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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위기 공포, 아시아 공통분모
1. 환위기 공포, 아시아 공통분모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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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나라들은 늘 불안하다.
세계 최고의 역내 경제성장률과 역내 교역증가율을 자랑하는 지금도 그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역내 무역과 자본 흐름 대부분이 미국 달러화로 이뤄져 불필요한 환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기거래를 하자니 헤징 비용이 따르고 장기투자를 하자니 환율 변동 리스크가 커진다.
아시아 정부들은 외환위기의 악몽을 떨치려 열심히 달러를 사모은다.
2002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 정부의 외환보유 규모는 전세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렇게 들어온 달러는 비좁은 아시아 자본시장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간다.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자산을 선호하는 아시아 정부 등 투자자들은 보유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산다.
영국의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결국 아시아는 미국 장기재무증권의 최대 순매수자로서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절반가량을 메워주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한다.
달러는 포트폴리오 유입이나 외국인직접투자(FDI)의 형태로 다시 아시아 시장에 되돌아온다.
홍콩 증권선물위원장 앤드류 셍은 “아시아-미국간 달러 흐름은 과거 영국 식민지의 돈이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식민지에 투자 형태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한 1950년대의 논란을 상기시킨다”고 비평했다.


아시아 내 기축통화가 있다면 사정은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로 가장 유망한 일본 엔화는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 상품의 가격경쟁력 확보책으로 사용하는 통에 기축통화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 달러에 가치가 연동되는 중국 위안화는 아직 완전한 교환기능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일부 논자들은 아시아 나라들이 공동통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이 유로로 통화안정을 꾀했듯 아시아도 공동통화로 환율 변동성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공동통화가 있으면 아시아 나라들은 역내 교역, 투자에서 불필요한 추가비용을 없애 더 효율적으로 경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 공동통화가 현실화하기엔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많다.
우선 경제수준이 천차만별이다.
1인당 GDP가 3만달러에 이르는 싱가포르가 있는가 하면 그 1%도 되지 않는 캄보디아도 있다.
유로 같은 통화가 나온다면 아시아 중앙은행은 아시아 나라마다 다른 경기변동과 경제수준을 통제하지 못해 진땀을 흘릴 것이다.
정치적 갈등도 깊다.
북한-남한, 중국-대만을 비롯해 아시아 나라들이 저마다 역사, 정치적으로 풀지 못한 갈등이 쌓여 있다.


최근 APEC 역내 채권시장 발전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열린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 탓에 아시아 공동통화 설립안 대신 역내 채권시장 강화 방안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역내 채권의 신용을 보강해 가격을 높이면 자금 조달이 어려운 나라와 기업들은 외화자금 조달 기회를 얻고 자금이 많은 나라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 자본이 아시아 시장에서 순환할 수 있다.


APEC 21개 가입국 중 15개국이 참여한 이번 국제회의에서 한국은 채권의 증권화와 신용 보강을 통한 역내 채권시장 발전 방안을 내놔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등 자금 부족 국가들의 중소기업이 자국 보증기관 보증을 받아 발행한 선순위채를 100개가량 모아서 SPC(특수목적회사)를 통해 일본, 한국 등 자금 잉여국에 파는 방식이다.
재정경제부 국제협력과 홍영만 과장은 “한국 방안은 자국 통화뿐 아니라 달러 발행도 가능하고 부실여신 등 여러가지 자산에 적용할 수 있어 다른 방안에 비해 융통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한다.
특히 부실여신이 많은 중국 같은 나라들은 한국 방안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역내 채권시장 강화안을 내놓은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APEC 공식의제로 다룬 것은 한국이 처음이지만 일본, 태국도 저마다 방안을 내놓은 상태다.
시장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역내 채권 거래를 높이자는 의도는 같으나 리스크 헤지와 발행통화 면에서 차이가 있다.
환 리스크 헤지는 한국이 스왑을, 일본이 @바스켓@ 방식을 제시했다.
기업별 리스크는 한국이 증권화와 신용 보강을, 태국은 아시아본드펀드 조성을 통해 헤지하자는 방안을 내놨다.


이중 가장 먼저 현실화되는 것은 태국 방안이다.
태국은 일본과 함께 아시아본드(아시아 통화 채권시장) 설립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50억~60억달러 규모의 독자적인 채권을 양국 통화로 발행, 증권화해 아시아 시장에 판매할 계획이다.
97년 태국 바트화 위기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취지의 이 계획은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오는 6월 열릴 태국 주도의 아시아협력대화(ACD) 회의 때 선언할 예정이다.
일본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도 이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
아시아 투자자들이 아시아 통화로 발행된 아시아 채권 펀드를 살 수 있게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용어설명

바스켓 방식 바스켓에 넣듯 여러가지 통화를 조합하여 새로운 합성통화단위 또는 계산단위를 만드는 방식. 제3의 통화로 일컫는 SDR(특별인출권), 유럽계산단위 등 여러가지가 있으며 참가국의 합의에 따라 신축성있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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