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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0:21 비전-도전받는 평화 의심받는 자본주의
[서평] 20:21 비전-도전받는 평화 의심받는 자본주의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4.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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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이냐, 실리냐

“앞으로 세계질서도 명분에 의해 움직여가는 시대가 와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아직은 명분이 아니라 힘의 질서가 국제질서를 움직이고 있다.
…명분론에 발목 잡혀 한미 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보다는 오랜 한미 동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이다.
” (4월2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 중)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 빌 에모트는 지난해 5월 한국에 왔을 때 이렇게 ‘예언’했다.
“미국은 향후 1년 안에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다.
대량 살상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1년 안에 이라크전이 벌어지긴 했는데 그것은 미국 정부 외엔 모두가 다 알듯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노무현식으로 표현하자면 미국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적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새뮤얼 샌디 버거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3월12일 하버드로스쿨에서 벌인 강연회에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첫째, 석유라는 인류 공동의 자원을 중동의 위험한 상황에 내버려둘 수 없다.
둘째, 이라크와 북한 등 국지적인 도발 세력이 핵무기 같은 무력을 보유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셋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the leadership of U.S. in the world)이 약화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반드시 자비로운 나라인가?

세계적 시사경제주간지의 편집장이 미국의 이런 속셈을 몰랐을까? 어쩌면 에모트는 미국이 차라리 명분을 가지고 싸우길 무의식적으로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만드는 질서의 유지를 위해. 신간 <20:21 비전>에서 그는 20세기 세계 역사의 분석을 통해 미국이 이전의 맹주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비로운 방식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나라’라고 평가한다.
예컨대 19세기 영국만 해도 식민지에서 무자비한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저항하는 사람은 물론 평범한 시민까지도 희생시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에모트의 분석을 들어보자.
“절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이 반드시 자비로운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은 때로 독재자들을 옹호했고 민주주의를 뒤집어엎거나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상황에 눈을 감았다.
(여하간) 미국은 1945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부분적으로 미국 자신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정신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 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호혜적인 정책은 강압적 정책보다 제국을 유지하는 데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

에모트는 미국식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역설적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자유무역과 자본주의를 확산시킴으로써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을 줄인다.
평화가 유지되고 자유무역이 늘어나면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경제와 생산성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미국의 1인당 GDP는 1950년엔 서유럽의 2배, 일본의 5배였지만 92년엔 서유럽의 1.2배, 일본의 1.1배로 격차가 줄어들었다.

“미국은 열강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를 거둘 경우에- 자신들의 이념이 자체적인 지배력의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는 나라이다.
그와 같은 순간이 다가오면 미국인들은 마음을 바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주 멀리 있고, 그렇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그러나 에모트의 전망과는 달리 미국은 벌써 마음을 바꿔먹은 것 같다.
버거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했듯 미국은 이미 자국의 리더십 보호를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이라크전에서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먼저 상대방을 공격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늘 선제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반격에 나서곤 했다.
미국이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그만큼 지배력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국과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인가?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커다란 세력판과 자본주의에 대한 에모트의 성실한 분석은 이밖에도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세계화는 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가? 아니면 부를 확산시키는가? 중국은 조만간 미국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맹주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20세기 초반 일본의 운명을 되풀이할 것인가? 사회주의는 유행처럼 왔다 간 지난 시대의 유물인가? 아니면 지금도 지속되는 인류 진화의 증거인가? 에모트의 결론은 매우 ‘현실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힘의 균형과 질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며 온갖 저항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부의 창출’이라는 목적에 가장 적합한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한 측면을 간과했다.
인류 진화의 순간은 현실을 부정할 때에 찾아왔다.
현실 부정의 본성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도 맹수의 위협을 피해 나무 위나 굴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또 하늘을 날거나 심해를 탐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 진화의 엄청난 동력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의 한계는 인류에게 새로운 변종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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