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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수영 마이클럽 사장, 발레리나에서 벤처 갑부로
[사람들]이수영 마이클럽 사장, 발레리나에서 벤처 갑부로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3.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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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

발레리나 출신의 컨설턴트, 게임벤처를 성공적으로 일군 코스닥 갑부, 최대 지분을 가진 창업 회사를 떠나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 이 가운데 한두가지만 추려도 영화 한편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모두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그런 영화같은 인생을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미혼의 여성으로서, 아직도 무용가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말이다.
‘선영아 사랑해’로 유명한 여성포털 마이클럽 www.miclub.com에서 새로운 CEO의 인생을 펼치기 시작한 이수영(39)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마치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눈을 반짝이며 털어 놓는 이수영 사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생은 정말 ‘예측불허’다.
이수영 사장이 무용을 시작한 것은 8살때부터였다.
처음엔 그냥 춤추는 것이 좋아 시작한 무용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발레 공연을 보면서 이 사장은 무용가로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말 그대로 공연을 보면서 제대로 ‘필’이 꽂힌 거죠.” 공부를 잘 하는 이 사장이었기에 대학진학을 앞두고 주위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 사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미 그때부터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야 마는 그녀의 성격이 싹을 보였던 것이다.


무용과에 진학한 이 사장은 무용가로서 탄탄대로를 가는 듯 했다.
대학 졸업 뒤엔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무용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뉴욕대에서 예술학 석사를 받고, 공연을 통해 현지에서 인정받았다.
이 사장은 한국에 돌아가 무용가로서의 꿈을 활짝 펼칠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국내에 돌아와 자리를 잡으려고 보니 미처 예상치 못했던 현실의 벽들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 고질적으로 퍼져 있는 각종 인맥과 학맥, 줄서기 등 이상한 힘의 논리가 무용계에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단순히 실력만 있다고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 사회에 발을 들여 놓으려 무진 애를 썼다.
대학 시간강사도 하고, 방송사 무용관련 리포터도 하고, 틈틈이 공연도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삶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집에 더 이상 손을 벌리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1996년 미리내소프트라는 게임 개발회사와 인연을 맺은 게 계기가 됐다.
발레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회사를 찾아 갔다가 해외마케팅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용가로서 꿈을 포기한 게 아니었어요. 무용을 잘 하기 위한 현실적인 도구로 직장생활을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부터 이 사장의 ‘이중생활’은 시작됐다.
낮에는 회사일을, 밤에는 공연을 하는 생활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같은 건물에 입주한 한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아마도 그 회사가 한국 문화에 푹 젖은 곳이었다면 전공을 들먹이며 그녀의 입사를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외국계라 그런지 쓸데없는 고정관념이 없더군요. 전공보다는 제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만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당시는 인터넷 붐이 일던 시절이라 컨설팅 회사엔 재미있는 제안들이 넘쳐 들었다.
이 사장은 그런 아이디어들과 여러 회사들을 접하면서 사업도 한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마침 예전에 일하던 게임개발회사의 개발자들이 이 사장을 찾아왔다.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누구에게나 때가 올 때가 있죠. 만약 그때 자신감이 들지 않는다면 뭔가 부족하다는 신호일거에요. 하지만 그땐 자금, 인력, 아이템 등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져 자신감이 충천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사람들과 자신의 생각을 자주 나누면서 기회가 자신을 찾아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2000년 5월 그런 마음으로 만든 회사가 웹젠, 그리고 새로운 게임으로 만든 작품이 ‘뮤’였다.
당시 온라인게임에서는 ‘리니지’라는 절대 강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로운 게임들이 나와 도전을 걸었지만 제대로된 성공작은 없었다.
그때 뮤가 최초의 3D게임으로 선보이며 게임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뮤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2001년과 2002년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덕분에 웹젠은 지난해말 코스닥 심사에도 무난히 통과했다.
이 사장은 웹젠의 지분 15%를 가진 최대주주라, 코스닥 등록이 성사되면 버추얼텍 서지현 사장, 소프트맥스의 정영희 사장과 함께 코스닥 3대 여성 갑부 대열에 올라선다.
투자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 사장의 또다른 꿈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이 사장은 새로운 선택을 했다.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웹젠을 떠나 지난해 11월부터 여성 포털 마이클럽의 전문경영인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해야 할 일들을 모두 했고,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행복한 결실을 얻기 위해 결단을 내렸어요.”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던 이 사장은 이 순간만큼은 이야기를 아낀다.
단지 여성 CEO로서 힘든 점은 없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에둘러 이야기할 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여성들은 좀더 영악해져야 해요. 여성들은 대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면 전부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집단 속에서 권력에 다가서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면서 일하는 남성들이 많습니다.
여성들은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양보를 강요당하곤 하죠.”

새 둥지를 튼 마이클럽에선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마이클럽은 인터넷 붐과 함께 태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코스닥 등록의 때를 놓쳐 그간 해야 할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올해엔 수익모델도 다시 다져야 하고, 시스템 업그레이드도 해 마이클럽을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성 전용 포털이 아니라 여성을 알고 싶은 사람들, 여성에게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이용하는 사이트로 만들 계획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사장실 벽 뒤켠에 붙여놓은 사진 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좋은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고 있는 흑백 사진으로, 잡지에서 쭉 뜯어 붙여놓은 듯 보인다.
“아직 결혼 안하셨죠? 저 남자분 누구에요?” “저 분 모르세요? 그냥 좋아서, 나중에 한번 뵐 수 있을까 해서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MBC TV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를 통해 유명해진 뉴욕 검찰청 강력계 최연소 부장검사 정범진씨다.
25살 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지만, 불굴의 의지로 검사가 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사람이다.
이수영 사장은 자신의 도전 인생에 그를 귀감으로 세워 놓은 것일까. “제 인생의 마지막 꿈은 브로드웨이에 무용공연을 올리는 거에요. 버릴 수는 없어요.” 아직도 무용가의 꿈을 버리지 않은 이 사장은 그 꿈을 인터넷에서 먼저 펼쳐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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