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제가 호흡장애를 겪고 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홍콩에선 ‘비정형 폐렴’이라고 부르는 괴질이 홍콩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홍콩 경제에 급격한 경색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홍콩 안팎의 경제학자들은 괴질 확산이 이대로 진행되면 홍콩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지난주에만도 골드만삭스, BNP파리바, 모건스탠리, 스탠더드채터드, 씨티은행, ABN암로 등 상당수의 투자은행이 홍콩 경제성장률 전망을 적게는 0.2%포인트에서 많게는 0.6%포인트까지 끌어내렸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괴질에 의한 아시아 경기 침체론까지 제기한다.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 앤디 시에는 괴질이 아시아 경제에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복병으로 부상했다며 아시아 경제가 다시 침체를 겪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사망률로만 보면 이런 우려는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SARS 감염에 의한 사망률은 4%. 이 정도면 몇년에 한번씩 출현하는 변종 독감과 비슷한 사망률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의 90%는 감염된 뒤 6일쯤 지나면 회복된다.
사망자 중 상당수는 심장질환, 당뇨병 등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노약자들이다.
그럼에도 경제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괴질을 둘러싼 공포 때문이다.
우선 치료의 어려움이 사람들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고 있다.
아직 치료법은커녕 발병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자칫하면 다른 병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옮을 수도 있다.
SARS 환자를 치료한 병원 의료진 수십명이 이 괴질에 걸렸다.
SARS를 처음 확인한 카를로 우르바니(46) 세계보건기구(WHO) 박사도 베트남에서 치료에 전념하다 감염돼 3월말에 사망했다.
확산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SARS 잠복기간은 2~7일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전세계가 항공편으로 연결되어 있어 벌써 북미, 유럽 등지로 급속하게 번져나가고 있다.
괴질 공포로 오가는 사람들이 줄자 국제도시 홍콩의 경제는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중심산업인 서비스, 관광, 금융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주가 하락세는 3월10일 괴질 확산에 대한 우려가 퍼진 이후 점점 심해져 이라크전 개전 이후 전세계 주가가 상승세를 탈 때에도 그만큼 오르지 못했다.
심지어 3월말엔 4년반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여행객의 급감으로 국제적 항공사 캐세이항공 주가가 급락한 영향이 컸다.
괴질 충격은 이미 실물경제에까지 파급돼 당분간 홍콩 경기가 주름살을 펴긴 어렵게 됐다.
홍콩전시컨벤션센터는 개최 예정 행사의 12%가 이번 사태로 취소되거나 연기됐다고 밝혔다.
홍콩관광협회에 따르면 최근 몇주 동안 방문을 예정했던 관광객들이 대부분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해 홍콩 호텔 투숙률이 예년에 비해 15~20% 감소했다.
홍콩관광협회는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6월까지 이 사태가 지속되면 소규모 여행사들은 도산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괴질 치료법이 2~3개월 안에 나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홍콩 경제는 세계의 성장엔진 중국을 등에 업고 서서히 회복 국면에 들어가고 있던 터. ABN암로의 2003년 홍콩 GDP성장률 수정 전망치는 여전히 홍콩 정부의 공식 전망치인 3%보다 0.5%포인트 높다.
메릴린치 이코노미스트 마빈 웡은 괴질 사태가 조기에 마무리되면 홍콩의 GDP 전망치는 0.2%포인트만 하락할 것이라는 다소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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