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7:12 (화)
[사람들]중국 주룽지 총리 정계 은퇴
[사람들]중국 주룽지 총리 정계 은퇴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3.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케이스식 경기부양책 유지해야” 강력한 리더십으로 중국 경제의 초고속 성장시대를 이끌어온 주룽지 총리가, 지난 3월5일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마지막 국정보고를 끝으로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천안문 사태와 개혁개방의 후유증으로 몹시 혼란스럽던 1991년, 상하이시 서기에서 국무원 부총리로 전격 발탁된 지 12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주 총리는 ‘중국 경제의 황제’, ‘철혈재상’, ‘중국의 케인스’ 등으로 불리며 각종 경제개혁을 주도해왔다.
주 총리는 90분간의 마지막 연설에서 그동안의 경제성과를 회고하고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의 모멘텀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의 지속을 위해 케인스식 경기부양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주 총리는 또 국유은행이 개인대출과 중소기업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1928년 마오쩌뚱의 고향인 후난성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주 총리는 중국 고전을 즐겨 읽던 큰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칭화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주 총리는 마오쩌뚱이 중국인민공화국을 세운 49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마오쩌뚱의 경제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해, 문화혁명 때는 중국 북동부 시골에서 10여년간 하방(下放)생활을 하기도 했다.
주 총리는 70년대 말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으면서 복귀해, 80년대 후반에 상하이 시장에 선출됐다.
그는 이때 지도층의 뇌물 수수를 철저히 단속하는 등 부정부패를 일소해 중국 인민들에게 ‘깨끗하고 능력있는 인물’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주 총리가 국무원 부총리에 오른 90년 초반, 중국 경제는 통화팽창과 부동산 과열, 무원칙한 개발 열풍으로 ‘거품 붕괴’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93년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장을 겸직함으로써 경제분야에 전권을 쥐게 된 주 총리는 경기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거시조정’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94년 21%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이 97년에 0.2%로 떨어졌다.
98년 총리에 취임한 그는, 지난 5년간 국유기업 노동자의 3분의 1인에 해당하는 4천만명을 자르는 등 강력한 구조개혁을 단행했으며, 2001년엔 오랜 숙원이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성사시켰다.
하지만 내수진작 과정에서 초래된 대규모 재정적자와 지역간 빈부격차, 실업문제 등 주룽지시대가 남긴 과제 또한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