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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세계경제, 재정적자 증가는 재앙의 씨앗?
[글로벌]세계경제, 재정적자 증가는 재앙의 씨앗?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3.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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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경기부양으로 정책기조 전환… 장기적으론 더 큰 ‘수렁’ 빠질 우려도 많아 현재 세계 주요 국가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한결같이 재정적자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답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동반 경기침체에 빠져 재정수입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마저 덩달아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은 더욱 초라해진 상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재정정책의 기조 자체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침체에 빠진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대규모 수요 창출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적극적 자세로 돌아섰다.
각종 세금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 탓에 자연스레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간 주요 국가들이 무게중심을 재정구조 안정쪽에 두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러다보니 건전한 재정구조 확립이라는 원칙이 경제정책의 주요 어젠더에서 자리를 잃는 게 아닌가라는 성급한 진단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재정적자 증가 추세가 이대로 방치될 경우, 세계경제는 경기침체와는 또 다른 커다란 문제와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도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한다.
재정적자, 시간 지날수록 ‘눈덩이’ 부시 대통령이 엄청난 규모의 감세안을 의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은 대표적 사례다.
3월4일 공화당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의회예산위원회는 올해 미국 재정적자 규모가 애초 예상보다도 약 300억달러 더 늘어날 것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불과 5주 전의 예상치보다도 적자폭이 15%가량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이 수치 역시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안에 대해 의회가 본격 논의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 시점에서 나온 결론이라는 점이다.
만일 감세안과 이라크 전쟁이라는 변수를 모두 고려한다면 올해 적자폭은 모두 4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애초 부시 대통령이 밝혔던 재정적자 추정치가 3040억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예산위원회의 이번 발표가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에 대한 압력이 더욱 거세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유럽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3월3일 IMF는 영국 재정적자 규모가 너무 크다며 그 위험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두번째 임기 동안에만 국채발행액이 두배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현 노동당 정부는 “지금 상황이 30년 만에 찾아온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라며,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경기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을 태세다.
이런 기류는 이웃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지난해 가을 재선에 성공한 슈뢰더 독일 총리는 ‘플랜 B’라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인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감세안처럼 대규모 감세를 포함해 재정정책 기조를 큰 틀에서 수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특히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권 국가들의 경우에 이 같은 정책기조 방향 전환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재정정책의 고삐를 좀더 느슨하게 풀어놓는 것은 무엇보다도 유럽 통화통합의 대전제였던 ‘안정성협약’과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유럽 통화통합 당시 단일통화의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유로권 국가들은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3%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한 바 있다.
만일 이 규정을 어길 경우, 단일통화권에 가입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가입 이후에도 유럽연합 차원의 강력한 제재가 뒤따르는 건 물론이다.
그럼에도 최근 프랑스나 독일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유럽 통화통합을 앞장서 이끌었던 이들 국가는 최근 들어 안정성협약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간 ‘GDP 대비 재정적자 3%’로 못박았던 조건에 다른 요소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우선 실업률을 좀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실업률이 높은 상태에서 개별 국가가 어느 정도의 재정정책을 펼칠 여지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률도 마찬가지다.
이미 경제구조가 성숙단계에 접어든 유럽 국가들과 한창 성장단계에 있는 후발 산업국가들의 사정은 다르다는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뒤쫓아 오는 후발 국가들과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정부의 활동공간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말하자면 재정지출 고삐를 다소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금리 높여 경기회복 걸림돌 될 수도 재정적자가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이들 국가의 물가수준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에 경기침체시에 재정지출을 늘려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게 주된 논거다.
물가수준이 불안정한 여타 국가들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독일 정부는 EU분담금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실제 분담금 기준으로 가장 많은 돈을 유럽연합 재정에 쏟아붓고 있는 독일은 그만큼 국내 재정지출 여력이 없기 때문에 느슨한 재정정책을 어느 정도 용인해달라는 통사정에 다름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 국가가 보여주는 모습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뒤지는 다른 국가들에 엄격한 조건을 내건 안정성협약을 밀어붙인 당사자들이 이제 와서 앞다퉈 협약내용을 위반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은 편이다.
이 과정에서 통화당국의 영향력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력한 명분 아래, 통화정책에 정치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주요 국가들의 재정적자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세계경제 자체에 한바탕 회오리를 몰고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재정적자 확대가 해당국 국내금리를 높여 경기회복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외에도,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더욱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은 탓이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단기적 행보가 자칫 장기적으로는 큰 재앙의 씨앗이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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