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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칼럼]함정호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리드칼럼]함정호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 이코노미21
  • 승인 2003.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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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시대 정책사명 최근 들어 은행의 예금 평균금리가 4.23%까지 떨어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이자소득세를 감안한 실질 예금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에 이른다.
이 말은 곧 은행에 돈을 맡길 경우 이자는커녕 오히려 보관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 금리가 20~30%에 달했던 고금리시대를 생각하면 가히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초저금리에 따른 걱정도 만만치 않다.
초저금리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유동성은 넉넉하게 늘어났는데도 기업과 가계의 자금수요는 크게 감소한 데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채비율이 축소되고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설비투자가 감소하면서 기업의 자금수요가 크게 위축됐다.
게다가 지난해 이후 부동산 안정대책과 가계대출 억제조치 등으로 가계의 자금수요도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미국-이라크간 전쟁 가능성과 북핵 위협, 유가 급등 등으로 국내 증시가 침체되고 경기 또한 급속히 둔화하면서 부동자금이 은행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운용처를 찾지 못한 은행이 안전자산인 국공채를 집중적으로 매입하면서 시장금리가 급격히 낮아지고 예금금리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으면서 위기극복과 경제회복을 위해 그동안 저금리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이같은 저금리 기조는 기업의 고비용 구조를 해소해 경쟁력을 높이고 내수촉진을 통해 경기침체의 늪을 벗어나게 함으로써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해온 게 사실이다.
또한 저금리 기조는 위기극복 과정에서 159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대규모 채권을 발행했던 정부의 이자상환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는 데도 보탬이 됐다.
그러나 금리수준이 장기간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선 국민연금 등 각종 정부기금과 은행,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이 자금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연금 또는 이자소득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노년층의 수입이 줄어들고 보험요율 상승으로 인해 계약형 저축자가 불리해진다.
이와 함께 전세가 월세로 바뀌면서 무주택 서민계층도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둘째, 한계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어렵게 해 구조조정을 지연시킨다.
셋째, 저축 유인을 줄여 국민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한다.
넷째, 가계부채가 쌓이면서 개인 파산이 늘어난다.
다섯째, 부동산 등 자산가격 거품 확대 및 붕괴과정에서 자칫 기업과 금융의 동반 부실을 초래해 금융 불안정과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초저금리 현상은 금리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해 경기변동에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기도 한다.
우리 경제는 아직 역동적이고 성장여력도 크다.
그러나 금리가 너무 낮으면 일본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오히려 경제 운영과 성장잠재력 확충에는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선 금리가 적정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초저금리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부동자금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활동의 역동성을 높여 초저금리 현상을 초래하는 경제여건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리정책이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금리 외의 여타 정책수단을 통해 실물경제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자금이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은행에 몰린 단기 부동자금이 증권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다양한 간접투자 금융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제고해 기업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투자의욕을 되살림으로써 기업 자금수요가 증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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