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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러시아 - 유가 하락에 깊어가는 시름
[글로벌] 러시아 - 유가 하락에 깊어가는 시름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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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기업 해외 차입여건 악화…채산성 떨어지는 인프라도 골칫거리

이라크 전쟁이 예상보다 일찍 끝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4월 둘쨋주부터는 세계 주요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해부터 세계경제를 짓눌러온 불확실성이 깨끗하게 걷히면서 다소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동안 고유가의 혜택을 누리며 신흥시장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러시아의 반응은 약간 달랐다.
무엇보다 유가 하락을 먼저 걱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미군이 바그다드에 진입한 4월7일, 국제유가는 5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고유가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러시아의 달라진 위상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다.
러시아는 이제 신흥시장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투자대상국 대접을 받고 있다.
미국 보스턴의 펀드매니저 마크 도우는 “러시아는 가장 안전한 투자의 천국”이라고 극찬한다.
더이상 러시아에서 1998년의 금융위기와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석유 수출은 올 들어서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증가했으며, 러시아 중앙은행은 90년대보다 몇배나 더 많은 550억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파이프라인 부족해 수출 한계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러시아 기업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을 정도의 신용도를 갖춘 러시아 기업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당수 기업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러시아 기업들은 지난해 90억달러의 해외 자금을 끌어왔다.
이는 그 전해보다 3배 늘어난 규모다.
이러한 현상은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는 아무래도 석유 등 자원 관련 기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천연가스 독점 기업인 가즈프롬이 17억5천만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은행의 규모가 영세하고, 연기금 펀드가 자본시장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러시아의 상황에서, 해외 차입은 당분간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앞으로 유가 하락이 계속될 경우, 해외 차입 여건 역시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가 하락은 석유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 제1의 석유회사인 유코스의 코도르코프스키 사장은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이것이 곧 러시아 경제에 대재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다소 희망적 관측을 나타냈다.
그는 “이미 예상한 일인 만큼, 유가 하락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며 “가격 하락보다는 수출 인프라의 부족이 러시아의 석유산업을 더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두시설이나 파이프라인 등 원유 수출 인프라의 현대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석유회사들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원유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의 추가 건설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지난달 하루 8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지만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출이 한계에 접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유코스는 열차와 바지선을 이용해 러시아 북부와 남부의 항구로 원유를 실어나르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이건 고유가가 유지될 때에만 가능한 임시 조처일 뿐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철로 운송으로는, 유가가 떨어질 경우 채산성을 맞출 수 없다.


때문에 유코스가 이끄는 석유업체 컨소시엄은 러시아 북부의 부동항인 무르만스크까지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이들은 또 유망시장인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중국까지 두번째 핵심 파이프라인을 연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파이프라인의 사적 소유를 반대하는 러시아 정부는 이런 제안들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의 파이프라인 망은 정부소유 독점기업인 트랜스네프트가 장악하고 있다.
최근 국제 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전쟁 종료와 함께 이라크가 원유수출을 재개할 경우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유코스 코도르코프스키 사장은 “유가가 더 떨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전 후 계약 유지도 초미 관심사

한편 이라크전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경우, 러시아가 이라크와 체결해둔 많은 이권 계약들이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아 러시아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는 이라크와 교역하면서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쟁과 동시에 모든 거래가 중단됐다.
러시아-이라크 협력위원회 유리 샤프라니크 회장은 “이라크 전쟁 발발에 따른 러시아의 손실은 400억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수년간 협상을 진행해온 많은 계약들이 포함돼 있다.


이를 의식한 모스크바는 최근 러시아가 확보하고 있는 계약들이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서도 존중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외교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기업 입장에서는 마냥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특별하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타타르스탄에 기반을 둔 석유회사 타트네프트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 고백한다.
타프네프트는 이라크 북부의 키르쿠크에서 원유를 채굴하기 위해 두건의 계약을 맺어놓고 있다.
석유를 제외한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러시아의 계약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다.
타프네프트는 기대하던 석유 매출뿐만 아니라, 이라크지역에 투자한 200만달러 상당의 장비에 대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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