부의 압력에 밀려 이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금융시장의 최대 자금원인 4대 국유 상업은행의 전체 대출 중 86%가 국유기업으로 계속 흘러가고 있다.
반면, 이미 GDP의 70%를 담당할 정도로 급성장한 민영기업은 돈 빌릴 곳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도 부실채권 정리를 통한 금융시스템 정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 3월 4세대 지도부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부실채권 문제를 풀려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저우사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은 4대 국유 상업은행의 부실채권 처리가 금융개혁의 첫번째 사안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 지난 1월, 해당 은행장들을 불러 “4대 국유 상업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반면,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지지부진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은 지난해 4대 국유 상업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을 매년 2~3%씩 줄여 2005년까지 15%로 낮춘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부실채권 정리율이 예상보다 낮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중국 정부는 99년, 4대 국유 상업은행이 안고 있던 1조3939억위안어치의 부실채권을 각 은행 산하에 부실채권 정리를 전문으로 하는 자산관리공사(AMC)를 설립해 넘겨주도록 했다.
이들 4개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정리실적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16.7%에 불과하다.
한남대 중국경제학부 이준엽 교수는 “ 국유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부실채권 회수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미 알짜 자산은 다 정리했기 때문에 앞으로 회수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 많다”고 말한다.


중국인민은행의 강한 질책이 잇따르자, 4대 자산관리공사도 최근 부실채권 회수에 바짝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부실채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의 자산관리공사와 접촉하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 해외사업부 최봉대 팀장은 “중국의 부실채권 처리 움직임이 지난해보다 빨라지고 있는 느낌”이라며 “예전과 달리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부실자산의 내역을 자세히 보여주는 등 적극적 태도로 돌아섰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존 부실채권 처리를 은행에만 맡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은행의 자체적 해결만 요구하다간 금융시장의 전면 개방에 앞서 필요한 금융개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4대 국유 상업은행이 안고 있는 막대한 부실채권 발생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
개혁개방 이후 고도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은행 예금을 ‘제2의 재정’으로 활용했다.
모든 대출이 은행의 판단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결정과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몇차례의 금융제도 개혁을 통해 ‘관치 금융’이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해도,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난 과거 부실에 대한 책임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1월에는 올해 4대 국유 상업은행의 부실채권 정리에 400억달러(3320억위안)를 지원할 것이라는 중국인민은행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 부실채권을 모두 털어버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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