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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종근 LG상사 지역개발 TFT팀장
[사람들]이종근 LG상사 지역개발 TFT팀장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3.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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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경험, 석사 논문으로


그를 ‘북한 전문가’로 부르는 것에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
14년 동안 남북경협에만 매달려왔고, 북한을 8번이나 다녀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LG상사에 입사한 게 1984년이니 직장생활의 3분의 2 이상을 북한만 고민하며 지내왔다.
그는 현재 대기업 ‘북한팀’에 근무하는 사람 가운데 ‘최고참’으로 꼽힌다.


LG상사 지역개발 TFT팀장인 이종근(46) 부장의 오랜 경험이 결실로 맺어졌다.
지난 2월말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 ‘남북위탁가공무역 구조에 관한 연구’로 졸업장을 받은 것이다.
그는 “남북경협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겸손해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논문은 실증적이다.
풍부한 현장경험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남북경협의 역사와 당위성, 그리고 문제점까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때문에 그의 논문은 어떤 학자의 논리보다도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는 논문을 통해 남북한 상업성 거래가 실제로는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다.
예컨대 2001년 남북 전체 교역액 4억295만달러 가운데 41%인 1억6664만달러는 남한 정부나 민간단체가 북한에 지원한 대북물자였다.
실제 상업성 거래는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2001년 상업성 거래 규모만 따지면 IMF 직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햇볕정책으로 정치적 환경이 바뀌었어도 북한과 상업적 거래를 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많은 기업들이 북한과 거래를 하겠다고 뛰어들었지만 100만달러 이상 거래하는 기업은 20여개 업체도 안 됩니다.
100만달러래봤자 12억원 정도인데 말이죠.”

그래도 그는 94년부터 시작된 ‘남북위탁가공무역’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에서 조그마한 위안을 삼는다.
94년 위탁가공무역 규모는 2500만달러였지만 2001년에는 1억2492달러로 5배가량이나 늘었다.
전체 남북 무역에서 위탁가공이 차지하는 비중도 52.9%로 절대적이다.
현재 위탁가공무역은 남한 기업이 북한에 원·부자재를 모두 대주고, 완성된 제품을 다시 갖고 오는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말이다.


특히 위탁가공 가운데 의류·봉제 등 ‘섬유류’부문이 70.9%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의류부문은 운송비를 고려해도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맡기는 것과 원가가 비슷하다.
게다가 북한에서 임가공한 의류는 바느질이 꼼꼼해 품질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현재의 전력과 에너지난 때문에 사람 손에 의존하는 의류 이외에는 딱히 임가공할 분야가 없는 편이다.
북한이 의류쪽 주문을 따내기 위해 의욕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남북 정치상황의 굴곡이 심해도 의류부문 경협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서로 ‘윈윈’하고 있기 때문이죠. 비록 낮은 단계이지만, 이러한 남북경협 모델은 귀중한 결과물입니다.


그가 남북경협에 뛰어든 것은 89년부터였다.
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른바 ‘7·7선언’을 발표한 뒤 각 기업들이 대북 진출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당시 몸담고 있던 사업부서가 대북 진출을 담당하게 됐고, 그는 타의반 자의반으로 대북경협을 맡게 된다.


홍콩으로, 베이징으로 타향살이를 하면서 정보도 없던 북한과 무역을 한다는 게 처음에는 고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조금씩 관록이 쌓이면서 이제는 나름대로 노하우가 쌓였다.
북한쪽 파트너가 그에게 준 양복 선물은 그의 베테랑 경험을 입증해주는 소중한 징표일 것이다.
때문에 양복 치수가 조금 작지만 그는 ‘고마워서’ 북한과 상담할 때는 항상 그 양복을 입고 나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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